하버드대의 코로나 전략, 핵심은 '변이에 앞서는 대응'

변이 동향 감시와 안정적 백신·치료제 개발→'세포 면역' 선회
면역 약화 환자의 만성 감염 사례 소개…저널 '셀' 논문
면역력이 손상된 사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만성 감염될 수 있다. 이처럼 힘이 떨어진 면역계는 신종 코로나를 뿌리 뽑지 못한다.

하지만 약해진 전력으로 계속해 바이러스를 공격한다.

이런 만성 감염 환경에서 변이한 신종 코로나가, 실험실에서 제조된 치료 항체는 물론 회복 환자의 항체까지 회피할 수 있다는 걸 미국 하버드 의대의 블라바트닉 연구소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약한 면역 공격이 지속된 5개월간 신종 코로나의 스파이크 단백질엔 여러 개의 RBD(수용체 결합 도메인) 돌연변이가 생겼고 이 중 일부는 이후에 보고된 변이 코로나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변이가 갑자기 확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단·중·장기로 나눈 코로나 대응 전략을 제시했다. 우선 신종 코로나 스파이크 단백질의 돌연변이 발생 동향을 신속히 파악하는 감시 체제를 구축해 돌연변이의 영향을 덜 받는 표적으로 항체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고, 장기적으론 T세포 중심의 세포 면역을 활용하는 쪽으로 개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이 연구 결과는 16일(현지 시각) 저널 '셀(ell)'에 논문으로 실렸다.

논문은 자가면역 질환을 앓다가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환자(이하 '환자 A' 약칭)의 사례를 중요하게 인용했다. 이 환자의 존재는 지난해 12월 3일 자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실린 미국 '브리검 앤드 위민스 호스피털(Brigham and Women's Hospital)' 연구진의 논문으로 처음 알려졌다.

이 시점은 영국발 변이와 남아공발 변이가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되기 몇 주 전이었다.
이 환자에게서 분리한 신종 코로나는 이미 스파이크 단백질의 수용체 결합 도메인에 여러 개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었다.

이들 돌연변이는 일반에 공개된 바이러스 시퀀스(염기서열) 데이터베이스에도 등록됐다.

이들 변이 중 일부는 나중에 영국발 변이와 남아공발 변이에서 확인됐다.

그런데 더 걱정스러운 사실이 드러났다.

환자 A로부터 분리한 신종 코로나의 돌연변이 중에는, 현재의 지배적 변이형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한 변이가 또 다른 코로나 변이 확산의 전조일 수 있다고 연구팀은 우려한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조나단 에이브러햄 미생물학 조교수는 "스파이크 단백질에 구조적 변화가 생기면 신종 코로나가 항체 중화를 피할 대체 수단을 갖게 된다는 게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라면서 "시간이 흘러 이런 변화가 쌓이면 스파이크 단백질을 표적으로 개발된 단일클론 항체 치료제와 백신의 장기적 효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연구팀은 5개월간 환자 한 명에서 이 정도의 변이가 생긴 것에 주목한다.

전 세계에 퍼지면 어느 정도 변이할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자기 입자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생기는 건 생명 주기의 한 부분이다.

대다수 변이는 바이러스에게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이고, 심지어 불리한 것도 일부 있다.

하지만 전파력이 강해지는 것처럼 바이러스한테 유리한 변이도 있다.

이런 변이가 특정한 유형의 진화적 이점으로 작용하면 다른 바이러스와의 경쟁에서 앞서 지배적 변이형으로 퍼진다.
대유행 초기엔 신종 코로나의 돌연변이가 그다지 빠르지 않으리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다른 대부분의 RNA 바이러스와 달리 신종 코로나는, 유전체의 과도한 변이를 방지하는 '교정 단백질(proofreading" protein)'을 갖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연구팀은 환자 A의 사례를 보고 흥미보다 걱정이 앞섰다.

환자 A는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상태에서 자가면역 질환에 대한 면역억제 치료를 받던 중 만성 감염으로 진행된 특이한 사례였다.

신종 코로나의 유전체를 분석해 보니 스파이크 단백질의 RBD에 8개의 집단 돌연변이가 있었다.

RBD는 바이러스의 세포 침입을 막기 위해 항체가 결합하는 중요한 부위다.

연구팀은 이런 돌연변이를 가진 바이러스가 환자 본인의 것이 아닌 항체의 공격도 피할 수 있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A 환자에게서 분리한 신종 코로나의 복제 바이러스를 실험 모델로 만들었다.

이 복제 바이러스는 5개월간 축적된 스파이크 단백질의 구조적 변화를 모방한 것이지만, 감염 능력은 없었다.

실험 결과 이 인공 바이러스는, 항체가 풍부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 감염증) 회복 환자의 혈장과 현재 임상에 쓰는 치료 항체를 모두 회피했다.

두 종류의 항체를 섞은 단일클론 항체 칵테일을 써 봤더니, 하나는 완전히 저항하고 다른 하나는 야생형의 4분의 1 정도로 중화 효과가 떨어졌다.

이들 8개의 변이가 똑같이 항체에 저항하진 않았다.

다만, 2개는 자연 항체와 인공 항체 모두에 강한 저항을 보였다.

연구팀은 먼저, 신종 코로나에 대한 인간 항체 반응을 더 잘 이해하고, 신종 코로나와 인간 숙주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상세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래야만 신종 코로나에 생길 변이를 예측해 확산 전에 대응 조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론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상대적으로 변화 가능성이 작은 부분을 정조준해 항체 기반의 치료법과 백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항체 면역을 넘어서, T세포가 관여하는 세포 면역(cellular immunity) 등으로 개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적극적인 유전체 감시를 통해 신생 돌연변이 동향을 낱낱이 파악하는 것이라고 에이브러햄 교수는 강조했다.

단순히 환자의 검체에 신종 코로나가 존재하는지 가리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의 유전체 분석과 돌연변이 탐색까지 검사 범위를 넓히는 걸 의미한다. 논문의 제1 저자인 에이브러햄 랩(실험실)의 사라 클라크 박사과정연구원은 "진화하는 바이러스에 계속 앞서 있는 게 중요하다"라면서 "이번 연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