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쏜 5·18 계엄군의 사죄와 용서…나비효과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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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관계자 "또 다른 고백과 증언, 용서와 화합으로 이어지길"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을 총격해 숨지게 한 공수부대원의 진정성 있는 고백과 사죄가 41년간 풀지 못한 용서와 화합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1980년 5월 항쟁 당시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으로 광주에 투입된 A씨는 지난 16일 자신의 총격으로 숨진 고(故) 박병현 씨 유가족을 만나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5·18과 관련해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유가족에게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씨가 사죄를 결심하기까지는 수많은 망설임과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배신자'라는 군 동료들의 시선과 '시민을 학살한 계엄군'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보여준 군 출신 동료들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은 부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5·18 민간인 학살 사건 중 하나인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과 관련해 양심 고백을 한 공수부대원 출신 최영신 씨는 양심 고백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더라도 유가족들이 사죄를 받아 줄지, 잊고 있던 아픈 기억을 꺼내게 해 또다시 상처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 때문에 A씨는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며 "저의 사과가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아 망설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A씨의 용기 낸 사죄라는 것을 이해한 유족들은 기꺼이 그를 부둥켜안았다.
오히려 A씨에게서 잃어버린 동생의 모습을 봤다고 한 유족들은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오랜 세월 죄책감에 시달려왔다고 고백한 A씨는 비로소 40년 만에 자신의 아픈 과거를 청산할 수 있었다.
이들의 사죄와 용서는 그것만으로도 값지지만, 5·18이라는 불행한 과거사를 치유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된 셈이어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일각에선 이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은 또 다른 계엄군의 고백과 증언, 사죄가 이어지지 않을지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실제 조사위는 조사 활동 과정에서 A씨와 유사한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
앞으로도 계엄군과 피해자 또는 유가족이 서로 동의할 경우엔 조사위가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또 고백을 한 가해자들에겐 트라우마 치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함께 어려움을 짊어지겠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계엄군의 고백과 증언은 미완으로 남아있는 5·18 진실의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A씨는 피해자를 사격해 숨지게 할 당시 "사망 현장 주변에는 총기나 위협이 될만한 물건이 없었다.
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고백했다.
시위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위권' 차원에서 진압과 발포가 이뤄졌다는 신군부 측의 주장이 허위라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
5·18의 미완의 과제인 발포 명령자를 규명하는 일과 행방불명자 또는 암매장지를 찾는 일에도 계엄군의 용기 있는 고백이 중요한 실마리가 되고 있다.
송선태 조사위원장은 "이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시라"며 "당시 작전에 동원된 계엄군들은 당당히 증언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5·18 단체 관계자는 18일 "잔잔한 호수에 돌이 던져졌다. 이 물결의 파장이 또 다른 고백과 증언, 용서와 화합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며 "그러다 보면 언젠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5·18을 추모하는 날도 오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연합뉴스
5·18과 관련해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유가족에게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씨가 사죄를 결심하기까지는 수많은 망설임과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배신자'라는 군 동료들의 시선과 '시민을 학살한 계엄군'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보여준 군 출신 동료들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은 부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5·18 민간인 학살 사건 중 하나인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과 관련해 양심 고백을 한 공수부대원 출신 최영신 씨는 양심 고백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더라도 유가족들이 사죄를 받아 줄지, 잊고 있던 아픈 기억을 꺼내게 해 또다시 상처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 때문에 A씨는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며 "저의 사과가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아 망설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A씨의 용기 낸 사죄라는 것을 이해한 유족들은 기꺼이 그를 부둥켜안았다.
오히려 A씨에게서 잃어버린 동생의 모습을 봤다고 한 유족들은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오랜 세월 죄책감에 시달려왔다고 고백한 A씨는 비로소 40년 만에 자신의 아픈 과거를 청산할 수 있었다.
이들의 사죄와 용서는 그것만으로도 값지지만, 5·18이라는 불행한 과거사를 치유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된 셈이어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일각에선 이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은 또 다른 계엄군의 고백과 증언, 사죄가 이어지지 않을지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실제 조사위는 조사 활동 과정에서 A씨와 유사한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
앞으로도 계엄군과 피해자 또는 유가족이 서로 동의할 경우엔 조사위가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또 고백을 한 가해자들에겐 트라우마 치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함께 어려움을 짊어지겠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계엄군의 고백과 증언은 미완으로 남아있는 5·18 진실의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A씨는 피해자를 사격해 숨지게 할 당시 "사망 현장 주변에는 총기나 위협이 될만한 물건이 없었다.
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고백했다.
시위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위권' 차원에서 진압과 발포가 이뤄졌다는 신군부 측의 주장이 허위라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
5·18의 미완의 과제인 발포 명령자를 규명하는 일과 행방불명자 또는 암매장지를 찾는 일에도 계엄군의 용기 있는 고백이 중요한 실마리가 되고 있다.
송선태 조사위원장은 "이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시라"며 "당시 작전에 동원된 계엄군들은 당당히 증언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5·18 단체 관계자는 18일 "잔잔한 호수에 돌이 던져졌다. 이 물결의 파장이 또 다른 고백과 증언, 용서와 화합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며 "그러다 보면 언젠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5·18을 추모하는 날도 오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