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가 알려주는 최고의 대화법…상대의 몸짓을 봐라

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조르주 드 라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사기꾼'

17세기 카드 사기 도박 현장, 자기 패만 보면 왕초보
눈을 마주치지 않는 3명…그들의 손은 눈보다 빨랐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1593~1652)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사기꾼’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머레이비언은 ‘말로 숨기는 것을 몸이 말한다’는 속설을 과학적 수치로 입증했다. ‘머레이비언의 법칙’에 따르면 의사소통에서 신체 언어는 55%, 목소리는 38%, 말의 내용은 7%만 작용한다. 비언어적 요소인 몸짓언어(보디랭귀지)가 말보다 더 강력한 의사전달 수단이라는 뜻이다. 조르주 드 라투르(1593~1652)의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사기꾼’은 몸짓언어가 말보다 더 큰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림의 배경은 비밀 장소에서 행해졌던 17세기 사행성 도박 현장이다. 화면에 등장한 네 명의 남녀 중 오른쪽 청년을 제외한 세 명은 음모를 꾸미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각자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눈빛과 손짓으로만 은밀한 신호를 보낸다. 깃털로 장식한 빨간 모자를 쓴 여자는 도박판을 이끄는 핵심 인물로 보인다. 환한 조명을 받은 여자의 흰 피부와 화려한 최신 패션, 진주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 값비싼 장신구는 그녀가 부자를 사칭한 사기꾼일 가능성을 말해준다.

여자는 왼손에 카드 패를 쥐고 오른손 검지로는 어딘가를 가리키는가 하면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굴리면서 모종의 신호를 보낸다.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흰자위가 드러난 여자의 두 눈은 그녀가 교활한 사람이라는 정보를 알려준다. 주황색 터번을 쓰고 여자의 오른쪽에 서서 술시중을 드는 하녀의 시선과 몸짓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다. 하녀는 여자에게 와인 잔을 건네는 한편 곁눈질로 은밀한 신호를 보낸다.

그 옆에서 불빛을 등지고 앉아 등을 약간 돌린 자세로 시선을 화면 바깥으로 던지는 남자는 타짜다. 그는 오른손에 카드를 쥐고 왼손으로는 두꺼운 허리띠에 숨긴 두 장의 카드 중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몰래 꺼내고 있으니 말이다. 남자의 그늘진 얼굴, 번뜩이는 눈빛, 이마 주름에서 사악한 생각이 드러나 있다. 오른쪽 팔꿈치를 탁자에 고인 남자의 특이한 자세도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옷의 늘어진 소매와 긴 어깨 장식용 끈을 이용해 판돈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

그 오른쪽, 앳된 얼굴의 청년만이 도박판 분위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양손으로 카드를 쥐고 열심히 자신의 패를 들여다본다. 카드 게임은 상대의 패를 보지 않고 읽어야 돈을 따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남의 패를 읽는 것은 기본인데도 청년이 자기 패만 보는 것은 왕초보라는 뜻이다. 잘 손질된 곱슬머리, 화려한 금실·은실 자수가 수놓인 비단옷, 붉은 넥타이로 잔뜩 멋을 부린 것을 보면 그는 부잣집 철부지 아들이 분명하다. 청년 앞의 탁자 위에 판돈이 가장 많이 쌓였다는 것은 그가 돈을 따도록 사기꾼들이 한통속이 돼 일부러 져줬다는 뜻이다. 순진한 바보가 사기꾼들의 수법에 속아 판돈을 다 털리고 빈털터리가 돼 자리를 뜰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을 것이다.라투르는 짜고 치는 카드사기 도박 현장을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몸짓언어를 절묘하게 활용했다. 세 사기꾼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각자의 역할에 몰두하는 것 같지만, 그들의 눈길과 손짓은 상호 밀접하게 연결됐다. 이 작품은 눈과 손이 인간의 신체에서 표현력과 의사 전달력이 가장 풍부한 부분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줬다.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사기꾼’은 1934년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열린 ‘17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들’이라는 전시회에 소개된 이후 큰 인기를 얻었다. 같은 장면에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스페이드 에이스로 바꾼 또 다른 버전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킴벨 미술관에 소장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의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1909~2005)는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입으로 말하지 않은 것을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사기꾼’은 시선, 표정, 자세, 몸동작을 관찰하면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