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믿는 은행 건전성 통계

현장에서

금감원, 부실채권 비율 최저라지만
만기 연장 등으로 인한 '착시현상'

박종서 금융부 기자
금융감독원이 18일 국내 은행의 작년 말 기준 부실채권 비율이 0.64%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저 수준이다. 2171조7000억원의 대출 자산 가운데 회수 의문과 추정 손실을 포함한 고정이하 등급의 채권 규모가 13조9000억원에 그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5.1%) 이후 22년 만에 경제성장률이 -1.0%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긍하기 어려운 수치다.

부실채권 비율뿐만 아니다. 지난 1월 말 기준 은행들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31%로 1년 전보다 오히려 0.10%포인트 하락했다. 역시 사상 최저 수준이다.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할 정도로 경제가 어려워지는데도 그렇다. 지난해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 비율도 석 달 만에 0.41%포인트 또 올라 15.0%로 나타났다. 금감원의 최저 가이드라인 10.5%를 크게 웃돈다.요즘은 은행 건전성 지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편이다. 착시 현상에 따른 통계라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4월부터 코로나19 지원을 이유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 130조원의 만기를 최대 1년6개월 연장해줬다. 만기가 늦춰졌으니 부실이나 연체가 발생할 수 없다. 모두 정상 여신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수십조원의 정책자금까지 투입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실률이나 연체율을 계산할 때 분모가 되는 대출 총액이 코로나 금융지원으로 늘어나면서 모든 수치가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금융당국 통계가 신뢰를 잃은 지 꽤 오래됐다”고 말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은행들은 더 이상 건강할 수가 없는데도 금감원은 “손실 흡수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당금을 충실히 적립하도록 유도하겠다”고 한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138.8%까지 치솟은 이유다. 금융당국도 코로나 금융 지원이 끝나면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미흡한 통계를 더욱 ‘안갯속’으로 밀어넣었다. 지난해 신용위험평가를 하면서 ‘코로나19가 없었다면’이라는 전제로 기업들의 신용위험을 평가한 것이다. 부실 징후 기업 비율이 1년 전보다 1.9%포인트 떨어진 이유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미나리’에 나오는 대사가 있다. 미나리 밭에 뱀이 나타나자 돌을 던져 쫓아내려는 손자에게 주인공 할머니가 한 말이다. “그냥 둬, (돌을 던지면) 뱀이 숨어버려.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하고 무서운 거란다.” 지금 은행 통계를 보면 어떤 위험이 숨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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