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임대인' 정부가 아닌 시장이 만듭니다 [심형석의 부동산정석]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정부가 임대인에게 강요하는 '착한 임대인'
임대차 방식 개선이 필요…기존 정액제서 '정률제'로
"임차인, 비용 줄이는 것보다 매출 늘리는 게 중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분들을 위해 ‘착한 임대인’ 운동이 확산되는 중입니다. 이 운동을 간단히 설명하면 소상공인들이 어려우니 임대인이 임대료를 알아서 내려주면 세금을 감면해주겠다는 겁니다. 지자체마다 조금 다른 형태를 보이는 데 재산세, 지방세를 감면하는 경우도 있고 세액공제를 해주기도 합니다. 신협은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면서 임대료를 10억원 가까이 감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착한 임대인’ 운동이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모양새입니다.

착한 임대인이란 용어가 바람직할까요. 안타깝게도 뉴딜과 비슷한 정치적인 느낌이 드는 걸 떨칠 수가 없습니다. 서울시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서울 주요 상권의 상가점포들의 매출액은 36% 줄었지만 임대료는 0.6% 하락에 그쳤다고 합니다. 통계만 보면 소상공인들의 매출은 많이 줄었는데 임대료는 계속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니, 시장엔 죄다 나쁜 임대인들만 있는 듯합니다.점포영업을 수행하는 상인(임차인)이 어려우니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명분이 있어 좋은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정부의 직접 개입에 따른 부작용이 예상됩니다. 대다수의 임대인들을 편 가르기로 내모는 위험한 운동일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를 갑과 을의 종속적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상가 임대인은 공실을 채우기도 급급합니다. 엄청나게 비어있는 상가를 보면 임대인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왜 임대인들이 악화된 점포영업의 주적(主敵)으로 몰리는지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나라의 상가 임대차시장은 굉장히 낙후되어 있습니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뿐더러 임대료 산정의 방법 또한 획일적입니다. 창업이나 점포영업을 하는 이들에게 임대료 산정은 중요합니다. 보통 임대료 산정은 정액제와 정률제로 나눕니다. 정액제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부동산 운영에 이용되는 방법입니다. 사전에 임대인과 임차인이 결정된 가액대로 지급하고 받는 것을 말합니다. 계약기간을 결정하고 보증금과 월세 혹은 전세를 사전에 정하고 이 계약대로 집행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정률제란 백화점 내 점포를 임대한 경우와 같이 발생하는 매출에 따라 임대료가 달라집니다. 백화점이 임대점포의 한 달 매출액의 일정부분(정률)을 매장 제공료의 형태로 받아 가는 것이라 이해하면 됩니다.

정률제의 경우 운영이 잘 되어 수익이 나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업이 잘되지 않으면 임대인의 월세 수익 또한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계약방식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사업 성공 여부에 계속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임차인의 성공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왜 임대인이 임차인의 사업 성공 여부까지 고민하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임차인의 영업이 잘되는 경우 빌딩 자산의 가치까지 자연스럽게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빌딩 자산의 가치평가는 대부분 수익환원법으로 하는데 월세 수익은 임차인의 영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정률제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은 공동의 운명체인 겁니다. 따라서 국내 대부분의 임대차 계약방식인 정액제보다는 정률제가 서로에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이 정률제 계약방식은 스타벅스와 같은 외국의 우수한 프랜차이즈 점포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본격화됐습니다. 스타벅스는 매출의 15% 내외에서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률제의 확산은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임차인들이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창업이나 이전수요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다양한 임대차 방식이 도입될 시점이 무르익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어려워진 소상공인분들에게 월세를 내려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하책(下策)일 따름입니다. 경기가 좋아지지 않았음에도 코로나19의 확산이 진정되면 임대료는 분명 다시 올라갈 겁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소상공인분들의 영업환경이 더욱 어려워진 것은 맞지만 사실 김영란법과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 등 계속된 정부의 과감한 정책으로 인해 그전부터 소상공인의 경영환경은 악화일로에 있었습니다. 임대차계약에 있어 이분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임대인도 임차인의 매출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겁니다. 매장을 함께 운영한다는 마음가짐을 임대인이 가지게 되면 임차인의 영업이 잘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매출이 곧 임대료이기 때문입니다.

시장 시스템으로도 얼마든지 좋고 착한 임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정부가 시장을 조율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선순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착한 임대인과 나쁜 임대인으로 편 가르고 은근히 강요하는 것은 목적 달성도 쉽지 않지만 이를 바라보는 임차인조차도 부담이 됩니다. 당장에 어려움을 겪는 임차인들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는 임대차 방식의 다양화를 위한 시장 기반을 만드는 일에도 힘을 썼으면 합니다. 점포영업을 하는 분들의 희망은 비용을 줄이는 것보다는 매출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SWCU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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