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안 속 모방범죄 우려"…총격참사 주시하는 한인사회

애틀랜타 최대 한인 밀집지역 덜루스, 사건현장과 30㎞ 이상 떨어져
"가슴 아프고 분노, 명백한 인종범죄"…"트럼프·코로나 겹쳐 아시안 타깃 된듯"
"손님이 혹시나 총 들고 온 것 아닐까 걱정도"…"불안심리 조장 말아야" 목소리도
1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도심에서 북동쪽으로 30여 분가량 고속도로를 타고 들어가자 한글 간판들이 줄지어 보였다. 애틀랜타 지역에서 한인이 가장 밀집한 덜루스(Duluth)란 곳이다.

조지아주에만 10만여 명의 한인이 살고, 이 중 80%가 애틀랜타 지역에 집중해 있다.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애틀랜타 총격사건 희생자의 다수인 6명이 아시안이고, 이 중 4명이 한인이기에 한인 밀집 지역이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 식당을 비롯한 업장과 장을 보러 온 한인들을 직접 만나보니 자신들이 사는 지역사회에서 한인들이 끔찍하게 희생됐다는 점에서 다소 불안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사건 현장인 애틀랜타 시내와 이곳 덜루스가 거리가 있는 탓인지 그 여파를 아직은 체감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았다.

사건 현장인 골드스파와 아로마세러피스파에서 덜루스까지는 30㎞ 이상 떨어져 있다.
덜루스의 한인타운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조모 씨는 "사건 현장과 거리가 멀고 사고가 난 업종도 달라서 불안한 분위기는 아직 잘 못 느낀다"며 "여기는 한인 상권이 밀집한 곳이어서 한인을 무시하지 못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인과 외국인 손님이 절반씩 차지한다고 설명한 조씨는 큰 불안을 느끼진 못하지만 뉴스를 통해 접한 사건 소식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그는 "화장품 가게이다 보니 고객 중에 스파 일을 하시는 분이 꽤 많다"며 "우리 손님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났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괜찮지만 오는 9월 연방정부의 실업급여 지급이 종료되면 아시안이 범행 타깃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인근 한식당을 들어갔더니 손님 20여 명이 북적였다.

미국에서 5년 정도 살았다는 주인 이모 씨는 "아직 불안감을 크게 느끼진 않고 손님들도 그런 얘기를 잘 안 하는 편"이라며 "다만 아시안 손님이 80%정도인데 '모방범죄가 생기면 어떡하나'라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총기 사건 직후 다른 한식당에 흑인들이 들어와서 '마사지?'라고 내뱉고 나갔다는 현지 지역매체 뉴스를 접하고는 경계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현지 한인매체들은 총기사건 이튿날인 전날 저녁 흑인 두 명이 한식당에 들어가 마사지 서비스를 하느냐고 물어 직원들이 놀랐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른 식당의 한 직원은 "사실 이 지역만 살아서 그런 분위기를 잘 모르겠지만, 뉴스를 본 뒤 불안하고 겁난다"며 "외국인 손님이 특히나 많은데 이번 사건 이후 '혹시나 총을 들고 온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고 전했다.

그는 "직원들끼리도 불안하다는 얘길 많이 한다"고 했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영업시간이 오후 9시로 당겨진 탓인지 영업시간 단축 등의 얘기는 없다고 했다.
인근 대형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러 나온 조모 씨는 "나도 일식당 매니저로 외국인 상대로 일하는 데 일터에서 그런 불안감은 없다"며 "여기엔 한인이 많이 살아서 살인사건을 직접 느낄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남부지역, 특히 시골로 갈수록 차별이 많지 이곳 같은 대도시는 차별을 그다지 못 느끼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지니 놀랐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영향인지는 몰라도 코로나19까지 겹치니 아시안이 타깃이 된 것 같다"고 진단을 하기도 했다.

그는 "뉴스에서 불안심리를 조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다.

이날 만난 한인들은 이번 총기사건을 명백한 인종범죄로 본다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희생자도 아시안이 다수이고 인종범죄가 아닐까 한다"며 "아직은 아니지만, 방비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서모 씨는 "뉴스에 그렇게 나와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사건은 인종범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침 한인 업소들이 모여있는 이곳에 해가 지자 경찰차가 한 대 들어와 차를 세워놓고 있었다.

경찰관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고 '총기사건 때문에 순찰을 강화하는 것이냐'고 묻자 "현장에서는 할 말이 없다.

공보담당을 통해달라"고만 했다. 바로 앞 마트를 나오던 한인은 "잘은 모르겠지만 평소에는 이 시간에 경찰차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 사건 영향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