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가 성패 좌우…국책연구소 만들고 전문인력 육성해야"

기로에 선 K반도체
(3·끝) '패권 전쟁'서 이길 방법은

전문가들에게 듣는다
사회=이심기 산업부장

인공지능發 지각변동 시작
올해가 반도체산업 '변곡점'
시스템반도체 집중투자 필요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부터)과 임형규 전 SK텔레콤 ICT기술성장 총괄 부회장,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도체산업 좌담회에서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인공지능(AI) 반도체에 집중 투자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국책연구소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이 ‘기로에 선 K반도체’를 주제로 최근 연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이 제시한 해법이다. 참석자들은 국가대항전 성격으로 번지고 있는 반도체 패권 전쟁에 대해 “한국 기업에 위기 요인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이심기 한국경제신문 산업부장 사회로 열린 좌담회엔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임형규 전 SK텔레콤 ICT기술성장 총괄 부회장이 참석했다.
이심기 산업부장
▷이심기 부장=각국의 반도체 패권 다툼이 치열하다. 한국이 메모리 세계 1위라고 하지만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양향자 최고위원=기술 전쟁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경제계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 줄기차게 경제계와 함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따로 움직여선 기술 패권 국가가 될 수 없다.▷최기영 장관=변곡점에 서 있다. 중국이 쉽게 따라올 수 있는 분야가 많다. 한국이 자신만만했다가 큰일 날 수 있다.

▷이 부장=한국 기업들은 어떤 포지션에서 어떤 전략적인 방향을 찾아야 할까.

▷임형규 전 부회장=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의 굴기가 본격화하기 전까진 위상을 유지할 것 같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는 도전하는 입장인데 적어도 ‘톱2’는 유지할 것이다. 결국 ‘시스템온칩(SOC) 관련 팹리스를 어떻게 키우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 부장=한국 팹리스의 수준이 메모리나 파운드리보다 떨어지는 상황인데.

▷임 전 부회장=이미지센서는 위상이 높은데, SOC는 중국이 우리를 추월할 정도다. TV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구동칩(DDI)은 우리가 내재화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가 TV에서 ‘세계 1위’ 하는 데 역할을 했다.▷최 장관=팹리스 수가 적은 건 아닌데 규모가 큰 기업이 몇 개 안 된다.

▷이 부장=한국 팹리스도 몸집을 키울 수 있을까.

▷최 장관=AI와 빅데이터를 포함하는 미래지향적인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해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땐 중견기업,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양 최고위원=팹리스들의 연구개발(R&D) 능력이나 인력 구성이 글로벌 수준은 아니다. 인수합병(M&A)을 통해서 퀄컴처럼 키워야 한다. 막히는 게 있다면 제도적으로 풀어줘야 한다.

▷이 부장=대기업이 팹리스를 잘하면 되는 게 아닌가.

▷최 장관=메모리는 제한된 분야의 깊이 있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다양한 기기와 엮여서 ‘다양하고 종합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시스템 반도체를 잘하려면 다양한 이력을 갖춘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부장=기업에선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 장관=그렇다. 첫 번째론 대기업이 원하는 기술인력을 공급하기에도 부족하고 그런 인력이 중소기업 또는 벤처기업에 가지 않는다. 그동안 인력을 키우는 데 소홀했다. ‘반도체는 잘하는데 왜 투자해’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양 최고위원=기술력은 인재에서 나오는데 교육이 너무 잘못돼 있다.

▷이 부장=인력이 핵심이라는 정답은 나와 있는데, 중요한 건 실행이다.

▷최 장관=정부가 애를 쓰는데 제도상 제약이 많다. 예를 들면 수도권 학생 수 제한 같은 제약이 있다. 지방이 발전해서 우수한 인력이 많이 나오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한 중요한 분야에 인력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임 전 부회장=삼성을 제외한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인력을 육성하기 어렵다. 차라리 ‘반도체 국책연구소’ 또는 ‘국립 반도체센터’를 세워서 전문인재를 끌어모으는 건 어떨까. 높은 레벨의 전문인력이 나와야 한다.

▷이 부장=소재, 부품, 장비를 다 키우는 건 어렵지 않을까.

▷임 전 부회장=핵심 전략 분야를 정해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국가적인 그림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지금 메모리가 세계 1위고 파운드리, 이미지센서는 궤도에 올랐다. NPU, AP 중 하나만 더 올라오면 파워풀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될 것이다.

▷양 최고위원=눈길을 끈다고 해서 따라가면 안 된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정해서 정부 차원에서도 투자해야 한다.

▷이 부장=삼성전자가 반도체산업을 키워 국가 전체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양 최고위원=정치권에서 선도국가 이야기를 하는데, 국내엔 세계를 선도하는 1등 기업이 있다. 그런데 1등 기업의 문화를 배우려고 하는 정치인이 한 명도 없다.

▷임 전 부회장=고(故) 이건희 회장이 한 일 중에 중요한 일은 인재경영이다. 성공의 핵심은 기술이다. 기업이 10년 이상 인재에 투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정부 역할이다.

▷이 부장=한국의 노동여건이나 세제 지원이 열악한 것 같다.

▷양 최고위원=반도체를 잘하려면 인재들이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해외 기업은 16시간씩도 일한다. 우리나라에서 자꾸 52시간 이야기하는데 반도체산업에선 예외가 필요하다고 본다.

▷임 전 부회장=동의한다. 미국에선 전문직의 경우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한국에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일정 이상 임금을 받는 근로자의 경우 연장근로수당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미국의 근로 제도)이 필요하다.

▷이 부장=정부 뉴딜펀드의 차세대 반도체 투자에 대해 ‘잘하는 분야에 왜 투자하냐’는 잡음이 나오는데.

▷최 장관=뉴딜펀드는 미래 유망한 분야에 투자한다. 잘되는 분야의 파이를 키우자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한다. 반도체의 기회는 AI에 있다. 코로나19가 잦아들면 새로운 세상에서 미래산업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양 최고위원=결국은 기술이 정치를 이긴다. 앞으로 5년은 과학, 기술, 경제, 기업 출신 전문가들이 주류로 올라가 국가경영도 해봐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한 단계 올라간다.

정리=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