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를 개막한 바스쿠 다 가마의 힘찬 도전 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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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가 볼을 몰고 상대방 골문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한다. 그리고는 강력한 슈팅을 날려 결승골을 만들어 낸다. 그는 포효하고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겅중겅중 춤을 추며 열광한다. 이 모습은 마치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열고 승승장구하는 포르투갈의 이미지와 무척이나 닮았다. 대항해 시대의 영광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는 아직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번영의 발자국이 서려있다.
대항해 시대를 개막하기 이전의 포르투갈은 침체되고 우울했다.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붙은 이 작은 나라는 오랜 기간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그 이후 몰려들어 온 이슬람 세력의 손아귀에서 신음했다. 대서양을 바로 눈앞에 두었건만 바다로 나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포르투갈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 나타나 비로소 찬란한 바닷길을 열어 주었다.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영웅의 이름이다. 그는 유럽 변방의 약소국을 15세기에 이르러 세계 최대의 해상강국 포르투갈로 재탄생시킨 최고의 항해사이자 지도자였다. 3차 항해를 떠나 인도에서 숨을 거둔 그의 시신은 리스본으로 옮겨져 제로니모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는 살아서 리스본을 떠났고 죽어서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리스본은 위대한 항해사의 출발지였고, 영웅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리스본에는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가 있다. ‘바스쿠 다 가마’ 로 명명(命名)된 17.2 킬로미터 길이의 사장교(斜張橋)는 포르투갈 국민의 그에 대한 존경을 상징한다. 마치 그가 개척한 신대륙으로의 여정이 연상될 정도다. 그 다리 위를 그의 혼령이 지켜보며 수호신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근래의 포르투갈을 보는 그의 심정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머리에 똬리를 틀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리스본에서 보는 모든 것은 빈티지가 오래된 와인의 맛과 같다. 보는 것이 맛과 같다고 느끼는 나만의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오래 입어 너덜거리는 옷이 아닌 오래 입을 수로 멋이 살아나는 빈티지 청바지나 길이 잘 든 가죽 옷과도 같다. 코메르시우 광장 주변 길바닥에 꽂힌 파도 모양의 타일마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노천카페와 식당들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우구스타 거리, 건물 자체가 하나의 문화재인 로시우 기차역, 그리고 이곳이 남방임을 새삼스레 일깨워주는 야자수까지 뭐 하나 사연이 없어 보이는 것이 없다. 가장 포르투갈다운 음식이라는 ‘바깔라우’를 먹고 있노라면 리스본은 내가 알던 기존의 유럽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서양을 바라다보는 옛 건물에서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느낄 수 있다.)리스본 근처에 있는 카스카이스(Cascais) 해변에는 고풍스런 옛 건물들이 많이 있다. 대서양을 바라다보는 그 건물과 함께 나도 수평선을 바라다본다. 수평선 위로 보이는 뭉게구름이 마치 항해사의 수염처럼 보인다. 바람에 휘날리는 항해사의 수염은 어느덧 석양을 머금은 채 사라진다. 열등감에 사로 잡혀 큰일을 못할 것 같은 사람은 리스본의 거리를 걷는 게 좋다. 왜냐하면 시작은 미미했지만 엄청난 성공을 만들어낸 지도자의 도전 정신이 도시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하는 열등감은 이 도시 리스본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리스본 자체가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바다 여행의 시작점이었으며, 동시에 막대한 재화의 집결지였으니까 말이다. 아무런 인공조미료도 사용하지 않은 바깔라우가 먹고 싶어지는 4월 중순에 리스본 여행을 추억해본다.
대항해 시대를 개막하기 이전의 포르투갈은 침체되고 우울했다.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붙은 이 작은 나라는 오랜 기간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그 이후 몰려들어 온 이슬람 세력의 손아귀에서 신음했다. 대서양을 바로 눈앞에 두었건만 바다로 나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포르투갈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 나타나 비로소 찬란한 바닷길을 열어 주었다.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영웅의 이름이다. 그는 유럽 변방의 약소국을 15세기에 이르러 세계 최대의 해상강국 포르투갈로 재탄생시킨 최고의 항해사이자 지도자였다. 3차 항해를 떠나 인도에서 숨을 거둔 그의 시신은 리스본으로 옮겨져 제로니모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는 살아서 리스본을 떠났고 죽어서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리스본은 위대한 항해사의 출발지였고, 영웅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리스본에는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가 있다. ‘바스쿠 다 가마’ 로 명명(命名)된 17.2 킬로미터 길이의 사장교(斜張橋)는 포르투갈 국민의 그에 대한 존경을 상징한다. 마치 그가 개척한 신대륙으로의 여정이 연상될 정도다. 그 다리 위를 그의 혼령이 지켜보며 수호신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근래의 포르투갈을 보는 그의 심정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머리에 똬리를 틀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리스본에서 보는 모든 것은 빈티지가 오래된 와인의 맛과 같다. 보는 것이 맛과 같다고 느끼는 나만의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오래 입어 너덜거리는 옷이 아닌 오래 입을 수로 멋이 살아나는 빈티지 청바지나 길이 잘 든 가죽 옷과도 같다. 코메르시우 광장 주변 길바닥에 꽂힌 파도 모양의 타일마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노천카페와 식당들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우구스타 거리, 건물 자체가 하나의 문화재인 로시우 기차역, 그리고 이곳이 남방임을 새삼스레 일깨워주는 야자수까지 뭐 하나 사연이 없어 보이는 것이 없다. 가장 포르투갈다운 음식이라는 ‘바깔라우’를 먹고 있노라면 리스본은 내가 알던 기존의 유럽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서양을 바라다보는 옛 건물에서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느낄 수 있다.)리스본 근처에 있는 카스카이스(Cascais) 해변에는 고풍스런 옛 건물들이 많이 있다. 대서양을 바라다보는 그 건물과 함께 나도 수평선을 바라다본다. 수평선 위로 보이는 뭉게구름이 마치 항해사의 수염처럼 보인다. 바람에 휘날리는 항해사의 수염은 어느덧 석양을 머금은 채 사라진다. 열등감에 사로 잡혀 큰일을 못할 것 같은 사람은 리스본의 거리를 걷는 게 좋다. 왜냐하면 시작은 미미했지만 엄청난 성공을 만들어낸 지도자의 도전 정신이 도시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하는 열등감은 이 도시 리스본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리스본 자체가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바다 여행의 시작점이었으며, 동시에 막대한 재화의 집결지였으니까 말이다. 아무런 인공조미료도 사용하지 않은 바깔라우가 먹고 싶어지는 4월 중순에 리스본 여행을 추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