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당나라 군대인가? - 기업 핵심가치의 중요성



1. 1802년 설립된 듀폰의 대표적인 핵심가치는 ‘Safety(안전)’이다.(이외에 보건, 환경보호, 윤리준수가 있음) 듀폰은 내외부 사람을 막론하고 회의를 시작하면 건물 평면도를 펴 놓고 화재 등 재난상황 시 안전하게 대피하는 방법을 공유한다. 차량 승차 시는 반드시 안전띠를 착용하고, 운전 중 휴대폰 사용 금지, 사무실 책상에 필기도구는 뾰족한 부분을 바닥을 향하게 하는 등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를 예방하도록 규정화하고 있다. 창업 초기인 1818년 대폭발사고로 34명이 사망하고, 생산설비가 파괴되어 회사의 존폐위기를 맞은 경험과 교훈은 ‘Safety’라는 핵심가치를 조직운영의 원칙과 기준으로 만들어 놓았다. 듀폰에서 핵심가치 실천은 인사고과 반영은 물론 실수에 의한 위반 조차도 해고사유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 1892년 설립된 GE의 대표적인 핵심가치는 ‘Integrity(정직성)’이다.(이외에 성과지향, 변화추구 및 8Values 4Actions가 있음) GE에는 약 1,000여명의 변호사가 있는데 이들의 주요 임무는 직원들이 ‘Integrity’를 잘 지키는지를 감시하는 하는 것이다. 그들은 ’Integrity’에 대해서는 ‘예외도 없고 다음 기회도 없다’라고 말한다.

3. 1901년 설립된 미국 최고의 백화점 노드스트롬의 핵심가치는 ‘고객에 대한 최우선적인 봉사’이다. 단 한 번도 판매한 적이 없는 자동차 타이어를 현금으로 교환해 주거나, 백화점에 여권을 놓고 간 고객을 위해 공항까지 찾아간 직원이야기, 고객이 원하는 바지의 재고가 없자 다른 백화점에 가서 정가대로 사와 할인가격에 판매한 것 등 서비스의 기적이라 할 수 있는 무수한 감동사례를 가지고 있다.

100년 이상 지속해온 기업이 오늘날까지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핵심가치와 연관이 깊다. 고인이 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사망 전 인터뷰에서 “우리의 핵심가치들이 변해 무너져 버린다면 저는 차라리 이 일을 그만 두겠습니다. 우리는 애플 초창기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노련해지고 경험도 많아졌지만 핵심가치는 변함없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우리의 가치는 5년 전 혹은 10년 전과 같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핵심가치는 기업의 성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4. 삼성그룹 홈페이지에는 ‘우리의 핵심가치는 삼성 기업정신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며 모든 삼성인의 사고와 행동에 깊이 체화된 신념을 말한다’라고 쓰여 있다. 덧붙여 핵심가치는 ‘삼성이 가장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이자 신념으로서 삼성의 위대한 내일을 위한 성공 DNA’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반인에게 삼성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하면 ‘최고’ ‘인재’ ‘변화’ ‘정도’라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삼성은 그들의 핵심가치를 ‘인재제일’ ‘최고지향’ ‘변화선도’ ‘정도경영’이라고 표방하고 있다. 그들이 선언하고 있는 핵심가치와 일반인이 생각하는 이미지의 일치도가 매우 높은 사례이다. 이는 핵심가치가 조직에 잘 정착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여기에 삼성의 핵심가치가 하나가 더 있다. 삼성의 다섯 번째 핵심가치는 ‘상생추구’이다. 삼성은 ‘상생추구’에 대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삼성이 많은 장점과 공헌에 비해 부정적인 사회적 이슈가 된 부분 때문인지 ‘상생추구’는 조금은 생소하게 들리는 면이 없지 않다.

5. 현대자동차그룹 홈페이지에는 핵심가치를 ‘경영철학(미션)과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내재화하여, 행동과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추구하는 가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반인에게 현대차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하면 ‘도전’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현대차는 ‘도전적 실행’ ‘글로벌지향’을 핵심가치로 하고 있다. 여기에 ‘소통과 협력’ ‘고객최우선’ ‘인재존중’을 합쳐 5가지 핵심가치를 가지고 있다. 과거 정주영 명예회장이 있을 때, 현대그룹 정신인 ‘창조적 예지’ ‘적극의지’ ‘강인한 추진력’을 시대환경에 맞게 바꾼 사례이다. 그룹 분리 후 10년여가 지난 상황이라 새롭게 만들어진 5가지 핵심가치를 조직에 정착시키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6. 한화그룹은 2011년 5월 ‘한화 핵심가치 선포식’을 개최했다. 그 자리에서 ‘도전’ ‘헌신’ ‘정도’라는 핵심가치가 발표되었다. 김승연 회장은 선포식 식사를 통해 ‘핵심가치는 전 임직원들이 갖추어야 할 신념’이라고 정의했으며, ‘도전’ ‘헌신’ ‘정도’는 한화 정신인 ‘신용과 의리’를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맞게 재해석해 전 임직원의 행동지침으로 구체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포식 후 한화그룹 홈페이지에 한화 정신은 어느 곳에도 표현되어 있지 않으며 ‘도전’ ‘헌신’ ‘정도’ 만을 표방하고 있다.



삼성, 현대, 한화는 내년에 60주년을 맞는 한화를 포함하여 60년 이상 지속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창업주인 고 정주영, 이병철, 김종희로부터 현재 2세 경영자로 이어져 오는 과정에서 이들 기업의 핵심가치는 기본 뼈대를 유지해 온 공통점이 있다. ‘최고의 삼성’ ‘도전의 현대’ ‘의리의 한화’는 수십만 명 직원들의 변함없는 원칙과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이들 기업을 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었다. 핵심가치는 단순하게 홈페이지나 액자 속에 있는 구호가 아닌 실재적인 조직의 운영원리 라는 의미이다.



7. 성공한 중견기업 경영자 A사장은 직원들의 설문결과를 보고 당황했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경영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 ‘매출’이라는 답을 했다. 경영자는 ‘매출이나 수익’은 일의 결과이기 때문에 ‘매출을 올리라’라고 독려하는 것은 성과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직원들이 해줬으면 하는 것은 ‘정직하게 일하고, 서로를 신뢰하자’ 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20년 가까이 기업을 잘 이끌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직원들은 경영자를 ‘매출’만 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8. 컨설팅 분야에서 국내 1위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우리 회사가 일하는 원칙과 기준’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5명의 임원들이 얘기한 핵심가치는 제각각이었다. A 임원은 변화와 혁신이라고 말했고, B임원은 도전과 창조라고 말했다. C임원은 고객만족이라고 말했고, D임원은 협력과 상생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임원은 품질이라고 말했다. 경영자는 신설업체가 난립해 단가는 떨어지고 경제상황도 나빠지는데 말이 업계 1위지 점점 줄어드는 마켓쉐어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 기업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는데 결과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한 마디로 임원들 각자의 개인기로 움직이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9. 악세사리를 만드는 A기업이 새롭게 정립한 핵심가치는 ‘명품의 대중화’이다. 작은 기업이지만 ‘명품화’를 통해 강력한 팬을 확보하며 발전해 왔는데, ‘대중화’를 선언하면서 몇 개의 제품이 ‘싸구려’ 취급을 받으며 기존 제품의 매출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명품이란 원한다고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특별한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대중화란 보편적인 사람들이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기업의 변하지 않는 원칙과 기준인 핵심가치 자체가 모순을 일으켜 죽도 밥도 안 될 위기를 만든 사례이다.



10. 얼마 전 일간지 1면에 기업의 이미지 광고를 낸 기업이 있었다. 광고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 기업은 윤리경영, 소비자 신뢰, 투명 경영을 통해 고객만족을 추구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는 직원 폭행 사태, 오너 재산의 국외 유출 등 의혹을 받으며 기업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는 와중에 나왔다. 문제는 이 광고 후 의혹은 사실로 밝혀져 경영자가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기업의 본질은 대외적인 이미지 광고로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소기업은 일반적으로 역사가 짧다. 규모도 작다보니 오너 등 경영자의 힘이 절대적이다. 경영자 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래서 기업의 핵심가치는 곧 경영자의 생각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경영자의 생각이 곧 기업의 생각이기 때문에 경영자의 일관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중소기업 경영자 중에는 ‘일하는 원칙과 기준’에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 많다. 경영자가 ‘이랬다 저랬다’하면 직원들은 헷갈릴 수 밖에 없고 모든 의사결정이 경영자에게 집중된다. 그리고 직원들은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피동적인 존재가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경영자는 온갖 일에 관여하여 정신을 못 차리지만, 오히려 직원들은 놀고 있는 상태가 자주 반복되어 ‘루즈하고 책임감 없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모든 의사결정이 경영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을 넘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힘들다.



‘당나라 군대’라는 말이 있다. 병사들은 오합지졸이고 장군은 흐리멍텅해서 군기는 빠져있고, 가지고 있는 무기조차 제대로 닦고 조이고 기름치지 않아 적군이 오면 도망가기 바쁘고 패배하고 마는 군대를 빗대서 하는 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변함없는 일하는 원칙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으면, 리더들은 일관성 없이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고 직원들은 원치 않게 놀고 있거나 경영자의 입만 쳐다보게 된다.



100년 이상 지속하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기업의 공통점은 어떤 경영자가 오든 변치 않는 핵심가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핵심가치 데로 실천하는 것이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 현대, 한화 등 국내 굴지의 기업 사례 또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 기업은 어떻게 일하는가?

모든 직원들이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일하는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을 넘어 대기업으로, 대기업에서 글로벌기업으로 성공하는 열쇠는 핵심가치를 도출하고 일관성있게 행동하는데 달려있다. Ⓒ JUNG JIN HO

정진호_IGM 세계경영연구원 이사, <일개미의 반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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