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자존심이 밥줄 끊어 놓는다

[정진호의 그리스신화] 거미가 된 아라크네

어느 회사원이 술에 만취하여 집에 돌아가던 날 영문도 모른 채 붙잡혀 15년 동안 어느 골방에 갇히게 됩니다. 15년 후, 그는 이유도 모른 채 바깥 세상으로 내보내집니다. 그리고 자신을 누가 감금했는지 그리고 왜 감금했는지를 알기 위해 밤거리를 헤집고 다닙니다. 억울해 미칠 지경인 된 그는 어느 날 일식집에서 만난 젊은 아가씨와 동침하게 되고, 후에 그 여인이 자기 딸 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고통을 못이겨 스스로 자기 혀를 자르기까지 합니다. 영화 <올드보이> 의 주인공 오대수(최민식 분)의 비극적인 이야기 입니다. 왜, 평범한 회사원인 오대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오대수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친구인 이우진(유지태 분)과 친누나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게 됩니다. 오대수는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는데 별 생각없이 이우진과 이우진의 누나가 부적절한 관계라고 떠 벌리고 떠납니다. 사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얘기이고 오대수는 자기가 한 말을 까맡게 잊어 버립니다. 그러나 이 소문으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이우진의 누나는 투신자살합니다. 어느 회사원이 15년을 골방에 갇혀지내고 근친상간을 하고 혀를 잘라버린 원인이 가십거리로 별 생각없이 뱉은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근친상간’이라는 명예를 훼손시키는 말 한마디 였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명예살인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이 임신을 하면 아버지가 장남에게 권총을 줘서 여동생을 죽이게 하고, 차남이 대신 자수를 하면 아주 가벼운 처벌을 하는 제도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제도이지만, 처녀가 애를 갖는 것은 가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이슬람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인 제도로 여겨졌던 관습입니다.

명예나 자존심은 떡이 나오는 것도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 정신세계와 관련이 깊지만, 명예를 훼손시키면 밥줄을 끊어 놓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신화에는 거미가 된 아라크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테네 어느 마을에 아라크네라는 베를 짜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베 짜는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사람은 물론 숲의 요정까지도 그 모습을 넋을 잃고 구경을 하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솜씨를 감탄해서 “아마도 저 솜씨는 공예의 여신 아테나에게 배웠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얘기를 들은 아라크네는 화를 내며 “나는 아테나 여신에게 베를 짜는 기술을 배우지도 않았고, 오히려 여신과 대결해도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잘난 척을 합니다. 올림푸스산 꼭대기에서 이 얘기를 들은 아테나 여신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아테나는 노파로 변신해서 아라크네를 찾아 옵니다. 노파는 아라크네에게 “인간끼리는 경쟁해도 좋지만 신과는 경쟁하지 말라”라며, “아테나 여신에게 용서를 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고만장한 아라크네는 오히려 “아테나 여신과 대결하면 제가 이길 거예요”라고 말했고, 화가 난 아테나 여신은 여신의 모습으로 변신해서는 사람들 앞에서 베 짜기 대결을 시작합니다. 공예의 여신 아테나는 천상의 솜씨를 뽐내며 올림푸스 열두 신의 모습을 그린 베를 짭니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최고의 신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해서 여자를 유혹하는 그림의 베를 짭니다. 사람들은 아테나와 아라크네의 베 짜기 솜씨에 벌린 입을 다물 줄 모르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베 짜기를 마친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그림을 보더니 분노한 목소리로 “이런 괘씸한 것! 감히 신을 모욕하다니”라며 들고 있던 칼로 아라크네의 베를 잘라 버립니다. 순간 자기의 잘못을 깨달은 아라크네는 그 길로 도망을 가서 나무에 목을 맵니다. 아테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라크네를 한 마리의 거미로 변신시켜 평생 실을 뽑아 거미집을 짓게 만듭니다. 거미가 된 아라크네 이야기는 명예를 훼손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보여둡니다. 그리스신화로 돌아가서 아테나는 올림푸스 열두 신 중 하나로 전쟁의 여신이자 공예의 여신입니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아테나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도시일 정도로 아테나는 비중이 큰 신이었습니다. 그런 아테나에게 인간이 베 짜기 솜씨를 벌인 것은 명예를 모욕하는 행위였습니다. 신화 속 인간은 신이 만든 피조물로서, 아라크네가 뛰어난 솜씨를 가졌지만, 인간 중에 최고에 만족했어야 했습니다. 다른 신이라면 모르겠지만, 아테네의 주신이자, 공예의 여신 아테나와 경쟁하려고 한 것은 지나친 자만심이었습니다. 특히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명예를 모욕한 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아라크네가 솜씨 대결을 벌인 정도였다면, 아라크네는 평생 아테네 신전에서 굳은 일을 하는 노예가 되었거나, 눈이 머는 정도의 처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솜씨 대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신 중의 신인 제우스까지 모욕한 것이었습니다. 제우스가 바람둥이인 사실은 신들도 알고 인간도 아는 바이지만, 감히 아라크네가 사람들 앞에서 베를 짠 것은 아테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거듭해서 신을 모욕한 아라크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멀리 도망을 쳐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비록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건 없지만 자존심은 지키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자존심은 명예를 자기 입장에서 표현하는 말입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것은 안 참는다.”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의 말입니다. 조직생활에서 감정적인 대립은 주로 명예와 관련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명예를 삶의 가치로 삼는 사람이라면 명예를 지켜줘야 합니다. 직급이 높다고 하여 부하직원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면 절대로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어렵습니다. 부하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상사에게 대드는 행위는 조직에서 대표적인 명예를 짓밟는 행위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될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상대방의 명예가 부딪히면 어떻게 하는가?” 나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족’과 같은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에 양보하는 편이 올바르고 하겠습니다. Ⓒ JUNG JIN HO

정진호_IGM 세계경영연구원 이사, <일개미의 반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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