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면
아파트 앞에 커다란 공터가 있다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을 터인데
협상이 잘 안되어서 몇년째 공터로 있다
거기에 물웅덩이가 몇개 있는데
이번 장마철에 맹꽁이들이 우는 것이다

작년만해도 맹꽁이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유난히 열흘 가까이 울어댄다
비가 오면 낮이도 울고 밤이면 어김없이 밤새 우는 것 같다
그 소리가 옛날에 많이 들어보던 소리라 시끄럽게 들리지는 않는다이 아파트 단지는 옛날에는 공해로 유명한 공장지대였다
사방이 철로, 자동차도로로 둘러싸여서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맹꽁이가 어떻게 저 웅덩이에 나타났는지 궁금하다
맹꽁이는 보통 때에는 흙속에서 살기 때문에 나타나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장마철에 물이 괸 웅덩이에 모여서 저렇게 울면서 짝짓기를 하는 것이다
공장지대였기에 그 옛날부터 맹꽁이가 살지는 않았을 것이고
사방이 차들이 씽씽 다니는 데 도대체 어떻게 저 웅덩이에 나타난 것인지
개체수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닌데
몇날며칠을 울어대는 것을 보면 아직도 짝을 못 찾았나 보다

한밤에 들리는 맹공이소리는 더없이 좋지만
아직도 짝을 못찾은 녀석들을 생각하면 안쓰럽다
어차피 다른 웅덩이와 단절되어 있으니
그 웅덩이에 있는 녀석들과 적당히 짝을 지어야 한다
누가 그렇게 고르는 것일까
맹일까? 꽁일까?

맹꽁이는 맹꽁 ! 하고 울지 못한단다
맹! 하고 우는 놈이 있고 꽁! 하고 우는 놈이 있단다
우리가 듣기에는 맹 아니면 꽁인데
울음주머니의 크기에 다라 소리가 조금씩 다르다
짝을 부르는 소리 맹 그리고 꽁
그 맹꽁이소리가 여름 내내 들렸으면 좋겠지만
짝짓기를 하고 산란을 하면 더 이상 울 필요가 없다짝이 그리워 여기저기에 맹! 꽁!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나저나 저기 빈터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으면
도대체 저 맹꽁이들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미리 이사를 할 줄 모르는 저 맹꽁이들의 운명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도 맹!
너도 꽁!




장마철 맹꽁이를 위한 변명.

박병상

“아이구 이 맹꽁이!” 가르쳐주어도 가르쳐주어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동생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내뱉는 말이 대개 ‘맹꽁이’다. 여기서 맹꽁이는 머리 나쁜 동물의 이미지로 부정적으로 등장한다. “장마철의 맹꽁이야 너는 왜 울어. 걱정 많은 이 심사 달래려 우나.” 트롯풍의 옛 가요 가사의 한 대목이다. 여기는 친근한 이미지로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6월 중순 이후 장마철, 한 바탕 쏟아진 장마로 헛간과 뒷간 주변에 빗물과 함께 인분이나 두엄 썩은 물이 고이면, 축축한 땅속에서 참고 기다리던 맹꽁이가 드디어 모습을 나타낸다. 다른 개구리들이 낳은 알은 부화한 지 이미 오래다. 뒷다리는 물론 다 나왔고 꼬리도 거의 들어간 게 변태 직전인데, 맹꽁이는 여름이 완연한 뒤에야 짝을 찾으려 나선 것이다.



몰려든 먹구름으로 달도 별도 가려진 칠흑 같은 밤, 두엄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작은 물웅덩이는 맹꽁이에게 안전공간이다. 맹꽁이 소리에 귀를 쫑긋거릴 족제비도, 밤눈이 밝은 올빼미도 맹꽁이 산란장엔 얼씬도 않는다. 뱀도 가까이 않는 지독한 물웅덩이, 장대 같던 장마가 잠시 멈춘 길일을 택한 맹꽁이들은 저녁 무렵부터 ‘맹- 맹-‘ ‘꽁- 꽁-‘ ‘맹- 맹-‘ ‘꽁- 꽁-‘ 띄엄띄엄 울기 시작한다.



일단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틀어막아야 한다. 냄새가 지독하기 때문이 아니다. 맹꽁이 소리는 코가 막혀 있어야 제대로 흉내낼 수 있다. 코를 막고 “맹-“하면 인기척으로 잠시 조용해졌던 맹꽁이들이 움츠렸던 목을 잡아빼고 턱 밑의 울음주머니를 한껏 부풀린다. ‘맹-‘. 다시 코를 움켜쥔 채 “꽁-” 해보자. 맹꽁이들은 영락없이 ‘꽁-‘ 한다. 이번엔 코를 막고 “맹-꽁-” 해보자. 맹꽁이도 따라서 ‘맹-꽁-‘ 할까? 아니다. 맹꽁이들의 레퍼토리는 ‘맹-‘에서 ‘꽁-‘까지, 가지고 있는 울음주머니의 크기에 따라 다채로운 음역을 제 암컷에게 과시하지만 한 개체가 ‘맹-꽁-‘ ‘맹-꽁-‘ 하지는 않는다. 맹꽁이들의 경연장에서 들러오는 레퍼토리까지 종합하여 사람들은 맹꽁이라 불렀을 것이다.



맹꽁이는 머리가 좀 나쁜 동물일까? 억지로 앉혀놓고 연습문제시키면 누군들 기분 좋았을까. 입이 쑥 튀어나온 머리통을 몇 대 쥐어박으면 완력이 약한 동생은 억울해 엉엉 울거나 훌쩍이겠지. 코는 꽉 막혔을 테고. 뭐라 핑계를 대거나 떼쓰는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는 맹꽁이 울음소리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문제는 더욱 안 풀리고, 한 대 더 얻어맞고, 또 울고. 영락없는 맹꽁이였을지 모르나, 정작 장마철의 맹꽁이로서는 어이없을 노릇이다. 반대로, 언제 그칠지 기약할 수 없는 떨어지는 주룩주룩 장마철 빗소리에, 듣는 사람들은 걱정거리가 하나 둘이 아닌데, 비 그치자 들려오는 맹꽁이 소리는 걱정 많은 우리네 심사를 달래주는 듯 하다. 맹꽁이에게 그런 해석이 차라리 맞다.



천적이 멈칫거리는 여름밤을 택한 맹꽁이는 장마철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번식을 한다. 뙤약볕으로 물웅덩이가 바싹 마르면 맹꽁이 올챙이는 말라죽겠지만 맹꽁이는 그 전에 모든 절차를 마친다. 알에서 올챙이로, 올챙이에서 다시 맹꽁이로 성공적으로 변태하는데 한 보름이면 충분하다. 변태가 끝난 어린 성체는 몸 하나 가득 물기를 머금고 다시 축축한 땅속으로 들어가 이듬해 장마철을 기다리는데, 그런 맹꽁이는 장마철이 유일한 세상 나들이인 셈이다. 또한 여름 뙤약볕에도 절대 노출되지 않는 것이다.



맹꽁이는 우리에게 자신의 지능 따위를 평가 의뢰하지 않았다. 맹꽁이의 지능은 맹꽁이의 삶에 최적으로 적응된 결과일 따름이다. 두엄 썩은 물웅덩이가 더럽다거나 냄새가 지독하다는 편견도 다만 인간들의 시각일 따름이다. 예방주사도 모자라 항균제품으로 둘둘말고 살아가는 인간은 스스로 위생적인 환경에서 깨끗하게 살고 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지만, 소독약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은 차라리 허약하다. 뇌물 협작 부정부패들로 얼룩진 인간은 맹꽁이보다 깨끗하다고 자부할 수 없을 것이다. 회색도시 공장굴뚝 기계화농지, 자신만의 이기적 잣대로 자기 생명의 터전인 생태계마저 허물어대는 사람은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화학농법과 기계화를 전제로 한 경지정리사업은 축축하게 유지되던 맹꽁이의 오랜 터전을 오염시키고 딱딱하게 다졌다. 두엄을 불필요한 것으로 몰아낸 화학농법, 시골마다 도입된 실내 수세식화장실로, 맹꽁이는 더 이상 우리 농촌에서 발붙이지 못한다. 원시림 파괴와 대규모 개발, 그로인한 사막화로 나타나는 세계 규모의 기상이변은 우리의 장마철마저 들쭉날쭉하게 만들었다. 장마철의 맹꽁이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맹꽁이는 우리 농촌에서 울지 않는다. 맹꽁이가 울지 못하는 생태계에서 인간들은 언제까지 깔끔떨며 살 수 있을까.

농약살포 드문드문한 일부 농촌 마을에 맹꽁이가 아직 살아있다고 한다. 우리는 맹꽁이와 오랜 세월동안 생태계를 공유하지 않았던가. 걱정 많은 이 생태계에 굳굳하게 살아남아 있는 맹꽁이에게 사람들은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사라질 때 인간의 삶도 결코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맹꽁이도 생태계의 한 식구이기 때문이다. (물푸레골에서, 2000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