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방 지각생' 배민에 오뚜기 팔도 롯데까지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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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X고기리 신상도 배민行…'푸드 라방' 왕좌 노리는 배민용인 고기리막국수는 연간 30만 명이 다녀가는 전국구 맛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한 그릇에 8000원짜리 막국수를 먹기 위해 사람들은 전국에서 몰려와 줄을 섰다. 하루 1000그릇 이상의 막국수가 팔리며 지난해 연매출은 30억원을 넘어섰다. 가게 문을 연 지 9년 만에 이룬 성과다.
"맛있는 건 배민이 제일 잘 아니까"
'라방 전쟁' 뛰어든 배민, 푸드 전문 라방으로 경쟁
오뚜기 팔도 롯데제과 등 전통의 강자들 '배민행'
MZ세대 이해도 가장 높고 '배민 팬덤'도 한몫
지난 달. 고기리막국수와 오뚜기의 협업 소식에 막국숫집 단골들은 크게 환호했다. 대표 메뉴인 '들기름막국수'를 오뚜기가 가정간편식(HMR)으로 내놓는다고 알려지면서 "출시일이 언제냐", "무조건 대량구매각이다" 등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22일 오뚜기는 '고기리 들기름막국수'를 30일 출시한다고 밝혔다. 첫 출시 플랫폼은 대형마트나 기존 온라인 유통채널이 아닌 '배민쇼핑라이브'. 식품업계가 통상 '선오프라인 후온라인 전략'이나 동시 출시 전략을 쓰던 것과 정반대의 행보다. 배달의민족이 만든 배민라이브는 라이브 방송 업계의 후발주자이지만 식품과 외식업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플랫폼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동네 맛집부터 대형식품제조사, 육가공회사와 유업계까지 눈독들이는 강력한 푸드 전문 플랫폼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배민 라이브로 몰려가는 식품 강자들, 왜?
배민은 지난 9일 국내 배달 앱 가운데 최초로 음식 특화 라이브쇼핑 서비스를 공식 출범했다. 배민의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4500만 건, 월간 순방문자 수가 1200만 명을 넘는다. 대형 식품 제조사들이 배민라이브를 주목하는 이유는 배민이 라이브 쇼핑 전쟁터에서 음식에만 특화된 전문적인 앱이라는 것. 그리고 미래의 강력한 소비 세대인 10대와 20대가 주 고객층이라는 점이다. 오뚜기뿐만 아니라 CJ푸드빌 뚜레쥬르와 교촌치킨이 협업한 '뚜레쥬르 교촌 고로케', 팔도의 '틈새치즈떡볶이', 굽네치킨 '소맛닭', 도드람 한돈, 롯데제과 등이 배민 쇼핑라이브 편성표에 이름을 올렸다.식품업계 관계자는 "인스타나 네이버와 달리 배민 앱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음식 구매'라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들어온다"며 "백화점식 판매가 아니라 식품전문점이라는 점에서 구매로 이어질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배민이 첫 방송을 했던 망원동 '경기떡집편'은 누적 시청자 수가 8만 명을 넘어섰다. 동네 맛집 네트워크와 베스트셀러 메뉴 DB를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어 콘텐츠 큐레이션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배민은 "맛있는 건 배민이 제일 잘 아니까"라는 카피로 푸드 라이브 커머스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B급 마케팅의 원조…하림 너겟엔 영양사, 고기 팔 땐 정육왕
배민은 B급 마케팅의 귀재다. 눈길을 끄는 언어유희와 '떡볶이 마스터스' '치킨 마스터스' 등의 참여형 이벤트로 1020 세대의 놀이터로 성장했다. 웹툰 플랫폼 '만화경' 영상 놀이앱 '띠잉' 등에 투자하며 배달앱의 비즈니스 영역을 제한하지 않고 1020 세대와 소통하기 위한 채널을 다방면으로 깔았다.배민 라이브에서도 이 같은 노하우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대량 구매해 쌓아놓고 먹는 상품을 팔 땐 '쟁EAT템! 야食장', 미국산 블랙앵거스 토마호크를 팔 땐 '고기에 진심인 편', 안주 메뉴를 팔 땐 '부대찌개와 멘보샤를 맛보샤-안주하는 삶', 에어 프라이어 전용 상품을 팔 땐 '가전주부' 등의 코너를 만드는 식이다. '가전주부' 코너에서는 에어프라이어와 손맛 좋은 할머니가 실제 조리 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배민은 자사의 브랜드 경쟁력으로 인플루언서와 셀럽 등도 대거 끌어들였다. 육류를 팔 때는 인기 유튜버 '정육왕'이 호스트로 참여한다. 김구라-MC그리 부자, 유튜버 카페사장 최준 등이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 유병재의 ‘쇼핑 나이트 라이브'등도 대기 중이다. 급식 메뉴로 익숙한 하림의 너겟 제품은 영양사가 호스트로 카메라 앞에 선다.
그렇다고 웃음만 자아내는 건 아니다. 배민 특유의 감성과 이색 마케팅 전략도 곳곳에 묻어난다. 오뚜기와 협업한 오뚜기X고기리 들기름막국수는 주인장인 유수창·김윤정 씨 부부를 찾아가 인터뷰하고, 대기하는 손님들의 멘트를 넣어 현장감을 살렸다. 국숫집 창업 스토리부터 제품이 출시된 배경 등을 짧은 영상 안에 진정성 있게 녹여냈다는 평가다.
김용훈 우아한형제들 신사업부문장은 "배민쇼핑라이브는 '좋은 음식을 먹고싶은 곳에서'라는 배민의 철학을 바탕으로, 전국의 맛집과 신선한 먹거리를 실시간으로 만나고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면서 "쇼핑라이브에 최적화된 파트너와 상품을 발굴하고, 그에 맞는 재기발랄한 콘텐츠 구성으로 보고 싶은 방송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전국 맛집 사장님들 "우리도 배민 라방 원해요"
배민이 푸드 라이브에서 갖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은 전국 맛집 DB다. 그 동안 전국의 장사 잘되는 집, 잘 팔리는 메뉴의 DB를 섭렵하고 있는 배민은 전국 배달 맛집의 인기 메뉴를 밀키트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배민 라이브에서만 선보이는 신제품과 제철음식, 지역특산물 등도 다채롭게 선보인다. 선한 일, 옳은 일에 흔쾌히 지갑을 여는 MZ세대를 겨냥하고 있는 만큼 방송 첫날부터 기부 이벤트도 벌였다. 경기떡집 최길선 명장은 배민과의 첫 방송을 기념해 방송 종료 후 판매 금액과 상관 없이 1000만원어치의 떡을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를 통해 기부했다.
배민이 그 동안 전국 외식 자영업자들과 쌓아놓은 두터운 신뢰는 푸드 라이브를 빠르게 안착시키는 핵심이 되고 있다. 배민이 자영업자들의 경영 노하우, 세무와 회계 비법, 장사 노하우 등을 전수한 '배민 아카데미'는 지금까지 2만5000여 명의 자영업자들이 참여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배민의 고객사들은 "어려울 때 배민아카데미에서 실전 노하우를 배워 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잇다라 내놨다.
대구 수성구와 북구에서 한식 밥집 3곳을 운영 중인 남해용 카페동이 대표는 "작년 매출이 2019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는데, 온라인 배민아카데미에서 배운대로 메뉴 분석과 손익계산 분석 등을 한 뒤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10년 넘게 매운 닭요리 전문점 '간판없는 집'을 운영하는 김홍석 씨는 "코로나 여파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배민아카데미를 수강하며 배달 메뉴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기존 고객사와 배민 아카데미 수강생들은 배민 라이브 출범을 환영하며 언젠가 꼭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잇따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