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후배, Z 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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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 ZZZ,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아직은 아침 저녁으로 조금 쌀쌀하다.
출퇴근 하기에 아주 좋은 느낌을 갖게 되는 요즘 날씨에,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궁금하구나. 강남을 가로 지르는 길가 나무와 잔디엔 어느 샌가 연녹색 봄 색깔로 물드는가보다.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조화를 느끼면서, 조용한 휴일 아침에 사무실에 나와 이 글을 쓴다. 미루어 놓은 일도 정리해야겠고, 각종 서류 더미들이 너무 지저분하게 쌓여 있어, 생각이 혼란스러워 나왔단다.
얼마 전 네가, 나에게 만나 달라는 전화를 했을 때, 너무 바빠 시간 내주지 못해 정말 미안했다. 그래, 요즘도 어려움이 많다며? 어째 좀 나아졌는지 궁금하구나.
회사를 그만 두려고 고민하는 시점에서 또 다시 부서를 옮겼다고 하니 생소한 업무를 이해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려 환경에 적응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니? 그래서 더욱 힘들어 하고, 어디론가 막연히 도피하고 싶어하는 네 마음 잘 안다. 나도 예전에 한 때는, 상사와 생각이 맞질 않아 오랫동안 마음고생하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많이 고통스러워 했던 적이 있지. 그러나, 이제, 한 10여년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생각이 좀 달라지는구나.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다르고, 생각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살다 보면, 타인에게 섭섭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 역시 남에게 불편하게 할 적도 있고, 미처 생각치 못한 잘못으로 타인을 불편하게 할 때도 있었더군. 그 때 그 때 당시에는 잘 모르고 지나 갔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반성하고, 고쳐 보려고 하지만, 또 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니?
어쨌거나, 너도 이왕 그렇게 된 거, 여러 가지 일을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과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어떻겠니? 시간과 세월은 너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네가 곧 30대 중반이 되고, 금방 40대 중반이 지날지도 모른다. 현재는, 네가 아무리 업계에서 구하기 힘든 전문인력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너도 많은 사람을 다루어야 하는, 한 조직의 長이 되기도 하고, 여러 분야의 거래처를 넘나들며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사업가가 될지, 누가 알 수 있겠니?
그런 머지 않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전문분야만 고집할 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능력도 키워야 할 뿐만 아니라, 하다 못해 매끄럽게 글을 쓰고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표현력도 길러야 하지 않겠니?
행여 너희 조직에서 선후배들간 관계유지에 어려움이 있고, 금새 풀어 내기 힘든 문제가 있더라도, 가급적 마음 내면으로부터 솔직하고 정직한 바람을 이야기 하고,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거다. 때로는, 술자리에서 많이 취하지 않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훈련도 해야 할 거고,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이라도 맡기기만 하면 최선을 다 해서 풀어 보려고 노력하는 연습도 필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힘이 들 때면, 부서 직원들과 영화를 보러 가든지, 식구들과 음악회라도 한 번 다녀 오면 어떨까? 때로는 만화책도 읽고 인사동 미술관에도 들러 보렴. 의외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꽤 많단다.
이 모든 일들 또한 너의 부단한 노력과 정성을 필요로 한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도 많이 읽어서, 가치관을 바르게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부지런히 배우려는 노력을 해야겠지?
그런 게 모두 누구를 위해서겠니? 머지 않은 미래에 불안해 하지 않기 위한 대책일 수도 있고, 현재를 충실히 보내면서 밝은 앞을 예측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아니겠니? 연일 끔찍한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고, 곧 세계 전쟁이 날 것처럼 난리 법석을 떨지만, 인류 역사를 돌아 보며 연대표를 살펴 보면, 뭐 대단한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든단다. 다 그런 거 아니겠니? 그런 불확실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끔은 아름다운 일이 교차 되기에 금방 잊고 살 수 있는 우리들의 오늘은 진정 아름다운 세상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야말로 험하고 고달픈 삶의 연속인지도 모르지.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요, 저마다의 느낌에 따라 다른 것이지만, 그래도 길지 않은 인생 더욱 아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일상에서 느낀 아름다운 삶의 방식”에 대하여 감히 몇 자 적고자 한다.
첫째,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하며 사는 거다.
어떤 모습들이 아름다운 생활을 살게 하며, 타인을 즐겁게 만들 수 있으며,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니? 우선, 밝은 표정과 자신 있는 걸음걸이, 상냥한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보여질 수 있어야 할 것 같구나. 한 조직 – 직장이나 학교, 가정과 사회단체 등 – 에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공손하고 친절하며, 정직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한 사람과 불친절하고 무례하며, 남의 말을 막고 무시하며, 매사에 독단적이고 과민반응하며 또한, 위협하고 실력 없이 뽐내는 사람”이 있지. 이들 각자가 본인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과 조직에 끼치는 영향은 의외로 매우 크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게다.
삶의 가치관이 바르고,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표현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들에게는 잘못되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며, 그들이 평안한 생활을 유지하고자 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갖고 도와 줄 것이므로 어려운 일도 줄어들지 않겠니?
반면에, 위장된 웃음과 손익을 계산한 만남에서 꾸며지는 언어와 행동에는 항상 불안이 따르게 되고, 메마른 감정으로 인해 풍요로운 인간관계는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바른 사고방식과 부드러운 언행으로 생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한 두 번째 방법은 독서라고 생각 한다. 짧은 기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모두 체득하고 타인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독서는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 최선의 길이라고 빌 게이츠는 말했지. 재산 늘리는 법이나 건강하게 사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요즘 쏟아져 나오는 경제 경영 서적, 수필, 자서전 등은 물론, 고전이나 묵은 소설이라도 골고루 읽어서 다양한 느낌과 간접경험을 통하여 지혜를 얻는다면 편협하거나 독선적인 감정은 줄어들지 않을까?
수 많은 케이블방송과 다양한 잡지, 인터넷에 올라오는 쓰레기 같은 이야기들을 정보라고 착각하여 집중해야 할 능력을 낭비하거나, 연예활동이나 레저스포츠 등 놀이 문화가 확산되어 정신적?물질적 문명이 오염되는 것 같아, 그나마도 약한 독서생활에 한층 더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단다.
세 번째, 음악을 들으면서 생체리듬의 조화를 유지시킴으로써 정신적 건강을 찾는 일이다.
가축에게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들려 주면 기분이 좋고 혈액순환이 잘 되어 건강하고 품질 좋은 고기와 우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하고, 과수원에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를 들려 주면 과일이 더 달고, 크다고 하는데, 어찌 인간에게 그런 영향을 간과할 수 있겠니?
건강하게 살겠다고 온갖 보약을 찾고 수영장과 체육관을 찾아 다니며 시간과 돈을 쓰는 것도 좋지만, 조용한 집안에서 뇌세포와 신경조직을 평안하게 해 주는 아름다운 선율을 가까이 하여, 체내 근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피부미용은 물론, 위염이나 위궤양 등 각종 질병들도 치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니?
가끔은 연극도 보러 가려므나. 연극 배우들의 대사나 몸 놀림도 재미있지만, 준비한 소품들도 놀랄 만 하단다. 연극 배우들의 다양한 역할과 수시로 바뀌는 상황전개를 보면서, 관객들은 연출자, 주연, 조연, 엑스트라 등 구성원 모두의 일체감과 단결 없이는 제대로 표현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
목이 쉬고 다리가 아프도록 공연시간 내내 뛰어 다니는 주연배우 옆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가 있고, 불만 껐다 켰다 하는 조명기술자가 있고, 커튼만 올렸다 내렸다 하는 사람도 있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소품들을 재빠르게 옮겨 놓으며 준비하느라 남 모르게 땀을 흘리는 이도 있다. 시간 내내 연주되는 음악에는 단 몇 초간만 움직이는 심벌즈 연주자도 있고, 대부분의 시간을 연주해야 하는 바이올린 연주자도 있다. 이들 모두는 크고 작은, 길고 짧은 음률을 각자 자기 순서에 맞춰 연주하는 것이며, 지휘자는 섬세한 관찰과 흡인력으로 한 사람의 단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렇게 개인마다의 역할과 짜임새를 정확히 갖추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선율은 우리들의 귀에 도달하는 거 아니겠니? 이러한 연극이나 음악회에 누가 얼마나 더 중요하며 또한, 불필요한 사람이 누가 있겠니?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거나 누군가의 게으름이 나타난다면 이처럼 아름다운 음악과 장대한 연극은 연출될 수 없겠지. 그래서 교향악단을 ” ~필 하모니(philharmonic, 조화를 사랑하는)” 오케스트라라고 부르는가 보다.
며칠 전 늦은 저녁에, 영등포 공장지대 뒷골목을 지나다가 떡을 만드는 공장을 유심히 구경했단다.
공장이랄 것도 없이 떡 뽑는 기계 한 대에 아주머니 서너 명과 아저씨 두분 뿐인 가내공업 형식의 조그만 떡방아간이었지. 그 “조직”에서도 저마다의 역할과 임무는 성실히 수행되고 있더군. 숙달된 손놀림으로 밤 열시가 넘도록 땀을 흘리며 자르고, 나르고, 포장하고, 옮기고 하면서, 혼연일체가 되어 내일 새벽에 전국 각지로 배달될 떡볶이용 떡을 부지런히 만들고 있었다. 한참동안 구경을 하며, 규칙적이고 능률적으로 손발을 맞춰가며 일하는 모습에서 조직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단다.
그렇다.
연극이든, 음악이든, 떡 만드는 공장이든, 우리 모두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건강이든 모두 자연의 이치 즉, 조화를 따르는 것이지. 그리하여 상호간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능률과 생산성은 나타나는 거 아니겠니?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간절한 소망과 바람이 무엇이든, 모두들 각자의 능력과 우수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여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물론 없겠지.
그러나, 조화와 협력, 화합 등 “이 좋은 의미의 어휘들”이 말로만 떠들어서 무슨 가치가 있을까?
밤늦도록 흘릴 수 있는 땀이 필요하고, 간장이 녹아 내리도록 참고 이해하는 인내가 따라야 한다. 맑은 웃음과 밝은 표정 뒤에는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가 따르는 것이다. 그래야 제로 섬 사회(Zero-Sum Society)의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그런 이치도 깨달아야 한다.
“나는 관심 없으니 몰라도 된다”고 한다면 무책임을 떠나 조직의 일원으로서 자격미달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는 가정환경에서 자라 각양각색의 인품과 성격을 가진 여러 직종, 직급의 조직원들이 모여 합창을 하고 연주를 하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다. 지휘자의 지휘봉이 가끔 흔들리거나 일부러 머뭇거릴지라도 우리는 지휘자의 방침에 따라 적재적소에서 자기의 역할과 임무만 충실히 수행하면 될 거라고 믿는다. 욕심도 생기고 갈등도 있겠지만, 이는 역시 자신이 이해하고 해결해야 할 것이며, 어떠한 사심이 일더라도 조직에 악영향을 끼쳐서는 안될 것이다.
20여년간 청춘을 바쳐 일하시고, 여러 자식 다 길러 놓고, 건강하신 얼굴로 정년을 맞이 하시는 선배 어른들을 뵈올 때마다 존경하는 마음 금할 수가 없구나. 그간 얼마나 많은 갈등과 어려움, 그리고 육체적 고통이 따랐겠니? 많은 사람들과의 만나고 헤어짐에 인색함이 없이 모든 이들과 잘 어울리며, 직분과 역할에 더함과 부족함이 없이 애써 일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서류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란다.
가끔은 욕심도 생기고 불만도 있었고, 때론 피할 수 없는 언쟁으로 시끄러운 때도 있었겠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느라 마음에도 없는 타협도 했겠지. 그러나, 좀 더 깊은 생각과 멀리 보는 안목으로 조직사회에서의 자기역할을 충분히 생각하고 이해함으로써 내적 감정을 삭히고, 외적 충돌을 감수하며 그 때마다 잘 견디어 왔으리라. 그리하여, 각종 재해가 빈발하고, 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병고로 시달리는 현대 사회에서 건강한 몸으로 정년을 맞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니? 늙게까지 농사를 짓고, 사업을 하고, 교육에 힘쓰시는 모든 어른들. 그들은 삶의 조화를 알고,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신 분들이란다.
그래도 힘이 들고 고민이 쌓이면 전화 한 번 하고 놀러 오련? 삼겹살에 소주나 한 잔 하면서 “인생”을 이야기 하자꾸나. 하여간, 회사 생활 열심히 해서 많은 것 배우고 경험하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몸 조심하구 말야.
며칠 전, 어느 책에서 읽은 글을 소개 하며 마칠까 한다.
1930년 1월 어느 겨울 날, 미국에서, 22세의 청년 한 명이 장거리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밤새 달렸다. 그의 손에는 뉴욕대학 졸업장이 들려 있었다. 새벽에 도착한 5 대호 근처 어느 공장지대에선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며칠을 헤메다가, 그 곳에서 겨우 일자리를 얻은 그는, 공장 청소, 용접, 짐 나르기, 기계닦기 등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들을 몇 년간 해 보았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그는 불후의 미래예측 전문가가 되었다.
앨빈 토플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