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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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이렸을 적에, 외할머님께서, 모든 식구들이 잠을 자는 새벽에 일찍 깨어나 부시럭거리며 곰방대 물고 성냥을 찾으시며 담뱃불을 부치시던 걸 보았습니다. 담배 연기에 콜록거리며 뒤치닥거릴 때면, 행여 손주가 깨어 날까 추운 새벽에 슬며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 때는 몰랐었는데, 요즘 나이가 들면서 가끔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을 경험합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온 다음 날 새벽이나, 왠지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든 날 다음 아침엔 눈이 일찍 떠집니다. 갑자기 일어 나기도 하고, 잠이 오지 않아 비몽사몽을 헤메다가 그냥 이불을 박차고 일어 납니다. PC 앞에 앉기도 하고, 읽다가 밀쳐 놓은 책을 다시 끌어다 놓기도 하고, 멍하니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있기도 합니다. 화장실에 나왔다가 방으로 들어 가는 집사람이나 아들 딸들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하얀 종이를 펼쳐 놓습니다. 예쁜 만년필을 들지요. 끄적거리며 쓰고 싶은 글을 써 봅니다. 해야 할 일도 적었다가 생각나는 사람들 이름도 적어 봅니다. 술 취한 사람처럼,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림도 그렸다가 미래도 그렸다가, 생각나는 대로 뭔가를 적어 보고, 그리고, 지워 봅니다.
창조력 전문가 쥴리아 카메론은 이와 같은 저의 행동을 “Morning Page 쓰기”라고 정의(定意)하였습니다. 인체는 새벽 4시부터 6시 사이에 성장호르몬이 가장 많이 발산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그 시간에 힘이 솟는다고 하지요. 물론, 그 시간에 두뇌의 활동도 가장 왕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에 글을 쓰고 상상을 하면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 오른다고 합니다. 전날 밤에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어 보거나, 읽다 말고 잠에 든 책을 다시 펴 들면, 언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 옵니다.
냉수를 한 잔 마시고 나니, 잠든 식구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집니다. 각자의 방에 들어가 쌔근거리며 잠자고 있는 아들과 딸, 아내의 얼굴을 바라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한 남자가 인간으로 태어나 거느려야 할 사람들이 여기서 곱게 잠자고 있다니, 누굴 믿고 이렇게 들어와 잠을 자고 있는 걸까?
이들은 나와 무슨 인연일까?
내가 언제까지 이들을 돌보아야 할까?
내가 없다면 이들은 어디서 누구와 자게 될까?
별의 별 궁상맞은 생각을 다 해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고향에서 주무시고 계실 시골집 어른과 강 옆에 사시는 어른들 생각이 납니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는 아버님께서 일어나 마당을 쓸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어른들이 뵙고 싶어집니다.
잠시 밖으로 나와 봅니다. 아파트 계단을 뛰어 다니며 신문을 던지는 사람의 빠른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집 신문은 벌써 문 앞에 놓여 있습니다. 신문을 들고 들어 오려는데, 어디선가 청소부 아저씨의 빗자루질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내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길거리에 차가 달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아마 그 버스에는, 새벽에 빌딩을 청소하러 가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 새벽 시장을 보고 오는 아주머니들이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장갑을 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잠이 덜 깬 상태로 흔들거리며 앉아 있을 겁니다. 잠시 후면 천만이 넘는 서울 시민들이 동시에 일어나 난리법석을 떨면서 하루를 시작하겠군요. 그 시간에 한꺼번에 쏟아내는 대소변의 양이 얼마나 될 것이며 한꺼번에 퍼부어 내는 수돗물의 양이 얼마나 될까도 생각해 봅니다. 또 별 생각 다 해 봅니다.
정신이 돌아 올 때 즈음, 하루 계획을 점검합니다. 만나야 할 사람과 전화를 하고 싶은 사람들, 갑자기 미운 사람으로 떠오르는 대상과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일과표를 정리합니다. PC를 꺼내 놓고 쓰던 글을 마자 씁니다. 읽지 않고 쌓아 두었던 신문도 뒤적거리며 좋은 사설이나 칼럼을 살펴 보다가 어제 비행기에서 얻어 온 영자 신문도 들춰 봅니다. 한참 동안 이상한 짓을 하다 보면 눈이 감길 듯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 때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듭니다. 아직 아침이 오려면 한 시간이 남았습니다. 시계를 맞춰 놓고 다시 잠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무슨 짓 하는 건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뭔가 한 일이 있습니다. 남들 모두 곤히 잠든 새벽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도깨비 짓을 하면서, 써 보고 그려 보고 처리한 일들이 몇 가지 됩니다. 가장 심오한 생각을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가치를 제공합니다.
무의식 상태에서 의식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의식이 돌아 올 때 즈음 무의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면서, “살아 있는 죽음”도 경험할 수 있는 값진 시간입니다.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그릴 수 있으며, 새로운 각오와 용기를 충전할 수 있는 색다른 밤의 의미를 느껴 보는 겁니다. 청소년시절에 깨어 있던 새벽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옵니다. 마치 그 때 읽던 소설이 다른 언어로 느껴지듯이.
가끔 일찍 일어나 모두가 잠든 새벽의 멋을 느껴 보세요.
살아 있는 맛이 달라집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온 다음 날 새벽이나, 왠지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든 날 다음 아침엔 눈이 일찍 떠집니다. 갑자기 일어 나기도 하고, 잠이 오지 않아 비몽사몽을 헤메다가 그냥 이불을 박차고 일어 납니다. PC 앞에 앉기도 하고, 읽다가 밀쳐 놓은 책을 다시 끌어다 놓기도 하고, 멍하니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있기도 합니다. 화장실에 나왔다가 방으로 들어 가는 집사람이나 아들 딸들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하얀 종이를 펼쳐 놓습니다. 예쁜 만년필을 들지요. 끄적거리며 쓰고 싶은 글을 써 봅니다. 해야 할 일도 적었다가 생각나는 사람들 이름도 적어 봅니다. 술 취한 사람처럼,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림도 그렸다가 미래도 그렸다가, 생각나는 대로 뭔가를 적어 보고, 그리고, 지워 봅니다.
창조력 전문가 쥴리아 카메론은 이와 같은 저의 행동을 “Morning Page 쓰기”라고 정의(定意)하였습니다. 인체는 새벽 4시부터 6시 사이에 성장호르몬이 가장 많이 발산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그 시간에 힘이 솟는다고 하지요. 물론, 그 시간에 두뇌의 활동도 가장 왕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에 글을 쓰고 상상을 하면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 오른다고 합니다. 전날 밤에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어 보거나, 읽다 말고 잠에 든 책을 다시 펴 들면, 언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 옵니다.
냉수를 한 잔 마시고 나니, 잠든 식구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집니다. 각자의 방에 들어가 쌔근거리며 잠자고 있는 아들과 딸, 아내의 얼굴을 바라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한 남자가 인간으로 태어나 거느려야 할 사람들이 여기서 곱게 잠자고 있다니, 누굴 믿고 이렇게 들어와 잠을 자고 있는 걸까?
이들은 나와 무슨 인연일까?
내가 언제까지 이들을 돌보아야 할까?
내가 없다면 이들은 어디서 누구와 자게 될까?
별의 별 궁상맞은 생각을 다 해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고향에서 주무시고 계실 시골집 어른과 강 옆에 사시는 어른들 생각이 납니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는 아버님께서 일어나 마당을 쓸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어른들이 뵙고 싶어집니다.
잠시 밖으로 나와 봅니다. 아파트 계단을 뛰어 다니며 신문을 던지는 사람의 빠른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집 신문은 벌써 문 앞에 놓여 있습니다. 신문을 들고 들어 오려는데, 어디선가 청소부 아저씨의 빗자루질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내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길거리에 차가 달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아마 그 버스에는, 새벽에 빌딩을 청소하러 가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 새벽 시장을 보고 오는 아주머니들이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장갑을 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잠이 덜 깬 상태로 흔들거리며 앉아 있을 겁니다. 잠시 후면 천만이 넘는 서울 시민들이 동시에 일어나 난리법석을 떨면서 하루를 시작하겠군요. 그 시간에 한꺼번에 쏟아내는 대소변의 양이 얼마나 될 것이며 한꺼번에 퍼부어 내는 수돗물의 양이 얼마나 될까도 생각해 봅니다. 또 별 생각 다 해 봅니다.
정신이 돌아 올 때 즈음, 하루 계획을 점검합니다. 만나야 할 사람과 전화를 하고 싶은 사람들, 갑자기 미운 사람으로 떠오르는 대상과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일과표를 정리합니다. PC를 꺼내 놓고 쓰던 글을 마자 씁니다. 읽지 않고 쌓아 두었던 신문도 뒤적거리며 좋은 사설이나 칼럼을 살펴 보다가 어제 비행기에서 얻어 온 영자 신문도 들춰 봅니다. 한참 동안 이상한 짓을 하다 보면 눈이 감길 듯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 때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듭니다. 아직 아침이 오려면 한 시간이 남았습니다. 시계를 맞춰 놓고 다시 잠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무슨 짓 하는 건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뭔가 한 일이 있습니다. 남들 모두 곤히 잠든 새벽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도깨비 짓을 하면서, 써 보고 그려 보고 처리한 일들이 몇 가지 됩니다. 가장 심오한 생각을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가치를 제공합니다.
무의식 상태에서 의식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의식이 돌아 올 때 즈음 무의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면서, “살아 있는 죽음”도 경험할 수 있는 값진 시간입니다.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그릴 수 있으며, 새로운 각오와 용기를 충전할 수 있는 색다른 밤의 의미를 느껴 보는 겁니다. 청소년시절에 깨어 있던 새벽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옵니다. 마치 그 때 읽던 소설이 다른 언어로 느껴지듯이.
가끔 일찍 일어나 모두가 잠든 새벽의 멋을 느껴 보세요.
살아 있는 맛이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