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와 6.25 전쟁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를 잊어 버리는 민족은 그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슬픈 과거만 들추면서 추억에 젖어 있을 수도 없지만, 다가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 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6월을 보내며 잊을 수 없는 기록을 살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21일, 일본 후쿠오까에 있는 큐슈대학(九州大學)을 방문했다.

그 대학에서 한국사를 연구하고 있는 일본 교수의 강의를 1시간 남짓 들었다. 일제시대에 조선(朝鮮)학생이 쓴 일기를 보여 주며, 당시 한국의 생활상황과 학생들의 학습 내용을 설명했다. 비밀스러운 일기를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한글과 한자, 영문자와 약어(略語)를 섞어가며 쓴 한국 중등학생의 일기를, 일본인의 설명을 들으며 슬픈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당시 일본 조선총독부의 학제(學制)를 설명하며 일기장의 행간(行間)에 숨어있는 일본의 지배력을 이야기 하는 교수의 설명을 중단할 수 없었다.



이어 조선초급학교를 방문했다. 유치원부터 중학교 수준까지의 학생들을 한꺼번에 가르치고 있는 학교의 교정(校庭)은 300~4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였으나 겨우 48명의 학생과 10명의 교사가 있었다. 흰 저고리와 까만 치마를 입은 여교사가 두 명의 학생을 앉혀 놓고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고,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다른 교실에서는 일본어로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졸업 후의 진로에도 불이익이 올 것을 알면서도 한민족의 끈을 이어간다고 설명하는 교장선생님의 얼굴엔 가난이 배어 있었다. 한국의 위대한 영웅들의 사진과 설명이 실려 있는 그림 옆에는 한국의 책보다 일본어 책이 훨씬 많이 꽂혀 있었다.



다음 날, 나가사키에 있는 원폭피해 기념관을 둘러 보았다.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일본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 떨어진 원자폭탄의 피해 실상을 정교하게 보관해 놓았다. 기록되어 있는 연대표를 살펴 보았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합병했다는 기록은 있었으나 1945년 8월에 한국이 해방을 맞이하고, 일본이 한국을 떠났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었다.

2006년 8월 9일자 나가사키 원폭희생자위령평화기념식 자료의 “나가사키 평화선언문” 첫 줄에는 “인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로 시작되고 있었다. “피폭 61주년을 맞이한 지금, 이곳 나가사키에는 분노와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14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실로 대단한 피해임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것만 묘사하고 주장할 뿐, 그들이 왜 원자폭탄의 공격을 받았는가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중국과 한국, 동아시아 전역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의 표현이 없었다.



6.25 전쟁이 언제 있어 났는지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 일제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언제 해방이 되었는지 관심조차 없는 학생들이 늘어 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25일, 국립현충원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해외 노병들의 줄지은 참배가 있었으나 한국 지도자들의 줄은 보이지 않았다.



남북 화해가 이루어지고,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이 제멋대로 해석되고 있는 21세기라 해도, 남북통일이 되든,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든, 세계화와 글로벌 시대가 춤을 추든, 6.25 전쟁의 쓰라림이나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천년동안 당파싸움을 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자신의 역할과 의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지도자들을 보면서, 청년백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도 아무 생각도 없고 통치철학도 없는 대선주자들을 보면서,

국민들의 미래보다 자신들의 권력만을 생각하는 리더들의 거짓말을 들으며 국가의 존재 의미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