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과 소주 한 잔 마시며 하고 싶은 이야기 5가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몰입교육이라고 난리법석입니다. 어려서부터 리더십을 배워야 대학을 가건 기업체 취직을 하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들에게 반장 선거에 당선되도록 하기 위한 선거전략이 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1등을 원하고, 모두가 리더가 되려고 하는가 봅니다. 정말 그래야 할까요?

논두렁을 뛰어 다니며 메뚜기를 잡고, 개구리 흉내를 내면서 자라게 하면 어떨까요? 피아노 독주를 들으며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녁 연기 피어 오르는 시골 산골짜기 마을의 아낙네들이 물동이 이고 가는 그림을 보면서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도 좋겠네요. 역사 소설을 읽으며 선조들의 기개와 용기를 배우는 게 리더십 향상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어렸을 적에,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털썩 주저앉아 딱지치기도 하고 소꿉장난도 하다가 너무 늦어 야단을 맞은 적도 있습니다. 옷을 입은 채로 개울에 들어가 고기를 잡다가 옷이 모두 젖어 불 피워 놓고 말리다가 산불을 낸 적도 있지요.

소 먹이 풀을 뜯다가(꼴 베러 갔다가) 뱀을 잡아 자전거 뒤에 매달고 오기도 하고, 남의 밭에 들어 가 오이 몇 개 따 먹다 걸려서 우리 집 오이를 한 자루 갔다 준 적도 있습니다.

서울 친척집에 왔다가 버스를 혼자 타보고 싶어 새벽에 몰래 나와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는, 불행하게도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온 이후로 수학여행을 가보질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마포에서 K 중학교 열차사고로 인해 전국의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금지시켜서 수학여행을 못 가고, 대학교 때는 전국적인 대학생들의 시국선언과 데모(5.18 광주사태 발생시점)로 인해 졸업여행을 가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과 이야기 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 싶습니다.

사람과 동물이 어디가 다른지 생각해 보고, 오늘은 어제와 무엇이 다르고 내일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먹는 음식과 듣는 음악이 생체 리듬과 뇌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막연한 생각도 좋고 엉뚱한 상상도 좋고, 되지도 않는 공상도 좋습니다.

한가한 시간에 혼자 않아 이것 저것 생각해 보는 시간의 중요성도 생각해 보게 해야겠습니다. “생각과 신념, 가치관이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과 습관이 업무 성과와 삶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원칙(Result Cycle)을 생각해 보게 하겠습니다.




둘째, 책 읽는 법에 대해 논의해 보고 싶습니다.

독후감을 써야 하거나 논술고사를 잘 보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먼 훗날 늙어서 고독할 때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을 가르쳐 주면서, 밑줄 쳐 가며 읽은 책의 냄새 맡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면서 책을 읽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서점에 앞쪽에 가득 쌓인 베스트 셀러보다 뒷면에 가려서 잘 팔리지 않는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고르는 법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

쉽고 재미 있는 책 많이 읽는 것보다 좋은 책 한 권 제대로 읽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 주겠습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한가한 시간을 값진 인생으로 만들기 위한 존재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해 주겠습니다. “가난할 때는 위로가 되고 부유할 때는 고상한 취미가 된다.”는 독서의 의미를 해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셋째, 인간관계에 대해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후회했던, 아니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 대인관계에 대해 상대방의 잘못보다는 저의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나마 고백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지 말고, 만나기 싫은 사람들과도 어울릴 줄 알아야 하지만, 의미 없는 인간관계는 냉정하게 끊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전해 주어야겠습니다.

가슴이 저리고 마음이 아플 때는 손해를 볼 줄도 알고, 돈이나 권력만으로 사람을 사귀면 언젠가는 당하게 된다는 말도 빼놓으면 안될 것입니다. “입장이 바뀌었을 때 대우 받고 싶은 대로 그들을 대하라”는 마태복음의 황금률(Golden Rule)을 실천하도록 권해 주겠습니다.




넷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토론해 보겠습니다.

잘 나갈 때는 누구나 인심이 후할 수 있고, 어려움 없을 때는 그런대로 살만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거나 집안에 논쟁거리가 있을 때, 이를 피하려 하거나 비관하지 않으며, 또 다른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 주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나 자살을 생각하지 않고, 기회와 도전을 발판으로 삼는 방법을 가르쳐야겠습니다.

“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네 몸에 병이 없으면 교만해 지나니, 병고(病苦)로써 양약을 삼으라”라는 불교의 법어(法語)를 잊지 않도록 가르치겠습니다.





끝으로, 돈 버는 방법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해야겠습니다.

살아 오면서 자주 갈등을 겪고, 혼란스러움에 빠졌던 경제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토론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실천하기 힘든 저축과 낭비, 절약과 투자에 대한 개념과 현실적인 문제점들에 대해 진지한 반성과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해야겠습니다.

사고 싶은 것을 사지 않을 수 있는 자제력과 사야 할 것을 살 수 있는 용기의 차이에 대해 – 결과로 판단할 것인가 과정도 중요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논의해 보겠습니다.

올 가을, 아들이 전역하기 전에 마무리 휴가를 나오면, 딸과 아내와 함께 가까운 근교로 가서 밤새워 소주 한 잔 마시며, 온 식구가 모여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