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유인우주선 ‘창어’의 작명법 -슬픈 항아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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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어는 중국의 달탐사 유인우주선의 이름이다. 창어는 嫦娥의 중국어 발음으로, 우리말로는 항아인데 상아라고 읽기도 한다. 필자가 1993년 중국에 유학하던 당시에는 북경시내에 소달구지가 지나가곤 했었다. 지금 북경이야 초현대식도시로 탈바꿈했지만, 소달구지는 중국의 중소도시를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터이니, 중국에는 소달구지와 유인우주선이 당분간 공존하게 될 것 같다. 구슬픈 멜로디로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상아의 노래’도 이 嫦娥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달나라에서 산다는 항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그런데 항아의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기는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항아가 달나라에 살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항아는 본래 예(羿)의 아내였다. 예는 백성을 위해 재앙을 없앤 신화 속의 영웅이다. 예는 본래 하늘의 신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요순시대에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나타나 너무 뜨거워서 사람들이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이에 상제가 예를 보내 땅위의 사람들을 돕게 하였다. 예는 그의 神弓을 사용해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뜨려 재난을 해결하였다. 그러나 태양은 상제의 자식이었으므로, 상제가 크게 노해서 예를 신의 지위에서 인간으로 떨어뜨렸다. 이 때문에 아내인 항아도 같이 인간이 되었다. 신은 죽지 않지만, 인간은 죽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예는 죽지 않기 위해서 西王母에게 불사약을 청했는데 항아가 훔쳐 먹고는 달로 도망쳤다.(박미라, 중국의 종교문화, 길, 1997. 76-77 인용. 淮南子 曰羿請不死之藥於西王母 姮娥竊而奔月. 注曰姮娥羿妻 羿從西王母 請不死之藥 姮娥服之 得仙奔月 為月精.)
여기에는 서왕모나 항아가 女神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음과 더불어, 인류의 영원한 꿈인 불사약이 남성이 아닌 여성의 소유로 비쳐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약간 의외이긴 하지만 여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고대의 무당들이 질병치료에 이용하던 약물의 효능이 과장되어 이런 불사약의 전설로 발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잔스츄앙, 여성과 도교, 48-51쪽 참조)
사실 중국신화에는 의외로 여신들이 자주 등장한다. 위에서의 서왕모는 불사의 상징이자 여신의 왕인데, 山海經이란 책에는 ‘표범의 꼬리에 호치(虎齒)를 지녔으며, 휘파람을 잘 불고 봉발(蓬髮)에 화승(華勝-머리장식)을 꽂은 괴수(怪獸)와 같은 모습을 지닌 여신’이었다고 한다. 이 위풍당당한 여신은 뒤에 남성우월주의가 횡행하면서 남신의 배우자로 구조조정된다. 중국의 천지창조신화의 주인공인 女媧라는 여신도 있다. 여와씨가 오색의 돌을 이용해서 천지를 창조해냈다는 것인데, 천지를 창조한 신격을 남성이 아니라 여성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기독교의 창조신화가 여호와라는 부성적 인격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이 상고시대의 여신들은 원시 모계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화라고 한다.月宮 嫦娥의 전설은 그녀가 不死를 얻긴 했지만, 남성에 의해서 불사의 천도복숭아를 훔쳤다는 비난을 받고 달나라로 쫓겨났다는 내용을 갖고 있다. 후세에는 항아가 두꺼비로 변했다는 -여성으로서는 치명적인 상처를 받을- 이야기까지 만들어졌다. 삼족오와 함께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두꺼비는 바로 이 항아의 변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항아의 이야기는 전통사회에서는 연민의 대상이자 비난의 대상이었다. 왜냐면 아릿다운 미녀가 달나라에서 혼자 눈물짓고 있다는 사실은 연민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남편이 먹을 불사약을 훔쳐먹고 도망쳤다는 사실은 삼종지도와 칠거지악의 전통윤리관념으로는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이브의 신화와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판소리극 춘향전의 고향에 있는 廣寒樓는 본래 항아가 사는 누각의 이름인 廣寒殿에서 나온 것이다. 그 이름은 넓고 추운 전각이란 뜻으로 달나라에 혼자사는 항아에 대한 전통적 시각을 보여준다.
달나라 항아 신화에는 가부장적 봉건시대의 남성들의 이중적인 혹은 모순적인 묘한 시각을 담고있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슬픈 이야기이다. 이 슬픈 전설은 가부장전통시대에 여성이 주변인으로 전락되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전하고있다. 도대체 항아는 왜 불사약을 훔쳤을까? 불사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서? 이 문제는 중국신화상의 미스테리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과연 젊은 미모의 항아가 추한 두꺼비로 변하는 댓가를 치르면서 그렇게까지 죽지않으려 했을까? 여성에게 있어서 젊음과 미모는 영원한 가치이며, 결코 장생불사를 댓가로 포기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사회에는 자신의 미모를 가꾸려고 죽음을 불사하는 젊은 여성들이 흔하지 않은가? 또 이런 여성으로서의 본능이 과거에 없었겠는가? 설혹 남성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모진 댓가를 치르더라도 정말로 불사를 원할까?
어쩌면 정말로 불사를 훔친 것은 다시말해 여성으로부터 불사를 약탈하고 불사를 독점하려한 것은 남성이었을 수도 있다. 서왕모란 여신에게서 받은 불사약을 놓고 어쩌면 남성영웅 예는 불사약을 독점하거나 오용하려고 했었을 수 있다. 여성에게 미모에 대한 본능이 있다면, 독점과 지배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이 남성이 아닌가! 또 정력제라면 두꺼비라도 잡아먹는 이들이 바로 남성들 아닌가? 그렇다면 항아는 남성의 힘으로 음양의 법칙을 무시하고 독점되어 문란해질 운명에 놓인 불사를 지키기 위해서 불사약을 품에안고 다른 세계로 숨은 것이라고 본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러나 항아의 전설은 결코 이런 여성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못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듯, 세속의 역사란 힘을 가진 자의 붓끝에 있으니까.
현대에서는 페미니즘의 바람을 타고 항아가 새로운 캐릭터로 부각되고 있다. 가령 전통시대 비난의 대상이었던 항아가, 현대에는 ‘여성의 존엄성을 지키고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거부하고 독립한’(박미라, 중국의 종교문화, 77쪽) 당당한 현대여성의 문화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말하자면 중국판 ‘노라’에 해당된다고 할까? 우리 사회에도 출세한 남성과 결혼해서살던 미녀가 뜻밖에 이혼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동양식으로 말한다면 남성의 폭력과 압제에 맞선 현대판 ‘항아’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의 유인우주선 아폴로는 원래 제우스의 아들이자 태양의 신으로, 궁술의 신이자 죽음과 공포의 신이었다. 아폴로가 사랑했던 여인중에 다프네는 그에게서 도망치려고 애쓰다가 월계수로 변했다는 신화가 있다. 이 동서의 신화를 비교해보면 참 공교롭게도 아폴로는 예와, 다프네는 항아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달탐사프로젝트를 둘러싼 미중간의 작명법은 극단적인 콘트라스트를 보인다. 중국은 기존의 미소양극체제를 대체해서 미국에 맞서는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다시말해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미제국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다른 한 축의 중국체제를 수립하려고 한다. 아마 유인우주선의 이름을 항아로 선택한 것도 현대 페미니즘의 흐름과도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그 저변에는 스타워스식의 호전적 이미지와는 달리, 눈물짓던 전설의 미녀를 이용해서 평화를 사랑하는 중국이란 이미지메이킹을 하려는 작명법인 듯하다. 로마신화에선 비록 태양의 신과 달의 신이 남매간이라고는 하지만 아폴로가 달을 간 것은 태양의 신이 달나라를 정복한 셈이지만, 창어는 달의 여신 항아를 만나러 간 것이란 논리이다. 더구나 그녀는 슬픈 운명을 띤 미녀이자 남성우월주의에 소외받았던 소수자였으니, 그 창어가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되돌아온다면 우주과학의 성공만이 아닌 동양문화의 복권이자 문학적 상상력의 승리를 겸했다고 칭찬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과연 창어Ⅰ호는 억눌려있던 여성과 소수자의 부활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중화주의 부활의 신호탄인가? 그들은 신비의 불사약을 찾아가지고 올 것인가? 그리고 불사의 비방을 함께 공유할 것인가? 소수자의 권익을 위한다면 공유할 것이고 팩스시니카를 추구한다면 독점할 것이다. 이제는 눈물의 선녀 항아가 미소지을 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른 남성제국주의자에게 그 처녀지를 유린당하고 말 것인지, 그들의 흥미로운 작명법을 보면서 역사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