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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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신문보도를 보면 현 국가인권위원장 후보는 위장전입과 공직자재산등록 누락등의 혐의와 더불어 “교수로 재직한 35년 동안 발표한 17편의 학술논문 가운데 최소 7편에서 표절이 발견됐다”고 한다. 씁쓸한 기사를 보면서 혼자 생각해보았다.
35년동안 재직을 했으니, 30세부터 교수가 되셨나? 나는 석사논문쓰고 군대제대하니 30살이 다되던데…35년간 논문을 17편을 발표했다…흠…2년에 1편씩이군…참 요순시절이네. 그중에서도 7편이 표절이고, 나머지 10편도 의심스럽다니, 7편에서 끝날 것 같지는 않고, 아마 검증하기가 곤란해서 그렇지 그의 다른 논문들도 표절의 혐의가 짙은 셈이네… 일단 밝혀진 것만을 제외해보자. 35년에 10편인데, 남의 글을 표시안나게 손봐서 쓴 것도 있을테고, 3.5년 아니 대략 4년에 1편씩 논문을 썼다고 보면 되겠군. 그러고도 35년간 교수를 하고, 국가의 장관급 공직자가 되고… 요순시대를 넘어선 신화시대라고 할까? 참 좋은(?) 세상이네…
그는 4년에 1편을 -그것도 표절이 의심되는- 쓰고도 온갖 명예와 부와 권력을 누리지만, 우리는 보통 1년에 4편 정도의 논문을 쓴다. 그가 35년을 걸려 쓴 논문 10편은, 우리는 적어도 3년이내에 써야 교수직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전번에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면서 박사학위자의 생활난을 말했었지만, 고위공직자와 슬픈 인문학자의 인생은 같은 박사학위를 했건만, 들인 노력(input)과 결과물(output) 사이에는 천배 만배의 역함수관계가 성립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숫치로만 비교해 말하자니, 인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것 같아서, 이번에는 量이 아니라 質적으로 한번 보자. 인간의 질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분들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면 되지 않을까?같은 날 신문에는 대법관후보자의 신앙관 이야기가 실렸다. 그는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부산과 울산을 聖市化하겠다고 주동하고 나섰는데, 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자 “성시화라는 발언은 도시를 아름답고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힘써야 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또 그는 한 교회의 내부분열 과정에서 제기된 민사재판을 다루면서 원고와 피고 양쪽에 ‘화해를 위한 기도’를 요구하고, 기도가 끝난 뒤 ‘아멘’이라고 화답한 사실에 대해서도 “당시에는 쉽게 생각했는데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문제라고 느낄 것”이라며 “법정에서 기도를 하는 행위는 (통상적으로) 있는 일이 아니고 제가 좀 특이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신앙은 자유이다. 어떤 종교를 믿는가는 헌법이 정한 권리이다. 문제는 그 말솜씨이다. 참으로 말의 예술이다. 그렇지만, 진실성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접하다보면 저렇게 요핑계저핑계 구변을 구사하는 사람이 있다. 옛날 어린시절의 뒷골목 세계로 말하자면, 힘센 짱의 옆에서 가끔 얻어맞는 촉새들 스타일인데, 내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우리 강경명징한 한국사람의 성격으로는, 차라리 “나의 개인적인 신념이요 믿음입니다 그것이 잘못이라면 그 댓가를 받겠습니다”라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미덥고 좋다. 그것이 바로 엄청난 박해속에서도 한국기독교가 세계 제1의 선교국으로 거듭난 비결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저런 달변의 혀가 필요한가 보다.
하루전 신문에는 또 다른 대법관후보자의 아들이야기가 실렸다. 그 후보자는 다른 문제점도 골고루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은 장애인 요양시설 공익근무요원 모집에 응모해 입대 예정이었으나, 이를 갑자기 취소하고 자기집 옆에 있는 중앙지법에 선착순으로 단 1명만 모집하는 공익근무요원 지원신청에 접수해서, 접수시작 22초만에 원서를 접수해서 당첨이 되었다고 한다.사회 일부에서 아버지의 직장과 같은 계통인 법원의 공익근무요원 추가모집 계획을 사전에 알아내 재응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후보자는 “복무기관 모집정보는 신청접수 당일에만 알 수 있어 사전에 알고 서울중앙지법에 응모했다는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면서 대법원을 통해 낸 자료에서 “로스쿨 합격 통보가 늦어지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입대 일정을 조정한 것 뿐”이며 “신청접수 당일 본인이 PC방에서 인터넷 공고로 추가모집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접수한 결과 집에서 가까운 중앙지법에 배치받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대로라면, 최고위층인 지검장댁에 성능좋은 컴퓨터가 없을까 마는 아무튼 그 어두컴컴한 PC방에서 추가모집 정보를 우연히 보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지원서를 22초만에 접수해 당첨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원서에 어떤 내용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서류 확인할 사항 하나도 없이 그 자리에서 22초만에 원서접수를 했단다…이것은 아마 그 당시에 모든 조건을 완전하게 갖춘 상태라면 이론상으로야 가능하긴 할 것이다.
그렇게 미리 모든 자료를 준비해놓고 확인한번 할 틈도 없이 일사천리로 써서 올렸다면 가능할까 모르겠지만, 나는 본적과 현주소를 아무리 빨리 써도 제대로 썼는지 다시 한번 확인까지하는데만 22초가 걸리던데…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공지사항 확인하고 다운로드 받아서 한글파일로 한번 읽는 것까지만 친다하더라도 아무리 빨라도 22초는 더걸리던데, 도대체 22초 접수라는게 귀신이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지를 모르겠다. 세상에 한석봉은 글자 한 획 쓰는데, 5분이 걸렸다는데…한석봉같은 미련한 둔재(?)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술한잔에 시한수 술 한말에 백편의 시를 지었다는 이태백의 머리도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테고, 일필휘지로 휘갈겨쓴 왕희지의 번개같은 붓끝도 그를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우연치고는 참으로 공교롭다.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아니면 그가 바보인가? 이런 것이 고위공직자들의 속성인가? 아니면 현정권의 속성인가? 고위공직자들은 그 가족들까지도 국민들 위로 초법적으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닌다. 법앞의 평등이 아니라, 법앞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이 정권들어서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고 있자니, 불행하게도 하나의 규칙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하나같이 병역기피 위장전입 탈루탈세 표절 그리고 편향성과 (진실성 없는 때로는 거짓으로 보이는) 변명이다. 이 정권의 출범 처음부터 이제 정권의 끝까지 고위공직자 후보들에게는 어김없이 이런 규칙성이 나타난다. 물론 그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 문제가 되는 후보가 나타나서 물의를 빚었을뿐, 이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이제 국가를 지도하고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할 사람들이 위법 탈법과 범죄의 담장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으니, 안타깝고도 창피스럽기 짝이 없다.
유유상종이란 말은 진실이다. 자신이 더러우니,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더러운 친구들만 불러들이는 것이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는 옛말대로, 까마귀는 까마귀대로 백로는 백로대로 노는 물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유유상종으로 모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무의식의 세계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까마귀인 것을 알고 있고 의식하고 있다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백로를 초빙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아 저 놈들이 까마귀였구나! 라고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더 새까만 까마귀들을 자꾸 앞장세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까마귀들은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저사람들이 양심도 없나 싶지만, 어쩌면 그것은 진심일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우화를 보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탈무드인가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고 한다. 먼지에 찌든 굴뚝을 치우고 나온 청소부가 있고, 깨끗한 굴뚝을 청소하고 나온 청소부가 있다. 둘중에 누가 씻으러 갈까? 정답은 깨끗한 굴뚝에서 나온 청소부이다. 왜냐면, 더러운 굴뚝에서 나온 청소부는 깨끗한 굴뚝 청소부의 깨끗한 모습을 보고 자신도 깨끗할 것으로 생각하고, 깨끗한 굴뚝 청소부는 더러운 굴뚝 청소부의 더러운 모습을 보고 자신도 저렇게 더러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대다수의 우리 국민 서민들은 순수하다. 자기 집 마련하려, 자식 공부시키고 여의려 그저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 노후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한숨만 나온다. 그 뿐이다. 법이라고 하면 무서워떨기만 할 뿐, 법을 올라타고 재주를 부린다거나 다른 욕심을 부린다거나 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다. 그런데 잘나가는 고위공직자들은 온갖 탈법 위법을 교묘히 저지르면서 거대한 금자탑을 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더럽지만, 국민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고 자신도 순수하다고 간주한다. 심지어 어떤 까마귀들은 자신들이 아예 백로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희극인지 비극인지…자신들이 혼탁하게 만들어놓은 이 세상에 마치 홀로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슬픈 역설적 진실이다.
신문보도를 보면 현 국가인권위원장 후보는 위장전입과 공직자재산등록 누락등의 혐의와 더불어 “교수로 재직한 35년 동안 발표한 17편의 학술논문 가운데 최소 7편에서 표절이 발견됐다”고 한다. 씁쓸한 기사를 보면서 혼자 생각해보았다.
35년동안 재직을 했으니, 30세부터 교수가 되셨나? 나는 석사논문쓰고 군대제대하니 30살이 다되던데…35년간 논문을 17편을 발표했다…흠…2년에 1편씩이군…참 요순시절이네. 그중에서도 7편이 표절이고, 나머지 10편도 의심스럽다니, 7편에서 끝날 것 같지는 않고, 아마 검증하기가 곤란해서 그렇지 그의 다른 논문들도 표절의 혐의가 짙은 셈이네… 일단 밝혀진 것만을 제외해보자. 35년에 10편인데, 남의 글을 표시안나게 손봐서 쓴 것도 있을테고, 3.5년 아니 대략 4년에 1편씩 논문을 썼다고 보면 되겠군. 그러고도 35년간 교수를 하고, 국가의 장관급 공직자가 되고… 요순시대를 넘어선 신화시대라고 할까? 참 좋은(?) 세상이네…
그는 4년에 1편을 -그것도 표절이 의심되는- 쓰고도 온갖 명예와 부와 권력을 누리지만, 우리는 보통 1년에 4편 정도의 논문을 쓴다. 그가 35년을 걸려 쓴 논문 10편은, 우리는 적어도 3년이내에 써야 교수직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전번에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면서 박사학위자의 생활난을 말했었지만, 고위공직자와 슬픈 인문학자의 인생은 같은 박사학위를 했건만, 들인 노력(input)과 결과물(output) 사이에는 천배 만배의 역함수관계가 성립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숫치로만 비교해 말하자니, 인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것 같아서, 이번에는 量이 아니라 質적으로 한번 보자. 인간의 질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분들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면 되지 않을까?같은 날 신문에는 대법관후보자의 신앙관 이야기가 실렸다. 그는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부산과 울산을 聖市化하겠다고 주동하고 나섰는데, 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자 “성시화라는 발언은 도시를 아름답고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힘써야 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또 그는 한 교회의 내부분열 과정에서 제기된 민사재판을 다루면서 원고와 피고 양쪽에 ‘화해를 위한 기도’를 요구하고, 기도가 끝난 뒤 ‘아멘’이라고 화답한 사실에 대해서도 “당시에는 쉽게 생각했는데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문제라고 느낄 것”이라며 “법정에서 기도를 하는 행위는 (통상적으로) 있는 일이 아니고 제가 좀 특이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신앙은 자유이다. 어떤 종교를 믿는가는 헌법이 정한 권리이다. 문제는 그 말솜씨이다. 참으로 말의 예술이다. 그렇지만, 진실성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접하다보면 저렇게 요핑계저핑계 구변을 구사하는 사람이 있다. 옛날 어린시절의 뒷골목 세계로 말하자면, 힘센 짱의 옆에서 가끔 얻어맞는 촉새들 스타일인데, 내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우리 강경명징한 한국사람의 성격으로는, 차라리 “나의 개인적인 신념이요 믿음입니다 그것이 잘못이라면 그 댓가를 받겠습니다”라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미덥고 좋다. 그것이 바로 엄청난 박해속에서도 한국기독교가 세계 제1의 선교국으로 거듭난 비결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저런 달변의 혀가 필요한가 보다.
하루전 신문에는 또 다른 대법관후보자의 아들이야기가 실렸다. 그 후보자는 다른 문제점도 골고루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은 장애인 요양시설 공익근무요원 모집에 응모해 입대 예정이었으나, 이를 갑자기 취소하고 자기집 옆에 있는 중앙지법에 선착순으로 단 1명만 모집하는 공익근무요원 지원신청에 접수해서, 접수시작 22초만에 원서를 접수해서 당첨이 되었다고 한다.사회 일부에서 아버지의 직장과 같은 계통인 법원의 공익근무요원 추가모집 계획을 사전에 알아내 재응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후보자는 “복무기관 모집정보는 신청접수 당일에만 알 수 있어 사전에 알고 서울중앙지법에 응모했다는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면서 대법원을 통해 낸 자료에서 “로스쿨 합격 통보가 늦어지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입대 일정을 조정한 것 뿐”이며 “신청접수 당일 본인이 PC방에서 인터넷 공고로 추가모집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접수한 결과 집에서 가까운 중앙지법에 배치받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대로라면, 최고위층인 지검장댁에 성능좋은 컴퓨터가 없을까 마는 아무튼 그 어두컴컴한 PC방에서 추가모집 정보를 우연히 보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지원서를 22초만에 접수해 당첨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원서에 어떤 내용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서류 확인할 사항 하나도 없이 그 자리에서 22초만에 원서접수를 했단다…이것은 아마 그 당시에 모든 조건을 완전하게 갖춘 상태라면 이론상으로야 가능하긴 할 것이다.
그렇게 미리 모든 자료를 준비해놓고 확인한번 할 틈도 없이 일사천리로 써서 올렸다면 가능할까 모르겠지만, 나는 본적과 현주소를 아무리 빨리 써도 제대로 썼는지 다시 한번 확인까지하는데만 22초가 걸리던데…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공지사항 확인하고 다운로드 받아서 한글파일로 한번 읽는 것까지만 친다하더라도 아무리 빨라도 22초는 더걸리던데, 도대체 22초 접수라는게 귀신이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지를 모르겠다. 세상에 한석봉은 글자 한 획 쓰는데, 5분이 걸렸다는데…한석봉같은 미련한 둔재(?)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술한잔에 시한수 술 한말에 백편의 시를 지었다는 이태백의 머리도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테고, 일필휘지로 휘갈겨쓴 왕희지의 번개같은 붓끝도 그를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우연치고는 참으로 공교롭다.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아니면 그가 바보인가? 이런 것이 고위공직자들의 속성인가? 아니면 현정권의 속성인가? 고위공직자들은 그 가족들까지도 국민들 위로 초법적으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닌다. 법앞의 평등이 아니라, 법앞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이 정권들어서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고 있자니, 불행하게도 하나의 규칙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하나같이 병역기피 위장전입 탈루탈세 표절 그리고 편향성과 (진실성 없는 때로는 거짓으로 보이는) 변명이다. 이 정권의 출범 처음부터 이제 정권의 끝까지 고위공직자 후보들에게는 어김없이 이런 규칙성이 나타난다. 물론 그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 문제가 되는 후보가 나타나서 물의를 빚었을뿐, 이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이제 국가를 지도하고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할 사람들이 위법 탈법과 범죄의 담장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으니, 안타깝고도 창피스럽기 짝이 없다.
유유상종이란 말은 진실이다. 자신이 더러우니,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더러운 친구들만 불러들이는 것이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는 옛말대로, 까마귀는 까마귀대로 백로는 백로대로 노는 물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유유상종으로 모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무의식의 세계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까마귀인 것을 알고 있고 의식하고 있다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백로를 초빙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아 저 놈들이 까마귀였구나! 라고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더 새까만 까마귀들을 자꾸 앞장세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까마귀들은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저사람들이 양심도 없나 싶지만, 어쩌면 그것은 진심일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우화를 보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탈무드인가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고 한다. 먼지에 찌든 굴뚝을 치우고 나온 청소부가 있고, 깨끗한 굴뚝을 청소하고 나온 청소부가 있다. 둘중에 누가 씻으러 갈까? 정답은 깨끗한 굴뚝에서 나온 청소부이다. 왜냐면, 더러운 굴뚝에서 나온 청소부는 깨끗한 굴뚝 청소부의 깨끗한 모습을 보고 자신도 깨끗할 것으로 생각하고, 깨끗한 굴뚝 청소부는 더러운 굴뚝 청소부의 더러운 모습을 보고 자신도 저렇게 더러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대다수의 우리 국민 서민들은 순수하다. 자기 집 마련하려, 자식 공부시키고 여의려 그저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 노후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한숨만 나온다. 그 뿐이다. 법이라고 하면 무서워떨기만 할 뿐, 법을 올라타고 재주를 부린다거나 다른 욕심을 부린다거나 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다. 그런데 잘나가는 고위공직자들은 온갖 탈법 위법을 교묘히 저지르면서 거대한 금자탑을 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더럽지만, 국민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고 자신도 순수하다고 간주한다. 심지어 어떤 까마귀들은 자신들이 아예 백로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희극인지 비극인지…자신들이 혼탁하게 만들어놓은 이 세상에 마치 홀로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슬픈 역설적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