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새해날, 입춘방을 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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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새해날 입춘방을 붙이며
임채우
학교로 가는 차창밖 풍경은 온통 설국이다. 드문드문 눈을 뒤집어쓴 소나무와 민가들의 하단부를 제외하곤 하늘도 땅도 온통 하얗다. 겸해서 한파도 몰아친단다. 내일은 영하13도 모레는 영하 17도라고 한다. 입춘을 무색하게 하는 추위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눈도 많고 추위도 심하다.
그러나 이젠 봄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던 봄이 왔다. 때맞춰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 제자가 입춘방을 정성껏 써보내왔다. 立春大吉 建陽多慶. 문앞에 붙인다. 고맙다 제자의 따뜻한 마음이 고맙다. 곧 따뜻한 양광이 온 세상을 비출테니, 지금은 비록 춥고 눈보라칠지라도 天道의 生生之德이 고맙다.
왜 옛사람들은 굳이 입춘방을 붙였을까? 추위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성마르게 봄을 축하하는 것일까? 또 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입춘만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입춘방만을 써서 또 붙이는 것일까?아마 봄이 기뻐서일 것이다. 왜 봄만 기쁠까? 추운 겨울을 이제 거의 다 지내왔다는, 이제 조금만 더 견디면 인간은 살수 있다는 기쁨이다. 그 생명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굳이 귀하게 모셔두었던 장지 한쪽지를 잘라내서 입춘의 길함을 또박또박 써서 축복했던 것이다.인류가 발명한 위대한 문명중에서도 24절기는 첫째로 놓아야할 위대한 발명품일 것이다. 비록 핵에너지나 트랜지스터나 디지털과 같이 적극적으로 현대문명의 이기를 새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을 여유있게 만들어주는 인류의 경험적 지식의 결정체이다.
고대인들에게 시간이란 미로와 같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경과하면서 추워졌다 더워졌다 하는 규칙성을 어렴풋이 짐작은 했을수 있지마는, 그 시간의 좌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까지에는 오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출구를 알 수없는 깊은 미로속에 있다고 한다면 무척 불안할 것이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힘든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공황상태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미로에 들어있지만, 나가는 길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바깥세상을 미리 준비할 수도 있다.
얼어붙은 겨우살이란 그야말로 헐벗고 굶주리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다시피 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내 혼자 목숨은 그렇다 하더라도 처자식의 굶주림과 추위앞에서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뿌렸으랴? 차라리 인간도 겨우잠을 자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할텐데, 인간은 잠들지 않았다. 겨우내 두눈 또랑또랑 뜨고 문명을 가꿔왔다. 그렇게 또랑또랑 두 눈 뜨고 인류문명을 키워온 원동력중의 하나가 계절의 순환규칙을 파악해낸 24절기의 발명이다. 엄동설한속에 동장군이 영원한 위세를 떨칠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제 저 땅속밑에서는 양기가 꿈틀거리며 돋아나오고 있음을 알고, 저 하늘의 길위에는 태양이 점점 따사로운 햇살을 펼쳐나가고 있음을 안다는 생각만으로도, 추위에 지쳐버린 인간에게 새로운 활력을 붙어넣었고 기운을 주었다.
24절기중 입춘은 새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동지가 지난지도 한달이 넘어 해도 다소 길어졌고, 이제 한 달 후가 되면 벌써 춘분이 된다. 명리학에서도 이 입춘절을 기준으로 해를 가름한다. 입춘절까지 새해로 치게 된다면, 우리는 설을 3번 맞는 셈이다. 우선 양력설이 있고, 두번째 입춘절이 있고, 세번째 음력설이 있게 된다. 사실 설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왕조마다 유동적이었다. 위에서 든 예 외에도 해가 최초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새해 설날로 삼은 때도 있었고, 섣달을 초하루로 삼은 경우도 있었다. 왕조마다 각각의 관점이 달랐고, 각기 또다른 의미를 부여했으니, 그날이 그날같은 긴긴 겨울밤 설날이란 날을 딱히 정해서 잡아내기는 천문학상으로나 철학상으로나 쉬운 노릇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입춘절이 되면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농사준비를 시작했다. 이로부터 88일째 되는 날 밭에 씨를 뿌리는데, 남정네는 이 때부터 농기구를 꺼내 손질도 하고, 소를 살피고, 두엄을 만들고 재거름을 재워두기도 했다. 아낙은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집안청소를 했다. 사실 입춘부터 봄이라고 하지만, 바로 추위가 물러선 것은 아니다. 입춘절 15일을 5일씩 3候로 나눠서 초후에는 동풍이 불어 언땅을 녹이고, 중후에는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후에는 물고기가 얼음장밑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조금씩 봄 기운이 추위를 물리치는 물후를 잘 나타내고 있다. 또 입춘때 비가오면 풍년의 징조로 반겼고, 이 비를 받아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지금 창밖에는 흰눈이 내리고 있다. 올해 눈이 참 많았건만, 이 산중의 書窓에는立春 雪景이 절정이다. 아마도 추사가 제주도 유배의 쓸쓸함을 빗댄 세한도보다도, 공자가 시들지않는 푸르름을 칭송했던 저 푸른 솔에 어울린 이 깊은 산중 흰눈이 빚어내는 자연의 운치가 한결 깊은 감동을 준다. 안저에 깊이 새겨두고 싶은 절경이다.
내일부터는 한파가 엄습한다고는 하건만 아무튼 봄은 왔다. 살다보면 맘에 흡족한 일이 얼마나 있으랴! 예로부터 春來不似春이라고 탄식하기도 했건만, 봄이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새 힘을 낸다. 입춘첩을 붙여두고, 우리 모두를 위해 한번 읊조린다.
입춘대길!
임채우
학교로 가는 차창밖 풍경은 온통 설국이다. 드문드문 눈을 뒤집어쓴 소나무와 민가들의 하단부를 제외하곤 하늘도 땅도 온통 하얗다. 겸해서 한파도 몰아친단다. 내일은 영하13도 모레는 영하 17도라고 한다. 입춘을 무색하게 하는 추위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눈도 많고 추위도 심하다.
그러나 이젠 봄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던 봄이 왔다. 때맞춰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 제자가 입춘방을 정성껏 써보내왔다. 立春大吉 建陽多慶. 문앞에 붙인다. 고맙다 제자의 따뜻한 마음이 고맙다. 곧 따뜻한 양광이 온 세상을 비출테니, 지금은 비록 춥고 눈보라칠지라도 天道의 生生之德이 고맙다.
왜 옛사람들은 굳이 입춘방을 붙였을까? 추위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성마르게 봄을 축하하는 것일까? 또 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입춘만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입춘방만을 써서 또 붙이는 것일까?아마 봄이 기뻐서일 것이다. 왜 봄만 기쁠까? 추운 겨울을 이제 거의 다 지내왔다는, 이제 조금만 더 견디면 인간은 살수 있다는 기쁨이다. 그 생명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굳이 귀하게 모셔두었던 장지 한쪽지를 잘라내서 입춘의 길함을 또박또박 써서 축복했던 것이다.인류가 발명한 위대한 문명중에서도 24절기는 첫째로 놓아야할 위대한 발명품일 것이다. 비록 핵에너지나 트랜지스터나 디지털과 같이 적극적으로 현대문명의 이기를 새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을 여유있게 만들어주는 인류의 경험적 지식의 결정체이다.
고대인들에게 시간이란 미로와 같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경과하면서 추워졌다 더워졌다 하는 규칙성을 어렴풋이 짐작은 했을수 있지마는, 그 시간의 좌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까지에는 오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출구를 알 수없는 깊은 미로속에 있다고 한다면 무척 불안할 것이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힘든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공황상태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미로에 들어있지만, 나가는 길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바깥세상을 미리 준비할 수도 있다.
얼어붙은 겨우살이란 그야말로 헐벗고 굶주리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다시피 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내 혼자 목숨은 그렇다 하더라도 처자식의 굶주림과 추위앞에서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뿌렸으랴? 차라리 인간도 겨우잠을 자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할텐데, 인간은 잠들지 않았다. 겨우내 두눈 또랑또랑 뜨고 문명을 가꿔왔다. 그렇게 또랑또랑 두 눈 뜨고 인류문명을 키워온 원동력중의 하나가 계절의 순환규칙을 파악해낸 24절기의 발명이다. 엄동설한속에 동장군이 영원한 위세를 떨칠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제 저 땅속밑에서는 양기가 꿈틀거리며 돋아나오고 있음을 알고, 저 하늘의 길위에는 태양이 점점 따사로운 햇살을 펼쳐나가고 있음을 안다는 생각만으로도, 추위에 지쳐버린 인간에게 새로운 활력을 붙어넣었고 기운을 주었다.
24절기중 입춘은 새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동지가 지난지도 한달이 넘어 해도 다소 길어졌고, 이제 한 달 후가 되면 벌써 춘분이 된다. 명리학에서도 이 입춘절을 기준으로 해를 가름한다. 입춘절까지 새해로 치게 된다면, 우리는 설을 3번 맞는 셈이다. 우선 양력설이 있고, 두번째 입춘절이 있고, 세번째 음력설이 있게 된다. 사실 설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왕조마다 유동적이었다. 위에서 든 예 외에도 해가 최초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새해 설날로 삼은 때도 있었고, 섣달을 초하루로 삼은 경우도 있었다. 왕조마다 각각의 관점이 달랐고, 각기 또다른 의미를 부여했으니, 그날이 그날같은 긴긴 겨울밤 설날이란 날을 딱히 정해서 잡아내기는 천문학상으로나 철학상으로나 쉬운 노릇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입춘절이 되면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농사준비를 시작했다. 이로부터 88일째 되는 날 밭에 씨를 뿌리는데, 남정네는 이 때부터 농기구를 꺼내 손질도 하고, 소를 살피고, 두엄을 만들고 재거름을 재워두기도 했다. 아낙은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집안청소를 했다. 사실 입춘부터 봄이라고 하지만, 바로 추위가 물러선 것은 아니다. 입춘절 15일을 5일씩 3候로 나눠서 초후에는 동풍이 불어 언땅을 녹이고, 중후에는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후에는 물고기가 얼음장밑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조금씩 봄 기운이 추위를 물리치는 물후를 잘 나타내고 있다. 또 입춘때 비가오면 풍년의 징조로 반겼고, 이 비를 받아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지금 창밖에는 흰눈이 내리고 있다. 올해 눈이 참 많았건만, 이 산중의 書窓에는立春 雪景이 절정이다. 아마도 추사가 제주도 유배의 쓸쓸함을 빗댄 세한도보다도, 공자가 시들지않는 푸르름을 칭송했던 저 푸른 솔에 어울린 이 깊은 산중 흰눈이 빚어내는 자연의 운치가 한결 깊은 감동을 준다. 안저에 깊이 새겨두고 싶은 절경이다.
내일부터는 한파가 엄습한다고는 하건만 아무튼 봄은 왔다. 살다보면 맘에 흡족한 일이 얼마나 있으랴! 예로부터 春來不似春이라고 탄식하기도 했건만, 봄이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새 힘을 낸다. 입춘첩을 붙여두고, 우리 모두를 위해 한번 읊조린다.
입춘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