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금 행복한 거다.

지구상의 약 63억 인구를 100명으로 압축했을 때의 통계가 흥미롭다.

100명 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죽기 일보 직전이며, 43명은 위생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고, 18명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조차 마실 수 없다고 한다. 또한 18명은 1,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하루 버티기에 급급하고, 자가용을 보유한 자는 100명 중 7명, 오직 12명만이 컴퓨터를 가지고 있고 그중 3명만이 인터넷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단 1명뿐이며 14명은 글조차 못 읽는다고 한다. 25명은 제대로 거처할 곳조차 제대로 없으며, 38명은 전쟁과 테러를 비롯한 기타 공포에 떨며 살고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정작 불행하다 느끼고 있다. 2014년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전체 151개국 중 90위, OECD 가입국가 중에서는 32위로 꼴찌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졌는데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긴 우리보다 훨씬 못한 파라과이의 행복지수가 1위 인 것만 보면 행복의 기준이 꼭 보여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행복요소가 많이 있다. 지형적으로 보아도 한반도는 축복의 땅이다. 천재지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사계절이 뚜렷하고 불모지대가 거의 없는 곳이다. 그뿐인가? 어쨌든 우리는 민주주의를 달성했다.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새벽 2~3시에도 젊은 여자가 편의점을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안정된 치안망도 갖추고 있다. 각계각층이 골고루 발달하여 자신의 꿈을 펼칠 길과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 있는 길도 많이 생겼다. 상대적인 빈곤감은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박탈감은 없는 사회가 되었으니 우린 이만큼 행복한 거다.



그러나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더니 행복에 대한 욕망은 임계치가 없는 듯하다. 주위를 돌아보면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렵고, 웃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우리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값싼 전기, 절대빈곤에서의 해방, 각종 편의 시스템 등 일상의 행복을 주는 혜택을 당연시 여기며 살고 있다. 욕심과 바람 때문에 더 큰 행복을 갈망한다. 어느 정도 불편 없이 살면서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려 한다. 국익을 위한 정책에 동조는커녕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족한 행복을 자꾸만 다른곳에서 채우려고 한다.

절대적 행복은 간과하고 상대적 행복만 찾지 말자. 분명 우리는 지금 꽤나 행복한 거다. 지금 행복을 과소평가하거나 과욕을 부리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자. 우리는 보기 드문 네잎클로버의 행운만을 찾느라 지척에 널린 세잎 클로버의 행복의 의미를 놓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