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子의 로망' 완결판…비트코인 품은 스위스 명품시계 [임현우의 비트코인 나우]

암호화폐와 패션산업
위블로 '빅뱅 메카-10 P2P'
우락부락하고 남성적인 디자인으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 위블로(Hublot)는 2018년 '비트코인 시계'를 내놨다. 비트코인 탄생 10주년을 기념한 것으로, 다이얼(시계판)에 큼지막하게 새긴 비트코인 그림이 눈길을 끈다. 최대 발행량이 2100만개로 정해진 비트코인의 특성을 본떠 시계도 210개 한정판으로 제작했다. 당시 가격은 2만5000달러(약 2800만원). 예약판매 단계에서 매진됐고, 국내에도 구입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리카르도 과달루페 위블로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고 성공적이었다"며 "암호화폐는 미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위블로는 올해부터 온라인 매장에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러 암호화폐를 결제수단으로 허용할 예정이다.
프랭크뮬러 '뱅가드 엔크립토'
또 다른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 '프랭크 뮬러(Frank Muller)'는 최근 비트코인 지갑을 내장한 신상품을 공개했다. 시계로 시간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비트코인 잔고도 확인할 수 있다. 가격은 1만2000달러(약 1300만원). 500개 한정판이며 암호화폐로만 결제할 수 있다. 프랭크뮬러는 2019년에도 비슷한 시계를 출시한 적이 있는데, 암호화폐 상승장에 맞춰 후속작을 내놨다.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업체는 페이팔, 테슬라, 스퀘어 같은 이른바 '혁신기업'만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품 패션업계에서도 이색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에 따르면 명품 소비자 중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사람은 1% 정도로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마사 버넷 포레스터 수석연구원은 "암호화폐가 명품업계에서 주류 결제수단으로 쓰이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명품업체가 이걸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한경DB
보그 비즈니스는 최근 '암호화폐 열풍: 명품은 올라탈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암호화폐와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패션 브랜드들은 소비자 충성도를 높일 기회를 얻게 됐다"고 보도했다.

NFT는 올 들어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블록체인 분야다. NFT를 활용하면 디지털 자산마다 별도의 고유값을 부여할 수 있다. 하나의 코인을 다른 코인과 구분할 수 있어 진위(眞僞)와 소유권 입증이 중요한 콘텐츠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패션업계 역시 '진품이냐, 짝퉁이냐'가 중요한 시장인 만큼 NFT의 쓰임새가 넓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보그 비즈니스는 "루이비통이 제품의 이력을 추적하는 데 NFT를 활용하고, 나이키는 진짜 신발과 연결된 디지털 신발을 만들었다"며 "패션이 메타버스(가상세계)를 끌어안는 흐름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경DB
세계 최대 명품기업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제품이력 관리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이 플랫폼에는 1000만개에 가까운 상품이 등록됐다.

암호화폐를 직접적으로 활용해 'VIP 손님'을 끌어모으는 온라인 쇼핑몰도 있다. 2018년 미국에 설립된 '롤리(Lolli)'는 세포라, 블루밍데일즈, 나이키 등 1000개 제휴 브랜드에서 물건을 사면 구매액의 7.5%를 비트코인으로 돌려준다.

버넷 연구원은 "물리적 자산이 디지털화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고, 명품업체들은 여기에 뛰어들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