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北에 줄 쌀 농협에서 미리 꺼내 방아 찧어놔야돼"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열린 '다시 평화의 봄, 새로운 한반도의 길'토론회에서 '남북 생명공동체의 실현 가능성과 추진 방향' 주제의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멘토’로 꼽히는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북한에 50만t 규모로 쌀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빠른 대북 지원을 위해 “벼를 농협 창고에서 미리 꺼내 방아를 찧는 등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부의장은 22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제재 때문에 열악한데 태풍 피해,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아무것도 못 들어오고 국경을 폐쇄했으니 5월이 되기 시작하면 아사자가 나온다고 봐야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정부가 그동안 50만t까지 줬으니까 그 준비를 좀 해야 될 것”이라며 “10만t을 보내는 데 한 달이 걸리고, 50만t을 보내려면 다섯 달이 걸린다”고 말했다.정 부의장은 북한 내 식량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정 부의장은 “함경도에서 이미 강냉이죽도 제대로 못 먹고, 강냉이도 없어 말린 시래기를 대충 끓여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아마 4월 좀 지나고 5월로 넘어가면 국제사회에서 안 되겠다, 아무리 북핵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사람 죽는 건 막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그런 논의가 이제 일어날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대북 지원에 대한 국제 여론을 주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부의장은 “과거 경험으로 보면 세계식량계획(WFP)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한국 정부가 움직였던 적이 많다”며 “보수 언론에서는 정부가 나와서 퍼주기를 선동했다고 하겠지만 지금 북한에 날씨도 좋아도 필요한 양이 550만t이라고 할 때 농사가 아주 잘 돼도 100만t은 항상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2500만 인구인 북한에 필요한 식량은 550만t인데 농사가 아주 잘 되어도 450만 톤까지는 생산 못하고 날씨 나쁘면 400만t 내려가고 태풍이 한 번 쓸고 가면 350만t으로 내려간다”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자체적인 대북 지원도 촉구했다. 정 부의장은 “작년 연말에 남북관계 남북교류협력법을 고쳐 지방자치단체들도 독자적으로 정부만큼 대북지원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시·도 자치단체 중심으로 대북 지원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이어 “식량 지원 문제는 인도적 지원으로 유엔 대북 제재 예외 조항에 해당된다”고 덧붙였다.한편 그는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 장관 간 ‘2+2회담’에서 양국이 대북 전략을 상호 조율하기로 한 합의에 대해 “고약하다”고 평가했다. 정 부의장은 “한·미 워킹그룹은 원스톱으로 한·미가 협의하자고 시작했는데 결국 발목이 잡혔고, 남북 관계에서 아무것도 못했다”며 “과거 1994~1995년 북핵 문제를 놓고 한미 간에 불편한 관계가 지속될 때 미국이 한·미 공조 원칙으로 협의하자고 해서 합의했는데 그다음부터 우리가 다른 소리를 내면 한·미 공조 원칙에 어긋난다면서 끌고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뜻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를 때 힘센 쪽으로 간다”며 “공동성명에 (나온) 아주 고약한 대목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미 간에 완전히 조율된 대북 전략 하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뤄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