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를 대표하는 주전부리에 홀딱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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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간산, 홍콩과 마카오 나들이…<4>홍콩시티페리터미널을 벗어난 빨간색 페리號는
물찬 제비처럼 50여분만에 마카오 터미널에 닿았다.
간단하게 수속을 마치고 터미널 대합실을 막 빠져나오려는데
쭉빵(?) 미녀들이 문 밖에서 방긋 미소 지으며 반긴다.
“소생을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겨줄 줄이야~”(참 착각도 유분수^^)
틀어올린 머리에 튀는 머리핀, 빨강 원피스에 금색 발찌를 두른 늘씬녀는
이곳에서 호텔 셔틀버스 안내와 카지노 홍보 임무를 수행 중이다.마카오의 첫인상은 아무튼 블링블링((Bling Bling)) 하다.
터미널을 나서자, 하얀 연꽃 그리고 五星이 그려진 녹색 깃발이 자주 눈에 띈다.
바로 마카오 국기다. 아니 정확히 마카오 특별구의 旗다.
마카오 지형이 연꽃을 닮아서일까, 연꽃과 마카오의 관계는 깊다.
6월이면 마카오 거리에서 어김없이 연꽃축제가 열린다.
또 깃발에 새겨진 五星은 중국과의 특별한 관계임을 의미한다.
마카오의 정식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특별행정구’이다.
국방만 제외하고 모든게 독립된 체제로 이루어지며 법도, 복지시스템도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아주 작은 나라다.땅 전체 길이가 30km 밖에 안된다.
마카오시와 공항이 있는 타이파섬, 쿨로아네섬, 마카오반도의 교외 지역 등을
합쳐도 울릉도의 1/2, 제주도에 1/60 크기 정도다.
워낙 땅덩어리가 작아 마카오에서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가 매우 짧다.
길어 봤자 20분 정도다.
마카오에서 사용하는 국가 공용어는 두가지다.
마카오가 1999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모든 공문서나 표지판 등에 중국 광동어와 포르투갈어가 같이 사용된다.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지만 정작 사용자는 2% 밖에 안된다.
요즘 마카오 현지인들은 포르투갈어 대신 영어를 배우기 때문이다.가이드(박정애)의 마카오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버스는
메트로 파크 호텔(Metro park Hotel) 앞에 멈춰 섰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현지식(포르투갈식)을 맛보기 위해서다.
감자스프와 생선까스, 돼지고기랑 야채, 김치, 밥이다.
메뉴를 보자니, 추억의 80년대 경양식집이 연상된다.
마카오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역사적 장소인 성바울 성당으로 향했다.
조금 전 못다한 마카오 소개를 마무리 짓기 위해 가이드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리드미컬해 귀에 쏙쏙 들어온다.“중국 반환 이후 마카오는 훨씬 높은 성장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유일하게 도박과 매춘이 허용된 곳이기도 하죠.
카지노 사업은 미국 라스베가스가 위협을 느낄만큼 성장했습니다.
마카오는 지금 카지노 뿐 아니라 식민 당시의 포르투갈 유적들을 보호유산으로
지정해 관광 명소로 거듭나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광장과 건물을 포함,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게 서른개나 되지요.”성바울성당 앞에 도착했다.
성당 보러 왔더니 성당은 없고 달랑 벽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무늬만 성당이다. 어찌된 일인가?
최초로 지어질 때 목재였다. 짓자마자 불이 났다. 다시 목재로 재건했다.
또 불이 났다. 안되겠다 싶어 이번엔 석재를 써서 짓기 시작했다.
돌도 귀하고 기술도 부족해 앞 벽면만 짓는데 36년이나 걸렸다.
뒤까지 다 지을려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뒷쪽은 흙과 돌을 썼다.
그런데 또 불이 났다. 똑같은 장소에서 세번이나 불이 났던 것이다.
정문과 입구 계단, 토대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렸다.
여긴 더 이상 성당 터가 아닌가. 그렇다면 죽음의 땅이란 말인가?
결국 더 이상 재건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뒀다. 바로 지금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뻐끔하게 뚫린 성당 벽면 窓을 통해 보이는 파란 하늘이 허허롭다.폐허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성바울 성당은 이제 마카오의 랜드 마크가
되어 마카오를 찾는 이방인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성당 옆 골목 초입에서 가이드가 손짓했다. 다가가니 뭔가를 건네준다.
‘에그타르트’다. 이걸 빼고선 마카오를 입에 올리지 말란다.
대체 ‘에그타르트’가 뭐길래,,, 한입 베어물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패이스트리 속 에그크림이 입안에서 사르르~육포와 쿠키도 에그타르트와 함께 마카오의 대표적 주전부리다.
성바울성당 아래 먹을거리 즐비한 골목길을 걸어 세나도 광장에 이르는 동안
입안은 황홀했다. 쿠키와 에그타르트 그리고 육포도 질겅질겅 씹어가며…
골목을 가득 메운 사람들, 너나없이 주전부리에 열중(?)이다.세나도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노란색 건축물이 시선을 잡아끈다.
성도미니크 성당이다. 흰색 테두리로 포인트를 주어 장식미가 돋보인다.
규모에 압도 당할 것 같은 유럽의 거대 성당 모습과는 달리 앙증맞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니 바로크 양식의 제단은 웅장했고 포르투갈 왕가의
문양으로 장식된 천장과 정교한 조각상은 엄숙함을 더했다.세나도 광장(Senado Square)은 ‘작은 유럽’을 연상케 한다.
파스텔 톤의 유럽풍 건물들, 분위기 좋은 카페, 중앙 분수대 그리고
돌을 깔아 만든 물결무늬의 모자이크 노면이 그러하다.무덥고 습한 탓에 등줄기는 축축하고 삭신 역시 축축 늘어진다.
광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민정총서(民政總署)’라 쓰여진 건물로 들어섰다.
포르투갈 식민통치의 상징인 건물로 마카오 관공서, 민정총서의 청사이다.
에어컨이 빵빵했다. 지친 삭신을 회복시키기에 그만이다.
때마침 마카오의 옛 풍경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까지
느긋하게 마카오의 옛풍경을 둘러보며, 피서는 덤으로 즐겼으니.
<계속>
물찬 제비처럼 50여분만에 마카오 터미널에 닿았다.
간단하게 수속을 마치고 터미널 대합실을 막 빠져나오려는데
쭉빵(?) 미녀들이 문 밖에서 방긋 미소 지으며 반긴다.
“소생을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겨줄 줄이야~”(참 착각도 유분수^^)
틀어올린 머리에 튀는 머리핀, 빨강 원피스에 금색 발찌를 두른 늘씬녀는
이곳에서 호텔 셔틀버스 안내와 카지노 홍보 임무를 수행 중이다.마카오의 첫인상은 아무튼 블링블링((Bling Bling)) 하다.
터미널을 나서자, 하얀 연꽃 그리고 五星이 그려진 녹색 깃발이 자주 눈에 띈다.
바로 마카오 국기다. 아니 정확히 마카오 특별구의 旗다.
마카오 지형이 연꽃을 닮아서일까, 연꽃과 마카오의 관계는 깊다.
6월이면 마카오 거리에서 어김없이 연꽃축제가 열린다.
또 깃발에 새겨진 五星은 중국과의 특별한 관계임을 의미한다.
마카오의 정식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특별행정구’이다.
국방만 제외하고 모든게 독립된 체제로 이루어지며 법도, 복지시스템도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아주 작은 나라다.땅 전체 길이가 30km 밖에 안된다.
마카오시와 공항이 있는 타이파섬, 쿨로아네섬, 마카오반도의 교외 지역 등을
합쳐도 울릉도의 1/2, 제주도에 1/60 크기 정도다.
워낙 땅덩어리가 작아 마카오에서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가 매우 짧다.
길어 봤자 20분 정도다.
마카오에서 사용하는 국가 공용어는 두가지다.
마카오가 1999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모든 공문서나 표지판 등에 중국 광동어와 포르투갈어가 같이 사용된다.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지만 정작 사용자는 2% 밖에 안된다.
요즘 마카오 현지인들은 포르투갈어 대신 영어를 배우기 때문이다.가이드(박정애)의 마카오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버스는
메트로 파크 호텔(Metro park Hotel) 앞에 멈춰 섰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현지식(포르투갈식)을 맛보기 위해서다.
감자스프와 생선까스, 돼지고기랑 야채, 김치, 밥이다.
메뉴를 보자니, 추억의 80년대 경양식집이 연상된다.
마카오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역사적 장소인 성바울 성당으로 향했다.
조금 전 못다한 마카오 소개를 마무리 짓기 위해 가이드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리드미컬해 귀에 쏙쏙 들어온다.“중국 반환 이후 마카오는 훨씬 높은 성장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유일하게 도박과 매춘이 허용된 곳이기도 하죠.
카지노 사업은 미국 라스베가스가 위협을 느낄만큼 성장했습니다.
마카오는 지금 카지노 뿐 아니라 식민 당시의 포르투갈 유적들을 보호유산으로
지정해 관광 명소로 거듭나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광장과 건물을 포함,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게 서른개나 되지요.”성바울성당 앞에 도착했다.
성당 보러 왔더니 성당은 없고 달랑 벽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무늬만 성당이다. 어찌된 일인가?
최초로 지어질 때 목재였다. 짓자마자 불이 났다. 다시 목재로 재건했다.
또 불이 났다. 안되겠다 싶어 이번엔 석재를 써서 짓기 시작했다.
돌도 귀하고 기술도 부족해 앞 벽면만 짓는데 36년이나 걸렸다.
뒤까지 다 지을려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뒷쪽은 흙과 돌을 썼다.
그런데 또 불이 났다. 똑같은 장소에서 세번이나 불이 났던 것이다.
정문과 입구 계단, 토대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렸다.
여긴 더 이상 성당 터가 아닌가. 그렇다면 죽음의 땅이란 말인가?
결국 더 이상 재건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뒀다. 바로 지금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뻐끔하게 뚫린 성당 벽면 窓을 통해 보이는 파란 하늘이 허허롭다.폐허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성바울 성당은 이제 마카오의 랜드 마크가
되어 마카오를 찾는 이방인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성당 옆 골목 초입에서 가이드가 손짓했다. 다가가니 뭔가를 건네준다.
‘에그타르트’다. 이걸 빼고선 마카오를 입에 올리지 말란다.
대체 ‘에그타르트’가 뭐길래,,, 한입 베어물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패이스트리 속 에그크림이 입안에서 사르르~육포와 쿠키도 에그타르트와 함께 마카오의 대표적 주전부리다.
성바울성당 아래 먹을거리 즐비한 골목길을 걸어 세나도 광장에 이르는 동안
입안은 황홀했다. 쿠키와 에그타르트 그리고 육포도 질겅질겅 씹어가며…
골목을 가득 메운 사람들, 너나없이 주전부리에 열중(?)이다.세나도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노란색 건축물이 시선을 잡아끈다.
성도미니크 성당이다. 흰색 테두리로 포인트를 주어 장식미가 돋보인다.
규모에 압도 당할 것 같은 유럽의 거대 성당 모습과는 달리 앙증맞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니 바로크 양식의 제단은 웅장했고 포르투갈 왕가의
문양으로 장식된 천장과 정교한 조각상은 엄숙함을 더했다.세나도 광장(Senado Square)은 ‘작은 유럽’을 연상케 한다.
파스텔 톤의 유럽풍 건물들, 분위기 좋은 카페, 중앙 분수대 그리고
돌을 깔아 만든 물결무늬의 모자이크 노면이 그러하다.무덥고 습한 탓에 등줄기는 축축하고 삭신 역시 축축 늘어진다.
광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민정총서(民政總署)’라 쓰여진 건물로 들어섰다.
포르투갈 식민통치의 상징인 건물로 마카오 관공서, 민정총서의 청사이다.
에어컨이 빵빵했다. 지친 삭신을 회복시키기에 그만이다.
때마침 마카오의 옛 풍경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까지
느긋하게 마카오의 옛풍경을 둘러보며, 피서는 덤으로 즐겼으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