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칼럼] 중국은 왜 오바마 대통령에게 레드카펫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지난 9월 3일 주요 G20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중국 항저우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평소 이용하던 기체 앞쪽 문을 통해 내려야했지만 공항엔 밟고 내려갈 트랩이 준비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오바마 대통령은 뒤편으로 이동해 다른 문을 통해 내려야 했다. 이 통로는 아프가니스탄 등 위험 지역에서만 보안을 위해 사용하는 출입구였다. 앞서 도착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박근혜 대통령 등은 통상적인 의전에 따라 레드카펫을 깔린 트랩을 밟고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오바마 대통령만 트랩이 제공되지 않았다. 가디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서방 언론들은 중국의 이런 행위에 대해 계산된 외교적 모욕이라며 일제히 비판했다.
레드카펫을 깐다는 것은 최고의 예우를 의미한다. 레드카펫의 기원은 기원전 13세기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아가멤논이 귀국할 때 그의 아내는 남편을 맞이하기 위하여 붉은 천을 깔아 그 위를 밟게 했다. 그런데 아가멤논은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왜냐면 빨간 색은 신의 색이기 때문에 그 위를 걸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레드카펫은 ‘신성함’ 그 자체이며, 오늘날 환영과 존경의 의미로 재탄생되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G20 정상회의에서 사드(THAAD), 남중국해 문제 등 현안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난(시진핑) 당신(오바마)이 싫어요’라고 비공식적이지만 천명했으니 갈등의 관계를 낳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협상에서 기본적으로 다루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닌 문제다. 협상은 인간과 인간이 대화로서 상호이해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때로는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모욕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협상의 결론을 본인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끌어가고자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오해와 편견은 더욱 굳어지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상대와의 신뢰관계도 깨지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지난 2015년 4월, 12년 만에 이란 핵협상이 타결되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합의안에 서명한 것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이지만, 실제 협상타결의 주인공은 미국 측 협상단 차석대표였던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장관과 알리 악바르 살레히 이란원자력청장이었다. 만약 이들이 현재 중국과 미국처럼 자신의 입장만 내세웠다면 이란 핵협상은 아직도 진행 중일 것이다.
1970년대에 모니즈는 MIT의 조교수, 알리 살레히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협상이 진행될 당시 모니즈 에너지 장관은 첫 손주를 본 알리 살레히 원자력청장에게 MIT 로고가 찍힌 유아용품 세트를 선물로 전달했다. 이 선물을 받은 알리 살레히 원자력청장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감정이 격화되고 복잡한 문제를 다룰수록 사람과 문제를 분리해서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문제를 보는 시각을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를 털어 놓는다면 상대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무엇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당사자의 마음이 편안해진다. 예를 들어 고장 난 차 때문에 왕복 2차선 도로가 꽉 막힌 경우 택시 한 대가 경적을 울려대며 반대 차선을 막고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일반 운전자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습니까”, “빨리 차를 빼주세요.”라고 말하지만 택시운전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과 문제를 구분한 운전자라면 “아무래도 운전을 가장 전문적으로 하실 줄 아는 분이 먼저 길을 열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택시기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차를 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협상학 관점에서 봤을 때 중국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여준 행동은 아쉬움을 넘어 협상력의 무지를 보여준 사례다. 내가 만약 시진핑이었다면 더 짙은 붉은 카펫과 존경과 환영을 더한다는 의미에서 금가루까지 뿌려주겠다. 긍정적인 감정의 지배는 협상장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글. 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ijeong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