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보호무역에 대한 한국의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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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19세기적 보호무역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대략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인간의 논쟁이 그렇듯이 반론이 있기는 마련이다.1) 합리적이지 않다
트럼프가 본인의 공약과 실제 정책으로의 실행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사항은 역시 ‘합리성’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지금 행동은 어느 모로 보아도 합리적이거나 발전적이지 않다. 애초부터 그의 대선 출마나 대통령 당선이 이성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선이 되었다. 전 세계의 절대 다수는 그의 행동과 말투를 비웃었지만, 그를 지지한 절대 소수가 이겼다. 영국의 브렉시트도 그랬다. 그래서 브렉시트가 결정되자마자 영국 내에서도 탄식이 흘러 나왔다. 독일의 히틀러를 예로 들어도 그랬다. 그도 국민 투표에서 당선되었고, 2차 대전의 절대 기간 동안 독일 국민은 그를 지지했다. 언론이 트럼프를 견제할 것이라는 기대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언론은 매우 변덕스러울 뿐 만 아니라 대중을 ‘중우정치’로 몰아가는 대표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가 처음 대선 출마할 때만 해도 아무도 트럼프의 당선을 예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언론의 역할’이 컸다. 그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려는 언론의 옐로우저널리즘이 그를 당선시켰다고 자책하는 미디어의 기사를 찾아보면 꽤나 많다. 그러면서도 더 나아지지 않은 미국 언론이다.
이런 수많은 정치적 행태를 보면 인간은 합리적이거나, 언제나 발전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 것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마찬가지이다. 집단적일 때 더욱 비이성적일 수 있다. 한-일 관계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양국 국민은 서로를 존중한다. 그러나 국가 단위로 보았을 때 한-일이 좋은 관계를 유지한 적은 없다. 언제나 전쟁이었고, 한반도를 침범한 일본에서는 언제나 정권의 변화가 있었다. 전쟁이야 말로 인간이 이루었던 수많은 발전과 문명을 파괴하고 목숨을 앗아갔다. 그 끔찍하고 야만적인 행위들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의 결과는 결국 다수 국민의 비참함이었다. 만일 전쟁 덕분에 인류의 과학이 발전했다고 주장한다면, 인류의 종말이 무기로 인하여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온 것도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더 빨리 끝낼 수 있기 위하여 스스로를 죽일 수단을 만드는 것이 과학 발전의 위대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원래부터 세상은 정상이 아니었다. 인류의 수많은 전쟁이 그 것을 증명한다. 언제나 ‘비정상’이 존재했고, 우리가 생각했던 ‘정상’이라는 상태는 일시적이고 깨져왔다. 매우 합리적이고 숫자로 과학적 가설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반복적인 실험과 실제 새상ㅇ에서 실현으로 존재를 증명해왔던 과학의 이론조차도 언제나 ‘정상’과 ‘비정상’ 과학의 투쟁이 이어져왔다.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등장은 정치적 도덕적 외교적 정상상태에서 비정상 상태로 옮겨갔다. 일본의 극우정치, 한국의 국정농단, 러시아의 제왕적 대통령 푸틴, 영국의 브렉시트 등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를 찾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이런 걸 보면 인류는 ‘비정상’이 ‘정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트럼프야 말로 정치.외교에서의 ‘블랙스완’ (나타날 가능성이 지극히 낮지만 나타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이다. 장자세습되는 국왕제도는 다음 왕이 선하고 현명할지, 아니면 폭군이 될지는 모르듯이, 민주적 경선 제도를 거친 대통령제도도 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2) 수단이 많지 않다.
일단 보호무역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나라가 미국임을 알아야 한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보호무역정책을 보고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가 `유치산업보호론`을 주장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이니,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정책에서 그리 큰 차이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도 움직일 만한 여지는 무척 많다. 무역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변화를 찾을 여지는 많다. 당선 되자마자 트럼프가 실행한 보호무역 수단으로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협정 (TPP)를 폐기하였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는 행정 명령에 공식 서명했다. 한-미 자유무역 협정 (FTA)나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도 어느 일방이 협정의 무효를 선언하면 180일이 경과한 후 소멸되게 되어 있다. 협정의 폐기는 의회의 별도 인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취임이후 트럼프가 보인 행적을 보면 단순히 기존의 무역 시스템 내에서 움직이면서 보호무역 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그 시스템을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낼 가능성도 있다.
3) 미국에도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트럼프의 비정상적 일탈은 ‘세계화된 지금의 전 지구적 경제’에서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미-중 간의 무역 갈등은 어느 나라에도 이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식량, 에너지, 달러를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 중국과 달리 거의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 비슷한 넓이의 국토 안에 미국은 약 5억의 인구가 살면서 자원이 넉넉한 반면에, 중국은 약 13억 – 15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면서 인구 규모에 비하여 그리 충분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을 덜 무서워할 이유가 있다. 중국이 미국의 국채가 1조 1천억 달러에 달해서 미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 한다. 중국이 함부로 미국의 국채를 팔지 못할 이유도 여럿 있지만, 정말 트럼프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그냥 1조 달러 지폐하나 만들어 중국에 넘겨주면 그만일 수도 있다. 그럼 정말 세계 경제에도 타격이 크겠지만, 미국의 경제에도 매우 큰 손해를 끼친다.그런데 ‘미국의 이익’이 누구를 위한 이익인 지를 다시 정의한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1인당 몇 억 달러를 가지고 있는 극소수 기득권의 금융가, 헷지 펀드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겠지만, 이미 잃어버릴 것이 없는 중하위 50%에게는 그게 그거일 수 있다. 어쩌면 더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이판사판에 남들이 망하는 걸 보며 즐거워할 재미라도 생기니까. 어느 불확실한 통계에서 미-중 관세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의 수출은 4000억 – 5000억불정도가 줄어들고, 수입은 불과 2000억불만 줄어들어 미국이 절대적으로 손해를 볼 거라고 한다. 그 손해를 감당할 사람은 아마도 미국 제조업체일 듯하다. 그리고 미-중 간의 금융전쟁이 일어난다면 월스트리트와 FRB(미국 연방준비 은행 – 한국과는 달리 민간 은행의 연합체임)가 손해를 감당해야 한다. 일반 서민층은 어쩌면 그 손해의 정도를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부분의 합이 전체의 합과 일치하지 않는게 과학에서나 경제에서나 같다.
지금으로 보아서는 트럼프가 미국 금융계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민층의 이익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그가 대표하고자 하는 미국의 이익은 그를 뽑아준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백인’들의 이익이다. 그렇다고 그 백인들이 가난하거나 무식하지도 않다. 원래 백인은 미국에서 기득권층이었다. 기득권을 가졌으면서도 흑인대통령, 무슬림에 대한 권리 인정, 제조업의 소멸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백인이다. 겉으로 드러난 합리적이고 인류애적인 미국의 이익과 트럼프 지지층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이 모든 사람을 끌고 가면서 모두의 번영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이미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고 하면서 ‘히스파닉 (중남미계 미국인)’의 이익은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분명히 했고, 무슬림의 이민들 덜 받겠다고 하면서 중동지역 출신 국민과는 담을 쌓았다. 트럼프가 생각하는 미국의 이익과 언론이나 지식계층이 생각하는 미국의 이익은 다름이 분명하다.(이스라엘 유대인 90%가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유명 메시아닉 랍비 제브 포랏, 출처 : 유튜브)
그렇다면 한국은?
장기적으로는 미국에서의 영향력을 키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 모델이 될 만한 사례로는 유태인들이다. 그 들이 미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듯이 재미 교포들의 미국 내에서 영향력을 가질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 것도 유태인과는 다른 선한 영향력이어야 한다. 유태인만큼이나 해외로 퍼져있는 민족인 한민족이고, 한국을 지지하는 세력이다. 이들이 세력화한다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간에 정권의 변화에 영향을 덜 받고 안정적인 관계를 한국과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지금의 트럼프가 대이스라엘 정책에 별 변화가 없듯이. 오히려 더 친이스라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다행히도 지금 우리는 그런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우리 한국인이 해외에서 무역을 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하나로 뭉칠 기회나 구심점이 없었던 데 반하여 지금은 무역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모임도 있다. 미국의 각 지역마다 한인회가 구성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역시 기업을 지원하면서 멋있고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은 반기업 정서가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경제를 키운다면서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전히 박정희시대에 머물러 있다. 사회가 너희를 키웠으니, 너희는 사회에 보답을 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빅정희 이후 정말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그들이 다른 나라의 기업보다 얼마나 더 많은 특혜를 받았는지를 돌아보자. 한국의 정부와 정치는 기업이라는 곶감 빼먹기에 너무 급급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대략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인간의 논쟁이 그렇듯이 반론이 있기는 마련이다.1) 합리적이지 않다
트럼프가 본인의 공약과 실제 정책으로의 실행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사항은 역시 ‘합리성’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지금 행동은 어느 모로 보아도 합리적이거나 발전적이지 않다. 애초부터 그의 대선 출마나 대통령 당선이 이성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선이 되었다. 전 세계의 절대 다수는 그의 행동과 말투를 비웃었지만, 그를 지지한 절대 소수가 이겼다. 영국의 브렉시트도 그랬다. 그래서 브렉시트가 결정되자마자 영국 내에서도 탄식이 흘러 나왔다. 독일의 히틀러를 예로 들어도 그랬다. 그도 국민 투표에서 당선되었고, 2차 대전의 절대 기간 동안 독일 국민은 그를 지지했다. 언론이 트럼프를 견제할 것이라는 기대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언론은 매우 변덕스러울 뿐 만 아니라 대중을 ‘중우정치’로 몰아가는 대표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가 처음 대선 출마할 때만 해도 아무도 트럼프의 당선을 예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언론의 역할’이 컸다. 그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려는 언론의 옐로우저널리즘이 그를 당선시켰다고 자책하는 미디어의 기사를 찾아보면 꽤나 많다. 그러면서도 더 나아지지 않은 미국 언론이다.
이런 수많은 정치적 행태를 보면 인간은 합리적이거나, 언제나 발전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 것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마찬가지이다. 집단적일 때 더욱 비이성적일 수 있다. 한-일 관계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양국 국민은 서로를 존중한다. 그러나 국가 단위로 보았을 때 한-일이 좋은 관계를 유지한 적은 없다. 언제나 전쟁이었고, 한반도를 침범한 일본에서는 언제나 정권의 변화가 있었다. 전쟁이야 말로 인간이 이루었던 수많은 발전과 문명을 파괴하고 목숨을 앗아갔다. 그 끔찍하고 야만적인 행위들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의 결과는 결국 다수 국민의 비참함이었다. 만일 전쟁 덕분에 인류의 과학이 발전했다고 주장한다면, 인류의 종말이 무기로 인하여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온 것도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더 빨리 끝낼 수 있기 위하여 스스로를 죽일 수단을 만드는 것이 과학 발전의 위대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원래부터 세상은 정상이 아니었다. 인류의 수많은 전쟁이 그 것을 증명한다. 언제나 ‘비정상’이 존재했고, 우리가 생각했던 ‘정상’이라는 상태는 일시적이고 깨져왔다. 매우 합리적이고 숫자로 과학적 가설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반복적인 실험과 실제 새상ㅇ에서 실현으로 존재를 증명해왔던 과학의 이론조차도 언제나 ‘정상’과 ‘비정상’ 과학의 투쟁이 이어져왔다.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등장은 정치적 도덕적 외교적 정상상태에서 비정상 상태로 옮겨갔다. 일본의 극우정치, 한국의 국정농단, 러시아의 제왕적 대통령 푸틴, 영국의 브렉시트 등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를 찾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이런 걸 보면 인류는 ‘비정상’이 ‘정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트럼프야 말로 정치.외교에서의 ‘블랙스완’ (나타날 가능성이 지극히 낮지만 나타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이다. 장자세습되는 국왕제도는 다음 왕이 선하고 현명할지, 아니면 폭군이 될지는 모르듯이, 민주적 경선 제도를 거친 대통령제도도 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2) 수단이 많지 않다.
일단 보호무역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나라가 미국임을 알아야 한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보호무역정책을 보고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가 `유치산업보호론`을 주장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이니,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정책에서 그리 큰 차이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도 움직일 만한 여지는 무척 많다. 무역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변화를 찾을 여지는 많다. 당선 되자마자 트럼프가 실행한 보호무역 수단으로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협정 (TPP)를 폐기하였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는 행정 명령에 공식 서명했다. 한-미 자유무역 협정 (FTA)나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도 어느 일방이 협정의 무효를 선언하면 180일이 경과한 후 소멸되게 되어 있다. 협정의 폐기는 의회의 별도 인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취임이후 트럼프가 보인 행적을 보면 단순히 기존의 무역 시스템 내에서 움직이면서 보호무역 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그 시스템을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낼 가능성도 있다.
3) 미국에도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트럼프의 비정상적 일탈은 ‘세계화된 지금의 전 지구적 경제’에서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미-중 간의 무역 갈등은 어느 나라에도 이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식량, 에너지, 달러를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 중국과 달리 거의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 비슷한 넓이의 국토 안에 미국은 약 5억의 인구가 살면서 자원이 넉넉한 반면에, 중국은 약 13억 – 15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면서 인구 규모에 비하여 그리 충분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을 덜 무서워할 이유가 있다. 중국이 미국의 국채가 1조 1천억 달러에 달해서 미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 한다. 중국이 함부로 미국의 국채를 팔지 못할 이유도 여럿 있지만, 정말 트럼프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그냥 1조 달러 지폐하나 만들어 중국에 넘겨주면 그만일 수도 있다. 그럼 정말 세계 경제에도 타격이 크겠지만, 미국의 경제에도 매우 큰 손해를 끼친다.그런데 ‘미국의 이익’이 누구를 위한 이익인 지를 다시 정의한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1인당 몇 억 달러를 가지고 있는 극소수 기득권의 금융가, 헷지 펀드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겠지만, 이미 잃어버릴 것이 없는 중하위 50%에게는 그게 그거일 수 있다. 어쩌면 더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이판사판에 남들이 망하는 걸 보며 즐거워할 재미라도 생기니까. 어느 불확실한 통계에서 미-중 관세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의 수출은 4000억 – 5000억불정도가 줄어들고, 수입은 불과 2000억불만 줄어들어 미국이 절대적으로 손해를 볼 거라고 한다. 그 손해를 감당할 사람은 아마도 미국 제조업체일 듯하다. 그리고 미-중 간의 금융전쟁이 일어난다면 월스트리트와 FRB(미국 연방준비 은행 – 한국과는 달리 민간 은행의 연합체임)가 손해를 감당해야 한다. 일반 서민층은 어쩌면 그 손해의 정도를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부분의 합이 전체의 합과 일치하지 않는게 과학에서나 경제에서나 같다.
지금으로 보아서는 트럼프가 미국 금융계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민층의 이익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그가 대표하고자 하는 미국의 이익은 그를 뽑아준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백인’들의 이익이다. 그렇다고 그 백인들이 가난하거나 무식하지도 않다. 원래 백인은 미국에서 기득권층이었다. 기득권을 가졌으면서도 흑인대통령, 무슬림에 대한 권리 인정, 제조업의 소멸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백인이다. 겉으로 드러난 합리적이고 인류애적인 미국의 이익과 트럼프 지지층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이 모든 사람을 끌고 가면서 모두의 번영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이미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고 하면서 ‘히스파닉 (중남미계 미국인)’의 이익은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분명히 했고, 무슬림의 이민들 덜 받겠다고 하면서 중동지역 출신 국민과는 담을 쌓았다. 트럼프가 생각하는 미국의 이익과 언론이나 지식계층이 생각하는 미국의 이익은 다름이 분명하다.(이스라엘 유대인 90%가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유명 메시아닉 랍비 제브 포랏, 출처 : 유튜브)
그렇다면 한국은?
장기적으로는 미국에서의 영향력을 키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 모델이 될 만한 사례로는 유태인들이다. 그 들이 미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듯이 재미 교포들의 미국 내에서 영향력을 가질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 것도 유태인과는 다른 선한 영향력이어야 한다. 유태인만큼이나 해외로 퍼져있는 민족인 한민족이고, 한국을 지지하는 세력이다. 이들이 세력화한다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간에 정권의 변화에 영향을 덜 받고 안정적인 관계를 한국과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지금의 트럼프가 대이스라엘 정책에 별 변화가 없듯이. 오히려 더 친이스라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다행히도 지금 우리는 그런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우리 한국인이 해외에서 무역을 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하나로 뭉칠 기회나 구심점이 없었던 데 반하여 지금은 무역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모임도 있다. 미국의 각 지역마다 한인회가 구성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역시 기업을 지원하면서 멋있고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은 반기업 정서가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경제를 키운다면서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전히 박정희시대에 머물러 있다. 사회가 너희를 키웠으니, 너희는 사회에 보답을 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빅정희 이후 정말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그들이 다른 나라의 기업보다 얼마나 더 많은 특혜를 받았는지를 돌아보자. 한국의 정부와 정치는 기업이라는 곶감 빼먹기에 너무 급급했는지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