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통찰법] 피카소와 다이슨의 성공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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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없는 선풍기,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뜨겁지 않은 헤어드라이어를 개발한 회사하면 누가 생각나는가?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이다. 그는 디자인과 기술의 조화라는 슬로건을 유지한 채 새로운 혁신을 계속하고 있다. ‘Different’라는 경영철학을 내세워 기존 제품들이 지닌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지난 해 출시한 ‘초음속 헤어드라이어’는 망치처럼 생긴 헤드부분이 없다. 대신 1분당 11만번 회전하는 500원짜리 크기의 초고속 모터가 손잡이에 들어가고 본체의 구멍을 뚫었다. 초당 13L에 이르는 풍량을 만들어내어 가볍고, 조용하고, 심지어 뜨겁지 않는 헤어드라이어를 개발했다.
70세가 넘은 그의 최대 적은 고정관념이다. 그는 2012년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 기술 개발에만 전념하고 있다. CEO라는 자리를 고수하는 것 자체가 고정관념이 될 수 있고 결국 회사의 경영철학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지난 2009년, 영국 더 타임스와 사치 갤러리는 1900년 이후 최근까지 활동한 전 세계 예술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 200명을 조사한 후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146만 1,523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피카소는 2만 1,587표를 얻어 최고의 예술가로 이름을 올렸다. 2위는 2만1,098표를 받은 폴 세잔(Paul Cézanne)이 선정됐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전시가 열린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화가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뒤를 이었다. 이 조사는 16주 동안 146만 1,523명을 대상으로 나타난 결과로 피카소가 단연 1위였다. “그림은 몰라도 피카소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피카소는 미술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화가다.
피카소는 3차원의 세계 즉 입체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표현하였고 이는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연 계기가 되었다. 회화에서 사물의 객관성을 끌어내려는 피카소의 노력은 현대추상미술의 싹을 키웠고, 20세기의 건축·디자인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피카소의 위대함은 입체주의를 탄생시킨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피카소의 창작 활동은 다음의 몇 가지 시기로 나뉜다. 청색시대(1901년~1902년 청색이 지배하는 작품), 청색~장미색 이행기(1904년), 장미색 시대(1905~1906년), 입체주의(1908~1914년), 앵그르풍 시대(1915년부터 사실적 초상화로 복귀), 초현실주의 (1925~1939년), 앙티브 시대(1946~1948년), 말년(1945~1973년)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형태와 재료 사용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했고 예술가는 특정한 유파나 사조에 속한다는 통념을 뒤엎었다. 그는 세기를 가로지르며 자신의 부단한 변모에 세상을 변화시켜 갔다. 따라서 피카소는 어떤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불가능하다.그렇다면 피카소는 어떻게 해서 위대한 화가가 되었을까? 성공한 사람은 성공의 상식에 매달리게 된다. 그것이 성공의 방정식이 되어 모든 세상의 이치를 그 방정식에 대입시킨다. 하지만 속도의 경쟁 시대인 오늘날 성공의 상식은 ‘일회용 반창고’와 같다. 한 번의 성공이 또 다른 성공으로 이어질 수 가 없다는 것이다. 디버깅의 신화로 불리는 그레이스 호퍼(Grace Murray Hopper)도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 가장 위험한 말은 ‘우리는 지금까지 늘 이렇게 해왔어’라고 하는 말이다.”
매년 똑같은 문제를 출제하는 선생님이 있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왜 매년 문제가 같나요?”라며 항의를 했다. 선생님의 대답은 이랬다. “문제가 같아도 정답이 달라지니까, 매년 같은 문제를 내는 것이지!” 즉, 시대와 환경, 상황이 달라지면 같은 문제에 대한 정답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지식과 성공은 일회용 반창고와 같다. 유통기한이 있어서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오답이 될 수 있다. 상한 생선을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것처럼 유통기한이 지난 성공 상식을 잘못 적용하면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제임스 다이슨과 피카소가 성공한 것처럼 지금 마음껏 즐기고 있는 기득권, 성공 지식 등을 버려야만 창조와 새로운 기회가 다가온다.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
70세가 넘은 그의 최대 적은 고정관념이다. 그는 2012년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 기술 개발에만 전념하고 있다. CEO라는 자리를 고수하는 것 자체가 고정관념이 될 수 있고 결국 회사의 경영철학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지난 2009년, 영국 더 타임스와 사치 갤러리는 1900년 이후 최근까지 활동한 전 세계 예술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 200명을 조사한 후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146만 1,523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피카소는 2만 1,587표를 얻어 최고의 예술가로 이름을 올렸다. 2위는 2만1,098표를 받은 폴 세잔(Paul Cézanne)이 선정됐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전시가 열린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화가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뒤를 이었다. 이 조사는 16주 동안 146만 1,523명을 대상으로 나타난 결과로 피카소가 단연 1위였다. “그림은 몰라도 피카소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피카소는 미술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화가다.
피카소는 3차원의 세계 즉 입체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표현하였고 이는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연 계기가 되었다. 회화에서 사물의 객관성을 끌어내려는 피카소의 노력은 현대추상미술의 싹을 키웠고, 20세기의 건축·디자인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피카소의 위대함은 입체주의를 탄생시킨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피카소의 창작 활동은 다음의 몇 가지 시기로 나뉜다. 청색시대(1901년~1902년 청색이 지배하는 작품), 청색~장미색 이행기(1904년), 장미색 시대(1905~1906년), 입체주의(1908~1914년), 앵그르풍 시대(1915년부터 사실적 초상화로 복귀), 초현실주의 (1925~1939년), 앙티브 시대(1946~1948년), 말년(1945~1973년)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형태와 재료 사용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했고 예술가는 특정한 유파나 사조에 속한다는 통념을 뒤엎었다. 그는 세기를 가로지르며 자신의 부단한 변모에 세상을 변화시켜 갔다. 따라서 피카소는 어떤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불가능하다.그렇다면 피카소는 어떻게 해서 위대한 화가가 되었을까? 성공한 사람은 성공의 상식에 매달리게 된다. 그것이 성공의 방정식이 되어 모든 세상의 이치를 그 방정식에 대입시킨다. 하지만 속도의 경쟁 시대인 오늘날 성공의 상식은 ‘일회용 반창고’와 같다. 한 번의 성공이 또 다른 성공으로 이어질 수 가 없다는 것이다. 디버깅의 신화로 불리는 그레이스 호퍼(Grace Murray Hopper)도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 가장 위험한 말은 ‘우리는 지금까지 늘 이렇게 해왔어’라고 하는 말이다.”
매년 똑같은 문제를 출제하는 선생님이 있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왜 매년 문제가 같나요?”라며 항의를 했다. 선생님의 대답은 이랬다. “문제가 같아도 정답이 달라지니까, 매년 같은 문제를 내는 것이지!” 즉, 시대와 환경, 상황이 달라지면 같은 문제에 대한 정답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지식과 성공은 일회용 반창고와 같다. 유통기한이 있어서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오답이 될 수 있다. 상한 생선을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것처럼 유통기한이 지난 성공 상식을 잘못 적용하면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제임스 다이슨과 피카소가 성공한 것처럼 지금 마음껏 즐기고 있는 기득권, 성공 지식 등을 버려야만 창조와 새로운 기회가 다가온다.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