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삼라만상'

국립현대미술관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한창이다. 삼라만상은 온 우주의 만물과 모든 현상을 뜻하는 것으로 현대미술의 다양함과 작가들의 무한한 표현영역을 포괄하는 의미로 출품작인 강익중의 작품명에서 가져왔다. 김환기를 비롯해 김기창, 이쾌대, 변월룡, 안창홍, 강익중 등 국내 유명작가 작품들을 통해 구상부터 추상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1. 김환기, 새벽 #3, 1964–1965, 캔버스에 유채, 176.9×109.6cm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의 작품은 이 전에도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때도 그랬지만 그의 그림은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준다. 「새벽」이라는 제목은 작품은 화면전체의 푸르스름한 보랏빛이 새벽이라는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졌다. 가운데 둥근 것은 동트기 전 해를 상징한 것  같다. 선과 점이라는 어찌보면 서양적인 매체를 사용하였지만 한국의 자연주의적 미의식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과 추상이 균형을 이루어 조화롭게 표현된 작품이었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욕심없이 그린 것 같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이 자연과 같이’ 라고 한 김환기의 말이 다시 실감나게 다가왔다. 















2. 김기창, 정청, 1934, 캔버스에 유채, 176.9×109.6cm
고요함 속에 다정해 보이는 두 여자의 모습이 엄마랑 딸처럼 보였다. 미래에 우리 모녀사이가 이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사실 이 두 사람은 모녀가 아니라 언니와 동생 사이였다.
김기창의 모친이 돌아가신 해에 한 기생과 그녀의 딸들이 건너방에 세들어 오게 되는데 그 중 큰 딸이 저 여인이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저 여인을 향한 김기창의 마음은 깊어 갔다. 결국 저 여인을 그려서 그림전에 출품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잘 꾸며진 어느 병원의 응접실에  여인과 누이를 마치 앉히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여인을 향한 간절하고 떨리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여인의 눈동자, 의자와 의자에 수 놓여진 무늬, 둘레를 실로 꿰어 만든 동생의 신발, 하늘하늘 한복을 세밀하게 그린 섬세함을 보며 화가의 마음과 정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예술가의 관찰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다른 작품들을 둘러보다 다시 돌아와서 한동안 바라보던 유일한 그림이었다. 인물을 대상으로 한 그림이 이렇게 강한 여운을 남기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3. 이숙자, 군우 3–1, 1987, 순지에 암채, 54×77.3cm        
우직함과 끈기있는 우리민족을 상징한다는 소, 큰 캔버스에 소들이 꽉 찬 그림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예전에 할아버지를 따라 우시장에서 본 소들의 모습이랑 꼭 닮아 있었다. 바로 앞에서 어린 시절 그 소들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세밀하게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긴 속눈썹 아래의 커다란 눈이 나를 주시하며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손을 대면 혀를 내밀어 내 손을 핥을 것 같은 생생함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화면에 균형있게 배치된 소, 윤기가 흐르는 털들의 풍부한 색감, 사실적인 형태를 보고 있자니 작가가 얼마나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그린 그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4. 이응노, no.64, 1986, 순지에 암채, 181.5×226.5cm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그렸다는 이 작품에서 굉장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수백명의 사람들의 춤추는 듯한 모습을 먹의 농담을 살려 어느 개체 하나 같은 모양이 없고 율동감 있는 모습이었다. 멀리서 보면 물결이 출렁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흡사 월드컵경기 응원할 때의 그 함성과 열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대~~한 민국 짝짝~짝 짝짝. 리듬감 있게 구성한 화면과 단순하지만 역동적인 개체들의 움직임들이 모여 긴장감 있는 그 현장을 재현하는 듯 했다. 크고 작은 일에 단결하는 우리 민족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5. 김은진, 냉장고, 2011~2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60cm
작가는 냉장고 냄새가 역겹다고 얘기했다. 냉장고 속에 뒤얽힌 음식물들은 사람의 몸을 지탱하는 양분들이고 이를 먹고 내 몸을 유지하겠다는 욕망의 창고로서 비추어지자 그에게는 역겨움의 대상이 되었다.
                                                                                                           – 현대미술관 오디오가이드 –

처음 그림을 접했을 때 그냥 그런 풍경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수많은 사연들이 담겨져 있었다.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무의식과 의식 등 큰 화폭 안에 편집된 사연들이 모여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 하는 듯 했다. 다소 폭력적이고 인체의 외부와 내부기관을 비현실적으로 절단하거나 확대시키거나, 배설물이 뒤덮이거나, 무언가를 분출하는 수많은 연통과 물줄기를 뿜어내는 호스와 대포, 남녀의 정사장면 등 구석구석 의문과 호기심으로 계속 들여다보게 만드는 묘한 끌림이 있었다. 인간의 욕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한 심리, 무의식의 세계를 작가 자신과 감상자에게 한번쯤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6. 최수앙, The Between, 2007, 레진에 유채, 28×40×92cm
최수앙은 2005년도에 서울대학교 조소과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쓴 논문 《심리적 괴리감에 관한 작업연구》에서 “작업은 내면적 혼란에서 파생되는 우울감, 불안감, 허무감 등의 부정적 심리를 형상의 변형 과정을 통해서 고찰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감추고 싶은 억압된 무의식을 드러내놓음으로써 자신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머리위에서부터 시선이 내려온다. 머리카락 없는 민머리에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한 표정과 눈빛, 한껏 움츠린 어깨, 깍지를 껴서 힘껏 오므린 손가락과 발가락, 자기가 무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불안한 모습, 사실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비정상과 정상의 경계, 불안함과 편안함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나에게 질문하는 것 같았다. 조각 작품이 나에게 소통이 되고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것 같아 뭔가 들킨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그 잔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삼라만상 : 김기환에서 양푸둥까지
(2017.0313~2017.08.13)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