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우산이 명품으로! 하이엔드 마케팅

최근 저성장, 불경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이 너나나도 저가 제품 출시에 몰두하고 있다. 낮은 가격에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면서 충분한 마진을 확보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실 많은 기업들이 제로섬게임의 가격경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당신이 우산을 팔아야 된다고 가정해보자. 하루에도 수 백, 수 천 개의 우산이 봇물 터지듯 넘쳐나는 외부적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지난 2017년 7월 압구정동에 위치한 갤러리아명품관에 우산이 소개되었다. “특별함을 추구하는 갤러리아명품관에 평범한 우산이?”라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1956년 이탈리아 공방에서 시작된 ‘파소티’는 60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수제 우산 브랜드로 수제 우산의 장인이 3대째 걸쳐 전통에 입각한 수작업 공정을 고집, 소량으로 생산된다. 제품의 희소성으로 유명 해외 연예인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우산 이외에도 파라솔, 지팡이, 구둣주걱 등의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파소티는 우산을 비를 막는 도구가 아닌 패션 아이템으로 재정의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가가 단체 주문할 정도로 품질과 디자인을 인정받고 있다.






‘하이엔드(High-end) 마케팅’이란?
기존 업계에서 사용하지 않던 고급화 전략으로 명품 반열에 올린 파소티의 마케팅 전략은 ‘하이엔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엔드 마케팅이란 ‘파는’ 마케팅이 아니라 ‘사게 하는’ 마케팅이다. 고객의 관심을 넘어 환호와 열광을 끌어내며, 그 자체로 이슈가 되는 마케팅 전략을 의미한다. 소피아 로렌, 귀네스 팰트로, 샤론 스톤 등을 위한 헌정 컬렉션을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알린 주얼리 브랜드 ‘다미아니(Damiani)’, 양은 타 브랜드의 절반이면서 가격은 두 배 비싼 ‘배짱 전략’으로 스스로 가치를 증명한 ‘레드불(RedBull)’은 하이엔드 마케팅의 전형이다.
하이엔드 마케팅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귀족마케팅, 로열마케팅, VVIP마케팅 등으로 불리면서 전체 고객 중 1~5%의 비율을 차지하는 최상류층 고객만을 상대로 하는 고급 마케팅 기법이다. 이러한 하이엔드 마케팅은 ‘파레토 법칙’에서 파생되었다. ‘파레토 법칙’은 ‘80 대 20 법칙’이라고도 하며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20%의 고객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80%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서 말하는 20%의 고객, 하이엔드 마케팅의 주 타겟층인 VVIP라고 할 수 있다.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아주 필요한 것 외에는 집안에 집기나 가구를 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가 애용했던 세탁기가 하나 있다. 바로 가전제품의 명문, 밀레의 세탁기다. 잡스가 밀레 제품에 영감을 얻었다고 말할 정도로, 밀레는 견고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이렇든 밀레는 한 번 사면 20년 이상 사용하는 제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가격이 경쟁제품들에 비해 2~3배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재구매율이 96%에 이르고, 독일 소비자 조사에서 1992년 이후 지금까지 거의 매년 고객 만족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북미 하이엔드 시장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가 반할 정도의 성공적인 하이엔드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수립할 수 있을까?

첫 번째, 가질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라.
백화점에 양복을 사러갔다고 하자. 마침 맘에 드는 양복 한 벌을 발견했다. 색깔은 회색이었다. 회색도 좋았지만 그냥 검은 색도 있느냐고 물었다. “있었는데 다 팔렸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회색이 더 잘 어울리십니다.”라고 판매원이 회색을 권유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듣자 왠지 회색이 싫어지고 검정색이 입고 싶어진다.
“혹시 창고에 재고가 남아 있지 않을까요?”
“다른 매장에 이 물건이 남아 있는지 알아봐주세요.”
이때 판매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손님, 이 물건은 아마 다른 매장에도 없을 겁니다. 정말 이 물건이 사고 싶으시다면 본사에 연락해서 재고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며칠 기다리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이렇게 답한다.
“괜찮아요. 알아봐주세요. 재고가 있기만 하면 살 겁니다.”
결국 판매원은 남아 있는 재고를 하나 더 찾아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물론 원하던 재고가 남아 있다는 말을 들으면 이전에 느끼던 강렬한 매력이 약해질 수도 있지만 그때쯤엔 이미 취소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다. 재고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그 결정적인 순간에 이미 구매 결정을 내리고 공개적으로 약속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원리로 희소성 있는 물건이 더 비싸게 팔리는 수가 있다. 잘못 인쇄된 우표나 잘못 제작된 동전은 그 액면가치도 안되는 것이지만, 희소성의 원리가 적용되면 소유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되는 셈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비싼 가격을 치르고자 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심리를 자극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마케팅 전략으로 제한된 숫자나 시간의 압박을 통해 희소성의 상황을 창출하기도 한다. 올림픽 기념 주화처럼 그 제조숫자를 제한하기도 하고, 명품 브랜드들은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edition, 한정판)과 같은 표현을 써가며 희소가치를 높이려 한다. 현대카드는 카드사 중 국내 최초의 프리미엄 카드 ‘더 블랙(the Black)’으로 하이엔드 마케팅을 실시했다. 이 카드는 대한민국 상위 0.05%의 우량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발급된다. 이들 우량 소비자층은 대기업 주요임원 이상, 매출 1000억원 이상과 군장성급 이상, 판·검사급의 공무원, 단과대 학장이상의 교직원, 전문직종도 종합병원 부원장 등등 자격 요건과 심리적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출시 당시에는 수요층과 수익성에 무리가 있을 것이라 우려했지만, 회원 당 월평균 사용액은 900만 원대를 넘나들었고, 연체율은 0%였다. 연회비를 뛰어넘는 상품권 제공, 항공기 좌석 무료 업그레이드, 호텔 및 명품 브랜드 우대권 제공 등 기존 카드에서 볼 수 없었던 프리미엄급 서비스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두 번째, 하이엔드 마케팅의 성공전략은 대체불가능성이다.
기능이나 감성적이 측면에서 다른 제품으로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만족감을 얻을 수 만 있다면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상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고객이 반드시 존재한다. 일본 화장품업체 시세이도의 브랜드인 CPB에서 내놓은 고급 스킨케어그림인 ‘라 크렘므(La Creme)’라는 제품이 있다. 25g에 52,5000엔, 약 57만원이라는 고각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고 있다. 보습효과가 탁월할 뿐만 아니라 보석상자와 같은 화려한 용기를 사용해 고급스런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 결과 전년에 비해 매출이 10% 늘어나는 등 침체된 일본 화장품 시장에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가성비 대비 탁월한 기능과 성능을 제공해 고객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대체재가 없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세 번째, 가격이 아닌 가치를 팔아라.
우리나라에서는 커피 전쟁이 한창이다. 강남의 중심에는 커피빈,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커피 등 프렌차이즈 커피가 많이 있다. 그 중 스타벅스는 국내에서 여전히 건재하다. 당신은 앞으로 어떤 커피가 승자가 될 것 이라고 생각하는가? 커피를 판매 할 때도 고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자만이 승자가 될 것이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팔기 보다는 문화를 판다. 밥 값보다 더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번화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스타벅스 커피는 그냥 커피가 아닌 명품가방에 어울리는 커피다. 이것은 가치이자 문화다. 그래서 고객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스타벅스의 가치와 문화를 마시는 것이다.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는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을 방문한 여러분들의 앞에서, 스타벅스의 파트너가 직접 제공하기도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신선하고 빠르게 혁신적인 커피를 제공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스타벅스의 유니크한 리테일 매장과 디지털 인프라의 결합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로, 고객들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가정에서 세계의 희귀한 커피들을 경험하게 해 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커피는 부수적인 것이고 진짜 상품은 다양한 경험과 문화적 체험을 통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번 만들어진 가치제안은 영원할까? 쌍용자동차는 지난 2001년 ‘렉스턴’이라는 대표적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출시하여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그 때 내세웠던 브랜드 슬로건은 하이엔드 마케팅인 ‘대한민국 1%’였다. 아무나 살 수 없는 대한민국 1%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극대화하여 2001년 국내에서만 1만5000대를 판매했다. 그런데 2005년 수입 자동차가 자율화되면서 국내 SUV 차량이 수입되고, 2007년에는 현대자동차에서 렉스턴보다 세련된 베라크루즈가 탄생되면서 렉스턴의 가치는 예전만 못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는 2006년 렉스턴 II, 2007년 렉스턴 II 유로, 2008년 슈퍼 렉스턴 등으로 바통을 이어가면서 ‘대한민국 1%’라는 가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결과는 예측한바와 같다. 시간이 지나면 경쟁사는 우리의 가치를 모방하거나 더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다. 따라서 우리의 가치 제안이 범용화되었을 때 원점으로 돌아가서 가치 제안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