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치 혀의 파괴력

“탄광에서 사고가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고는 다른 작업현장에서도 일어난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사고가 없는 일은 아니다.”

지난 5월 14일 터키 총리가 터키 소마탄광 사고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내뱉은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영국에선 1862년에 204명, 1866년엔 361명, 1894년엔 290명이 사망한 탄광 사고가 있었다”며 친절(?)하게도 사례까지 열거했다. 도를 넘은 막말에 수백 명 유족의 분노가 폭발했다. 결국 반정부 시위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고 말았다. 성난 시민들이 터키 총리가 이끄는 정의개발당 지부 사무실에 난입해 총리의 사진을 짓밟고 집기를 부수는 등 분노표출이 극에 달했다. 도저히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린 것이다. 이미 입술을 벗어난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낙장불입이다.2010년 칠레 탄광에 매몰된 33명을 69일간 구조했던 칠레 대통령은 “칠레의 가장 큰 보물은 구리가 아니라 광부들”이라는 말을 남겼다. 참으로 극과 극으로 대비된다. ‘형제의 나라’ 터키에서 또 다른 세월호를 보는듯 하다.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 터져나온 어처구니 없는 말과 행동은 개념 상실을 넘어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듯 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황제라면’ 논란과 관련해 “라면에 계란을 넣은 것도 아니고, 끓여 먹은 것도 아닌데…”라며 두둔했다가 여론의 호된 뭇매를 맞았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막내아들은 세월호 사고와 관련, “국민정서가 미개하다”, 정 후보의 부인은 “바른 소리 했는데 시기가 안 좋았다”고 말해 아버지를, 남편을 곤경에 빠트리기도 했다.

좀 더 거슬러 가보자. 정치권의 말실수 예는 부지기수다. 소설가이기도 한, 당시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은 1998년 대정부질문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향해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한다. 옛말에 염라대왕은 거짓말을 많이 한 사람의 입을 봉했다고 하는데,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드르륵 박아야 한다”는 막말을 던졌다. 이로 인해 형사책임까지 져야 했고 얼마 후 그의 모습은 정치판에서 사라졌다.
2004년 17대 총선 과정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원은 “60~70대는 투표를 안해도 괜찮다. 집에서 쉬시라”고 했다. 노인 폄하 발언이라 온세상이 들끓었다. 이 한마디는 총선 결과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정 의원 측은 “20~30대의 투표율 독려를 위해 한 발언”이라며 황급히 불을 꺼 보려 했지만 현실은 싸늘했다. 노인층의 분노가 폭발했고 여지없이 표심으로 이어졌다. 여권에 공세 빌미까지 제공했다. 결국 대패로 이어지고 말았다.

말에 대한 경고를 담은 ‘舌詩’가 요즘 부쩍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무려 11명의 황제를 모신 재상으로 유명한 중국 풍도(馮道)가 지은 것이다. 풀이하면 이렇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閉口深藏舌),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安身處處牢).
말에 대한 경고는 유대인 속담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신의 입 속에 들어있는 한, 말은 당신의 노예이지만, 입 밖에 나오게 되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

또 때가 된 모양이다. 전철 출입구로 통하는 길목에 빨강 파랑 옷을 갖춰 입은 선거 알바들이 도열해 지지 후보를 연호하며 연신 배꼽인사다. 마치 주유소 마네킹 로봇인형이 연상된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거리를 오가며 율동을 펼치던 퍼포먼스형식의 선거운동은 자제키로 했단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주요 정당의 지방선거 10대 공약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국민안전 플랜 마련, 새정치민주연합은 안전 대한민국 만들기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여야의 안전공약에는 재난대응 컨트롤타워 수립, 안전기준·규제 강화 등 국민 안전과 관련된 다양한 방안들이 포함돼 있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급선회한 공약 내용이다. 여야 공히 경제와 민생을 강조했던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여야 모두 ‘舌禍 주의보’가 내려졌다.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렸다간 공약이 제아무리 좋아도 백약이 무효다. 대다수 민초들은 ‘말실수 릴레이’에 그만큼 지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