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정의 은행나무 아래서
입력
수정
얼마 전에는 모교였던 풍문여고를 찾았다. 갑신정변의 신호탄으로 개화파들이 불을지른 안동별궁터였던 모교 운동장을 지나쳐 뒤뜰로 가니 새로운 교사가 증축되긴 했어도 오랜 전부터 있었던 은행나무가 같은 자리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예닐곱명이 손을 마주뻗어야 간신히 둘러질 은행나무 둘레를 돌며 타임머신을 타고 순식간에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거슬러올라갔다.고등학교 시절을 사로잡았던 헤르만헤세와 펄벅의 작품들을 비롯 비틀즈의 음악과 마음을 뒤흔드는 친구들과의 감성적인 신경전이 떠올랐다. 헤르만헤세의 주인공들은 알을 깨고 나와 더 큰 세계에서 방황과 방랑의 성장통을 겪으며 자아를 찾아갔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별로 변한게 없었다.한때는 한결같은 모습이 자랑인줄 알았는데 변화무쌍한 시대에 늘 그대로인게 무엇이 자랑이겠는가.
” 성문앞 그늘 곁에 서 있는 보리~수.” 고등학교 시절 많이 불렀던 노래소리가 들였다.
늘 항구에 떠 있는 배처럼 같은 자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모험담을 들으며 살아왔다.
은행나무에게 다음엔 흥미진진하고 치열한 나의 모험담을 꼭 들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미래를 향한 기대와 불안함이 공존했던 십대시절의 추억의 장소가
삶의 궤적을 뚜렷이 일깨워주었다. 어떤 점이 부족했고 아직도 어떤 가능성이 남아있는지…
살다보면 보이지 않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많다는 걸 알게된다.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의 의미를 제대로 읽고 다룰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