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신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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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촛불집회서 발뺀다
출처 : 한경닷컴 > 뉴스 > 정치/사회
원문 : 2008년 7월 7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단식기도를 멈추고 사목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힌 데 이어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은 8일 예정됐던 시국법회를 연기한다고 7일 밝혔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도 오는 13일로 계획했던 시국기도회를 연기하기로 했다. 개신교와 불교단체 등은 서울광장에 설치했던 농성용 천막을 자진 철거했다. 종교계가 이처럼 촛불시위에서 속속 발을 뺌에 따라 향후 촛불시위의 진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은 7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5일 50만명의 국민들은 다시 모여 ‘국민승리의 날’을 선포하고 청와대에 분명한 요구 사항을 공개적으로 전달했다”며 “4개 종단의 종교인들과 함께 대통령의 답변을 국민과 함께 엄숙한 마음으로 듣고자 하기에 시국법회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정의구현사제단도 전날 “어제(5일) 국민 승리를 선언하는 뜻 깊은 날을 보내고 사제들이 단식기도를 멈추고 사목현장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밝혔다. 천주교 원불교 등이 참여하고 있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가 “5일 국민대회에서 국민승리 선언을 하면서 종교인들은 뒤로 물러나 추후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한진희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종교행사 명목으로 열린 촛불집회의 경우도 당시 나온 구호,발언 내용,거리행진 등 전체적 상황을 종합해 위법 여부와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청수 경찰청장도 5일에 열린 촛불집회를 예로 들며 “종교행사라도 도로를 장시간 점거하거나 그 위에서 연좌하는 것은 집시법 적용 대상으로 볼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 기사원문보기
책 제목 : 신분의 종말
저자 : 로버트 풀러
이 책은 somebody(자기 혹은 사회가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와 nobody(본인 또는 사회가 아무 영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 것은 현대적 신분제에 대한 것이다. 학력, 인종, 성별등등. 사실 삶은 공정하지 않다. 태생적으로 somebody인 사람이 있고, nobody인 사람이 있다. 그러나 삶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가 서로에게 공정하지 않게 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이제 존엄성에 대한 침해라는 문제와 정면으로 맞부딪쳐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시를 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남에게 우리의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 평등한 존엄성은 양쪽 모두를 만족스럽게 한다.
——————————————
종교계가 촟불시위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많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니 많은 생각을 한 끝에 나온 결론일 것이다.
현대 사회는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계급(신분제도)가 존재한다. 물론 사람들은 그러한 신분제도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신분제도를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몇가지 중요한 요소중 두 가지 중요한 명제 (1인 1표라는 숫자적의미의 민주주의와 모든 인간은 목적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만인평등주의)를 배반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존재한다고 말을 하지 않으며, 그 사실을 인정하는 모두를 비난을 한다. 어떻게 보면 자기 배반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유일하게 신분적인 특권을 인정하는 것은 ‘종교인에 대한 존경’이다. 비 사실적이고 비 이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결정을 항상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교와 정치’는 ‘내세와 현실의 관계’이다. ‘내세’만을 위한 삶은 현실이 허망해지고, “聖스러움이 없는 삶’은 위로받을 곳이 없어진다. 현실에서 살지만 항상 현실의 삶에 대한 의심을 품고 사는 인간은 ‘저 본향, 인간으로서 깨닫기 어려운 진실의 세계’를 갈망한다. 그 희망의 세계가 깨진다면 인간은 ‘존재에 대한 파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얼마나 삭막한 세계인가를 상상할 수없다. 최근 며칠동안 우리는 그러한 ‘종교인에 대한 명시적인 신분제도의 존중’에 대한 의심을 품었었다. 그 들은 잠시나마 혼돈을 주었지만 이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신의 뜻을 모르는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들이 왜 갑자기 현실 참여를 보류했는 지를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이 갖고자 하는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는 ‘참으로 다행이다’. 그 들은 스스로의 ‘명분을 포기하는 용기’를 가졌다. 비록 그들이 내세우는 소소한 말들이 있었지만, ‘대의를 위한 소의의 희생’이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이제 그 둘은 또 다시 분리되었다. 우리는 그 들의 신분을 존중해줄 수있게 되었고, 그들은 우리에게 위로를 줄 수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들의 결정이 빨랐던 점에 대하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위하여…..
이 글을 쓰다보니 대구의 어디선가 신을 위하여 애쓰는 고등학교 동창인 ‘윤신부’와 ‘무르팍 신앙’을 주신 할머니.할아버지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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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만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은 불교계에 더 마음이 쏠립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대통일 이론’이 종교계에서 가능할 날이 올까요? 천년이 걸리든, 만년이 걸리든 그 때까지 지루하겠지만 진리를 구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읍니다. 말리지 말아 주세요.
출처 : 한경닷컴 > 뉴스 > 정치/사회
원문 : 2008년 7월 7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단식기도를 멈추고 사목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힌 데 이어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은 8일 예정됐던 시국법회를 연기한다고 7일 밝혔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도 오는 13일로 계획했던 시국기도회를 연기하기로 했다. 개신교와 불교단체 등은 서울광장에 설치했던 농성용 천막을 자진 철거했다. 종교계가 이처럼 촛불시위에서 속속 발을 뺌에 따라 향후 촛불시위의 진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은 7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5일 50만명의 국민들은 다시 모여 ‘국민승리의 날’을 선포하고 청와대에 분명한 요구 사항을 공개적으로 전달했다”며 “4개 종단의 종교인들과 함께 대통령의 답변을 국민과 함께 엄숙한 마음으로 듣고자 하기에 시국법회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정의구현사제단도 전날 “어제(5일) 국민 승리를 선언하는 뜻 깊은 날을 보내고 사제들이 단식기도를 멈추고 사목현장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밝혔다. 천주교 원불교 등이 참여하고 있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가 “5일 국민대회에서 국민승리 선언을 하면서 종교인들은 뒤로 물러나 추후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한진희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종교행사 명목으로 열린 촛불집회의 경우도 당시 나온 구호,발언 내용,거리행진 등 전체적 상황을 종합해 위법 여부와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청수 경찰청장도 5일에 열린 촛불집회를 예로 들며 “종교행사라도 도로를 장시간 점거하거나 그 위에서 연좌하는 것은 집시법 적용 대상으로 볼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 기사원문보기
책 제목 : 신분의 종말
저자 : 로버트 풀러
이 책은 somebody(자기 혹은 사회가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와 nobody(본인 또는 사회가 아무 영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 것은 현대적 신분제에 대한 것이다. 학력, 인종, 성별등등. 사실 삶은 공정하지 않다. 태생적으로 somebody인 사람이 있고, nobody인 사람이 있다. 그러나 삶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가 서로에게 공정하지 않게 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이제 존엄성에 대한 침해라는 문제와 정면으로 맞부딪쳐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시를 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남에게 우리의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 평등한 존엄성은 양쪽 모두를 만족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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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가 촟불시위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많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니 많은 생각을 한 끝에 나온 결론일 것이다.
현대 사회는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계급(신분제도)가 존재한다. 물론 사람들은 그러한 신분제도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신분제도를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몇가지 중요한 요소중 두 가지 중요한 명제 (1인 1표라는 숫자적의미의 민주주의와 모든 인간은 목적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만인평등주의)를 배반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존재한다고 말을 하지 않으며, 그 사실을 인정하는 모두를 비난을 한다. 어떻게 보면 자기 배반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유일하게 신분적인 특권을 인정하는 것은 ‘종교인에 대한 존경’이다. 비 사실적이고 비 이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결정을 항상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교와 정치’는 ‘내세와 현실의 관계’이다. ‘내세’만을 위한 삶은 현실이 허망해지고, “聖스러움이 없는 삶’은 위로받을 곳이 없어진다. 현실에서 살지만 항상 현실의 삶에 대한 의심을 품고 사는 인간은 ‘저 본향, 인간으로서 깨닫기 어려운 진실의 세계’를 갈망한다. 그 희망의 세계가 깨진다면 인간은 ‘존재에 대한 파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얼마나 삭막한 세계인가를 상상할 수없다. 최근 며칠동안 우리는 그러한 ‘종교인에 대한 명시적인 신분제도의 존중’에 대한 의심을 품었었다. 그 들은 잠시나마 혼돈을 주었지만 이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신의 뜻을 모르는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들이 왜 갑자기 현실 참여를 보류했는 지를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이 갖고자 하는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는 ‘참으로 다행이다’. 그 들은 스스로의 ‘명분을 포기하는 용기’를 가졌다. 비록 그들이 내세우는 소소한 말들이 있었지만, ‘대의를 위한 소의의 희생’이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이제 그 둘은 또 다시 분리되었다. 우리는 그 들의 신분을 존중해줄 수있게 되었고, 그들은 우리에게 위로를 줄 수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들의 결정이 빨랐던 점에 대하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위하여…..
이 글을 쓰다보니 대구의 어디선가 신을 위하여 애쓰는 고등학교 동창인 ‘윤신부’와 ‘무르팍 신앙’을 주신 할머니.할아버지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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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만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은 불교계에 더 마음이 쏠립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대통일 이론’이 종교계에서 가능할 날이 올까요? 천년이 걸리든, 만년이 걸리든 그 때까지 지루하겠지만 진리를 구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읍니다. 말리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