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힐과 고무신

킬힐과 고무신

패션의 마무리는 푸트웨어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신을 살 때 ‘어느 옷과 잘 어우릴까? 또는 어떤 색과 잘 어울릴까?’를 고민한다.



문제는 그 고민의 시작이 애초에 한국적 체형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양장이다. 양장은 서양적 체형에 맞게 나온 옷이다. 육식을 즐기는 서양사람들은 대체로 허리라인이 짧고 다리가 길다. 그 것은 체식을 주로 하는 한국사람에 비하여 내장의 길이가 짧아도 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몸의 구조가 다른 데 서양식 패션을 한국인에게 적용하려니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패션인들은 한국의 섬유산업이 아직도 고부가가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한국인이 미적 감각이 모자라거나, 패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애초부터 옷이 감싸야 할 몸의 구조가 다른데, 무조건 서양적 패션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오류에서 비롯된다.

펌프스, 토오픈, 슬링백, 부티, 스트랩, 부츠 …….. 는 알고 현대의 유행을 리드하지만, 화자, 백화, 운혜, 태사혜, 진신, 당혜, 노파리, 짚신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한국의 신발들이다. 살아남은 신발은 모두 뒷굽이 있는 서양식 신발이고, 한국의 전통 신발은 대체로 뒷굽이 없거나 아주 낮은 정도이다. 이러한 차이는 바로 여자의 몸을 어느 부분을 강조할 것인가에서 비롯되었다. 서양에서 신발에 굽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근세이래로 여자의 키가 커보이고 날씬하게 보이기 위하여 높은 굽을 만들고, 치마로 이를 가리면서 높은 굽이 일반화되었다. 이제는 날씬하고 가늘은 몸매를 강조하기 위하여 굽의 높이가 10센티가 넘는 킬힐이 등장하였다. 긴 다리를 더 길게 보이기 위함이다. 근대화 내지는 세계화로 일반화되는 ‘서양화’는 한국의 여성들에게도 자신의 체형과는 전혀 다른 패션이 강조되는 비극을 가져다 준 셈이다.

하이힐은 발에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구두를 신었을 때 발이 아픈 것은 발뒤꿈치가 높고 발끝이 낮은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 발바닥은 구두 바닥에서 떨어진 상태가 되고, 발이 앞쪽으로 미끄러지면서 몸의 중심이 발 앞쪽에 실리게 되어 발이 빨리 피곤하게 되고, 통증을 동반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에 와서는 전에 없던 ‘죽부의학’이라는 새로운 의학분야까지 생기면서 발의 질병이 새로운 현대병이 되었다. 발에 관한 질병의 90%이상은 신발을 신음으로써 생기는 후천적인 발병이다.



이제 패션은 단순히 아름다움만 강조해서는 안된다. ‘건강한 아름다움’이 추가되어야 한다. 잘 걷지도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킬힐을 신고 걷는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은 퇴폐적일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지 않다.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 이는 섬유소의 소화를 위하여 보다 길고 활동성이 강한 내장이 필요하다. 이는 또한 필연적으로 상체의 발달을 가져온다. 애초부터 킬힐은 웰빙적이지 못하고, 고무신. 당혜와 같은 밑창이 아주 얇고 안 신은 듯한 최소주의적인 신발이 우리의 체형에도 맞는다. .

육식에 긴 다리보다는 채식에 긴 상체가 우리의 미적본능에 적합하다. 그런 면에서 건강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다양한 등산복과 워킹화가 패션 주류화되는 것은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