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경영) 역사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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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역사의 미술관
저 자 : 이주헌
원래부터 예체능에는 아예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관심조차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으면서 캠코더를 사고, 카메라를 사고 하면서 사진에 관심을 두면서 사진책을 보기 시작했다. 좀더 멋있고 기억에 남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언젠가 나도 사진집을 만들어야지’하는 욕심이 생겼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도무지 늘지를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이 크고 나니 사진찍을 일도 줄어들고. 하지만 사진집은 꾸준히 보는 편이다. 도서관에 가면 사진집 서가 옆이 그림책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저 회화집들도 한번쯤은 보아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는 데, 어느 순간엔가 ‘미학’에 대한 책도 읽고 싶어졌다. 도둑질도 알아야 한다고 그림을 보기만하면 이해를 못하니 그림에 들어있는 이야기부터 알고 싶어졌다. 그러고 있는 데 친구가 이 책을 선물했다. 선물을 한 사람이나, 책을 쓴 사람이나 모두 친구이다. 흠, 내 친구가 이렇게 멋있는 책을 썻단말이야! “그림을 보다가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옛 그림이 ‘자연의 소요(逍遙)를 그린 그림이라면, 서양의 옛 그림은 ’인간의 역주(力走)를 그린 그림이라고. 자연의 소요를 그린 그림이란 삼라만상을 유장한 리듬으로 운행하는 자연의 섭리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고, 인간의역주를 그린 그림이란 회로애락의 파도를 타고 투쟁을 벌이는 인간의 열정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우리 옛 그림과 서양 옛 그림은 이렇듯 관심사가 크게 달랐다. 우리 미술이 산수화를 최고의 회화 장르로 발달시키고 서양미술이 역사화를 최고의 회화장르로 발달시킨 데는 이런 차이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동양인들이 자연의 기운에 심취했다면 서양인들은 인간의 드라마에 열광했다.” 나폴레옹하면 왼쪽의 다비드가 그린 그림만 떠오르는 데, 폴 들라로슈의 그림이 더 사실적이라고 한다. 멋진 백마가 아닌 노새를 타고 초라하게 보이는 나폴레옹. 더 실제적으로 그렸지만, 세계를 꿰뚫어보는 직관력과 위대한 전략가의 면모만큼은 다비드의 그림에서 더 찾을 수있다. 사진과 미술의 차이가 이렇구나! 하는 걸 느꼈다. 사진은 우선 카메라라는 도구가 무척 중요하고, 사진의 구성요소를 마음대로 바꾸기가 어렵다. 자연의 풍경에서 파란 하늘에 멋진 구름이 있었으면 해도, 내가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림은 다르다. 똑같은 장면을 보면서 화가가 어떻게 그리는가에 따라서 모양이 아주 달라지고,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알아야 그림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이 책을 선물받고, 실제로 책을 쓴 이주헌을 만나 이 책에 대한 설명을 들은지 얼마되지 않아 ‘중소기업의 해외마케팅’에 관한 원고를 끝냈다. ‘다음 책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하고 고민을 하다가 옛날 동서양의 그림을 모아서 무역에 관한 관점에서 해석을 해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술품에 들어있는 무역’이라는 주제로. 그건 내가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예체능에 대한 열등감을 만회할 수도 있을 것같다는 허염심도 조금은 작동했을 것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쓴다는 호기심도 작동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쓰는 글은 너무 건조하다. 별로 아는 게 없다보니 새로운 분야를 찾기보다는 내가 경험했던 무역이나 경제위주의 글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나도 남들처럼 감성을 느끼는 그런 글을 쓰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와우, 홍재화가 이런 글도 쓸 줄 아네!’라는 놀라움을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역사화는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시대 정신과 사람들의 감성을 반영한다. 그런 시대적 구분을 넘어 큰 들에서 봐도, 대중 일반이 역사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하고 무엇에 공감하는 지 알 수있도록 해준다. 미술가들은 역사학자만큼 엄밀하게 역사를 바로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사건이 역사의 행로에 미친 영향보다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미술가는 그 정서적 반응을 박진감넘치는 시각 언어로 압축해 보여준다. 사실 역사화는 순수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화의 장르적 특질은 역사 기록보다는 서사시에 가깝다”고 한다. 무역에 대한 글이나 책을 쓰다보면 별로 재미가 없다. 일단 무역이라고 하면 ‘무역실무’처럼 실무적인, 매우 현재적인 것이 거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난 나의 인생을 좀 멋있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언젠가 쓰게 될 회고록이 아주 멋있는 서사시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폴레온의 그림처럼 하늘을 향해 박차고 있는 말위에서 멋진 폼을 잡고 있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같은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하여는 무역을 단순한 돈과 물자의 국제적 흐름보다는 훨씬 더 멋있는 무엇으로서 해석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대양을 누비선 무역선, 실크로드를 주름잡던 무역상들, 그리고 그안에서 펼쳐지는 허생원이 만났던 물레방앗간의 낭만등등.
실제로 무역과 역사, 그리고 내가 만만하게 해설할 만한 그런 그림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부족한 나의 미술적 안목은 ‘이주헌’에게 더 배우면 될 것이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가 관장으로 있는 ‘서울미술관’에 가서 내가 찾은 그림과 그에 대하여 쓴 글에 대하여 그에게 감수를 받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같았다. 그런데 서양의 그림은 그런대로 찾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같은 데, 동양의 무역그림은 찾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동양의 그림은 이 책의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의 열정을 그렸다기 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그림과 글들은 현재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하고 맞지가 않는다. 우선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줄 지언정 직접적인 밥벌이에 도움이 될 것같지도 않거니와, 내 글을 주로 읽는 무역을 막 시작하는 사람들이 갖는 ‘어떻게 하면 무역을 좀 더 쉽고 빠르게 알 수있을까?’하는 갈증을 덜어주는 것과는 전혀 방향이 다르다. 그래서 내가 좀 더 여유가 생기면 쓰기로 하였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그림책을 사진 책만큼 자주 보게 될 것같다.
저 자 : 이주헌
원래부터 예체능에는 아예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관심조차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으면서 캠코더를 사고, 카메라를 사고 하면서 사진에 관심을 두면서 사진책을 보기 시작했다. 좀더 멋있고 기억에 남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언젠가 나도 사진집을 만들어야지’하는 욕심이 생겼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도무지 늘지를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이 크고 나니 사진찍을 일도 줄어들고. 하지만 사진집은 꾸준히 보는 편이다. 도서관에 가면 사진집 서가 옆이 그림책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저 회화집들도 한번쯤은 보아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는 데, 어느 순간엔가 ‘미학’에 대한 책도 읽고 싶어졌다. 도둑질도 알아야 한다고 그림을 보기만하면 이해를 못하니 그림에 들어있는 이야기부터 알고 싶어졌다. 그러고 있는 데 친구가 이 책을 선물했다. 선물을 한 사람이나, 책을 쓴 사람이나 모두 친구이다. 흠, 내 친구가 이렇게 멋있는 책을 썻단말이야! “그림을 보다가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옛 그림이 ‘자연의 소요(逍遙)를 그린 그림이라면, 서양의 옛 그림은 ’인간의 역주(力走)를 그린 그림이라고. 자연의 소요를 그린 그림이란 삼라만상을 유장한 리듬으로 운행하는 자연의 섭리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고, 인간의역주를 그린 그림이란 회로애락의 파도를 타고 투쟁을 벌이는 인간의 열정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우리 옛 그림과 서양 옛 그림은 이렇듯 관심사가 크게 달랐다. 우리 미술이 산수화를 최고의 회화 장르로 발달시키고 서양미술이 역사화를 최고의 회화장르로 발달시킨 데는 이런 차이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동양인들이 자연의 기운에 심취했다면 서양인들은 인간의 드라마에 열광했다.” 나폴레옹하면 왼쪽의 다비드가 그린 그림만 떠오르는 데, 폴 들라로슈의 그림이 더 사실적이라고 한다. 멋진 백마가 아닌 노새를 타고 초라하게 보이는 나폴레옹. 더 실제적으로 그렸지만, 세계를 꿰뚫어보는 직관력과 위대한 전략가의 면모만큼은 다비드의 그림에서 더 찾을 수있다. 사진과 미술의 차이가 이렇구나! 하는 걸 느꼈다. 사진은 우선 카메라라는 도구가 무척 중요하고, 사진의 구성요소를 마음대로 바꾸기가 어렵다. 자연의 풍경에서 파란 하늘에 멋진 구름이 있었으면 해도, 내가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림은 다르다. 똑같은 장면을 보면서 화가가 어떻게 그리는가에 따라서 모양이 아주 달라지고,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알아야 그림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이 책을 선물받고, 실제로 책을 쓴 이주헌을 만나 이 책에 대한 설명을 들은지 얼마되지 않아 ‘중소기업의 해외마케팅’에 관한 원고를 끝냈다. ‘다음 책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하고 고민을 하다가 옛날 동서양의 그림을 모아서 무역에 관한 관점에서 해석을 해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술품에 들어있는 무역’이라는 주제로. 그건 내가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예체능에 대한 열등감을 만회할 수도 있을 것같다는 허염심도 조금은 작동했을 것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쓴다는 호기심도 작동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쓰는 글은 너무 건조하다. 별로 아는 게 없다보니 새로운 분야를 찾기보다는 내가 경험했던 무역이나 경제위주의 글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나도 남들처럼 감성을 느끼는 그런 글을 쓰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와우, 홍재화가 이런 글도 쓸 줄 아네!’라는 놀라움을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역사화는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시대 정신과 사람들의 감성을 반영한다. 그런 시대적 구분을 넘어 큰 들에서 봐도, 대중 일반이 역사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하고 무엇에 공감하는 지 알 수있도록 해준다. 미술가들은 역사학자만큼 엄밀하게 역사를 바로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사건이 역사의 행로에 미친 영향보다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미술가는 그 정서적 반응을 박진감넘치는 시각 언어로 압축해 보여준다. 사실 역사화는 순수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화의 장르적 특질은 역사 기록보다는 서사시에 가깝다”고 한다. 무역에 대한 글이나 책을 쓰다보면 별로 재미가 없다. 일단 무역이라고 하면 ‘무역실무’처럼 실무적인, 매우 현재적인 것이 거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난 나의 인생을 좀 멋있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언젠가 쓰게 될 회고록이 아주 멋있는 서사시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폴레온의 그림처럼 하늘을 향해 박차고 있는 말위에서 멋진 폼을 잡고 있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같은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하여는 무역을 단순한 돈과 물자의 국제적 흐름보다는 훨씬 더 멋있는 무엇으로서 해석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대양을 누비선 무역선, 실크로드를 주름잡던 무역상들, 그리고 그안에서 펼쳐지는 허생원이 만났던 물레방앗간의 낭만등등.
실제로 무역과 역사, 그리고 내가 만만하게 해설할 만한 그런 그림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부족한 나의 미술적 안목은 ‘이주헌’에게 더 배우면 될 것이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가 관장으로 있는 ‘서울미술관’에 가서 내가 찾은 그림과 그에 대하여 쓴 글에 대하여 그에게 감수를 받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같았다. 그런데 서양의 그림은 그런대로 찾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같은 데, 동양의 무역그림은 찾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동양의 그림은 이 책의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의 열정을 그렸다기 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그림과 글들은 현재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하고 맞지가 않는다. 우선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줄 지언정 직접적인 밥벌이에 도움이 될 것같지도 않거니와, 내 글을 주로 읽는 무역을 막 시작하는 사람들이 갖는 ‘어떻게 하면 무역을 좀 더 쉽고 빠르게 알 수있을까?’하는 갈증을 덜어주는 것과는 전혀 방향이 다르다. 그래서 내가 좀 더 여유가 생기면 쓰기로 하였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그림책을 사진 책만큼 자주 보게 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