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칼럼] 부부의 세계, 애인 있어요?

김희애와 불륜이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27일 첫 방송을 한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2회 만에 시청률 10퍼센트를 넘겼다. <부부의 세계>는 남편의 불륜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의사 지선우 역(김희애)의 원초적 욕망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심리극이다.

불륜, 물론 의심의 여지없이 반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이다. 하지만 언제랄 것도 없이 인류 아니 인간을 만든 신들조차도 불륜이라는 일탈적 행위가 공공의 담론으로 포섭되어왔다. 그런데 현실은 과연 그럴까? 2018년 영국 BBC가 ‘주요 국가 관용지수’를 조사한 결과 27개국 중 한국은 26위(20%)를 차지했다. 27개국 전체 평균 46%에 한참 못 미치는 점수다. “당신은 사회적 배경, 문화, 사고방식 등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관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가장 낮은 관용지수를 보인 한국 사람들은 왜 불륜에는 높은 관용을 보일까?불륜은 분열되어 작용된다.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또한 남편 헤파이스토스를 속이고 불륜을 저질렀다. 아프로디테는 애인에게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지만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다른 신들을 불러 모아 연인에게 복수를 하고 만다. 이렇듯 신들조차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 불륜인데 지상의 인간이야 어떻겠는가? 베를린 홈볼트대학 교육학과의 레나테 발틴(R.Valtin)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에 거주하는 여성 가운데 1만 5,000명 이상이 유부남을 애인으로 두고 있다고 한다.

불륜을 직접 수면 위로 들춰서 진지하게 다루는 것은 꺼림직하고 비도덕적이며 무엇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65%는 어떤 형식이든 불륜을 극 전개의 주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아름다운 유혹>, <두 번째 프러포즈>, <부모님 전상서>, <티브이소설 그대는 별>, <오! 필승 봉순영>, <단팥빵>, <영웅시대>, <12월의 열대야>, <선택>, <아내의 반란>, <자유부인>, <정사>, <해피엔드>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불륜을 핵심 소재로 다뤘다.
유교문화와 가부장제의 엄숙함이 불륜의 도덕성을 강조했다면 불륜을 다루는 영상 콘텐츠는 감춰진 자아, 은폐된 현실을 폭로하는 기능을 한다. 무엇보다 현실은 불륜에 대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단죄보다는 갈등 속의 현실, 나아가 은근한 선망이 된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성격을 둘러싼 모순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세계적인 호텔 체인 ‘힐튼’가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을 둘러싼 기이한 현상도 인간의 이중적 모순과 동일하다. 가수에서 영화배우, 모델까지 못하는 게 없는 패리스 힐튼은 “전 한 번 입은 옷은 다시 안 입어요.” “친구들 주거나 그냥 버려요”하고 거침없이 말함으로써 여성들의 원성을 사기로 유명하다. 그녀는 이런 저런 남자들과 스캔들을 일으키고 급기야는 섹스 비디오까지 유출되면서, 특히 미국 여성들에게 “돈은 많지만 아무 생각없이 사는 여자”라는 비난을 한 몸에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그녀의 이름을 내건 향수가 출시되었을 때, 미국 여성들이 보인 반응은 달랐다. 향수는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요지경 세상이라구!’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우아하고 도덕적으로 살면서 때론 일탈하고, 때론 야해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다. 우리 안에는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체계들이 있지만 우리 자신이 모순됐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상황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는 평소엔 일탈의 행동에 대해 공포와 거부감을 갖더라도 금요일 밤이 찾아오고 금기가 무너지는 순간이면 공포와 불쾌는 흥분과 쾌락이 되어 버리고, 금기를 피하기는커녕 그 일탈을 과감히 탐닉한다. 용납할 수 없던 것들이 우리를 장악하는 것이다.

한 선승(禪僧)이 이제 곧 사자 밥이 될 상황에 처한다. 끔찍한 죽음을 앞둔 순간 문득 눈을 들어보니 가까운 곳에 활짝 핀 꽃 한 송이가 보인다. 그는 그 아름다움에 경탄한다. 분명 인간은 분열된 존재다. 나는 그것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미 그것을 하고 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가 자신의 환자인 민현서에게 남편의 미행을 부탁하며 나눈 대화에서도 선승의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실망이네요. 선생님같이 성공한 여자도 나 같은 거랑 다를 바 없다는 게.”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