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의 셀프 리더십] 운(運)은 기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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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룬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꿈을 못 이룬 것이 아니라 아예 꿈이 없었던 것을 아닐까?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프랑스에서 65세 이상 노인들은 대상으로 한 조사의 질문이다. 조사 내용을 보면 72%의 노인들은 “젊었을 때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 답했다.
꿈의 사전적 정의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말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성을 대신한다고 할 수 있다.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실현 가능한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생각을 붙잡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어릴 적엔 꿈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꿈이 뭐냐고 묻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 질문을 잃어버린 것인지 회피하는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의도적으로 꿈 질문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철 없던 어린 시절 상상했던 것들이 나이를 더하면서 부질없는 상상이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 탓일까?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자신의 꿈이 한 낮 부질없는 망상이었다고 인정하는 때문일까?運(옮길 운)
이 한자는 세 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車(수레차)는 사람이 타거나 사물을 실을 수 있는 도구다. 그 위에 冖 (덮을 멱)이라는 뚜껑이 있고,수레 밑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辶(쉬엄쉬엄 갈 착)이 더해졌다.필자는 수레(車)를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꿈이나 목표를 담은 도구로 해석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 꿈의 실체가 분명해야 한다. 꿈이나 목표의 크기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소소한 꿈도 꿈이고 거대한 목표도 목표다. 그렇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의 크기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지 남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어서 정하는 것은 아니다.그렇다면 답이 나온다. 수레(車)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문제는 수레에 꿈을 실었다고 해도 지금 당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수레를 덮고 있는 뚜껑(冖 덮을 멱)이 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뚜껑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마찬 가지다. 왜냐하면 아직 맞추지 못한 퍼즐이 남았기 때문이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그 꿈을 현실화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꿈은 망상으로 끝난다. 그래서 뚜껑이 덮여 있는 수레 밑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辶(쉬엄쉬엄 갈 착)이 붙은 것이다.
이것은 노력의 정도, 간절함의 크기를 뜻한다고 해석할 생각이다.그렇다면 운(運)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꿈을 수레(車)에 실은 채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힘이 들어 쉬기도 하고, 힘이 보충되면 가던 길을 재촉하는 일이 반복된다. 잠시 머물 순 있지만 결코 멈춰 서는 법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강한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은 수레를 덮고 있던 뚜껑을 날려버린다.하늘이 열린 탓일까, 수레 속에 담겨 때를 기다리던 꿈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운(運)이다. 드디어 운명의 날, 내 인생의 꽃이 피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좋다. 그때가 언제 일지 아는 사람은 없지만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인 것은 분명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적지 않은 사람들은 뚜껑(冖)이 날아가도 수레 속에서 튀어나올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꿈(희망, 목표…)을 수레(車) 속에 실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운(運)에 기대지 않고,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프랑스에서 65세 이상 노인들은 대상으로 한 조사의 질문이다. 조사 내용을 보면 72%의 노인들은 “젊었을 때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 답했다.
꿈의 사전적 정의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말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성을 대신한다고 할 수 있다.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실현 가능한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생각을 붙잡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어릴 적엔 꿈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꿈이 뭐냐고 묻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 질문을 잃어버린 것인지 회피하는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의도적으로 꿈 질문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철 없던 어린 시절 상상했던 것들이 나이를 더하면서 부질없는 상상이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 탓일까?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자신의 꿈이 한 낮 부질없는 망상이었다고 인정하는 때문일까?運(옮길 운)
이 한자는 세 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車(수레차)는 사람이 타거나 사물을 실을 수 있는 도구다. 그 위에 冖 (덮을 멱)이라는 뚜껑이 있고,수레 밑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辶(쉬엄쉬엄 갈 착)이 더해졌다.필자는 수레(車)를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꿈이나 목표를 담은 도구로 해석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 꿈의 실체가 분명해야 한다. 꿈이나 목표의 크기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소소한 꿈도 꿈이고 거대한 목표도 목표다. 그렇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의 크기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지 남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어서 정하는 것은 아니다.그렇다면 답이 나온다. 수레(車)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문제는 수레에 꿈을 실었다고 해도 지금 당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수레를 덮고 있는 뚜껑(冖 덮을 멱)이 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뚜껑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마찬 가지다. 왜냐하면 아직 맞추지 못한 퍼즐이 남았기 때문이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그 꿈을 현실화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꿈은 망상으로 끝난다. 그래서 뚜껑이 덮여 있는 수레 밑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辶(쉬엄쉬엄 갈 착)이 붙은 것이다.
이것은 노력의 정도, 간절함의 크기를 뜻한다고 해석할 생각이다.그렇다면 운(運)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꿈을 수레(車)에 실은 채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힘이 들어 쉬기도 하고, 힘이 보충되면 가던 길을 재촉하는 일이 반복된다. 잠시 머물 순 있지만 결코 멈춰 서는 법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강한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은 수레를 덮고 있던 뚜껑을 날려버린다.하늘이 열린 탓일까, 수레 속에 담겨 때를 기다리던 꿈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운(運)이다. 드디어 운명의 날, 내 인생의 꽃이 피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좋다. 그때가 언제 일지 아는 사람은 없지만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인 것은 분명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적지 않은 사람들은 뚜껑(冖)이 날아가도 수레 속에서 튀어나올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꿈(희망, 목표…)을 수레(車) 속에 실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운(運)에 기대지 않고,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