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근영의 투자현인 토파보기] 찰리멍거의 ‘구두단추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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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투자회사 버크셔 헤서웨이의 부회장 철리 멍거는 워런버핏의 오른팔이자 세계적인 투자 고수다.
그는 스스로 과시하는 태도를 가리켜 ‘구두단추 콤플렉스’라는 비유로 표현하는데, 어떤 사람이 구두단추 시장을 석권하자 마치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안다는 듯 떠벌렸다는 얘기다.그러면서 구두단추 시장은 구두나 자동차, 의류 등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시장인데, 마치 그 조그마한 시장을 제패했다고 제왕이 된 듯 착각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가소롭기 짝이 없고, 그런데도 본인만 그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파트너 워런 버핏은 사람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구두단추 콤플렉스에 빠지지 않도록 늘 조심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겸손하지 못하거나 권위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며, 그런 태도는 우스꽝스러울 뿐 아니라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한다.그리고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에는 마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회사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착각하고 으스대는 모습과도 동일하다고 꼬집는다.
– ‘투자는 워런버핏 처럼’ / 구와바라데루야 –좋은 이야기다.그러나 필자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따르면 우주에는 지구상의 모든 모래알을 다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행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저 넒은 수평선과 바다, 그리고 저 높은 히말라야 고봉이 인류에게는 정복하기 힘든 자연의 일부라 하지만 우주에서 바라볼 때는 그저 작디 작은 반딧불보다 더 하찮은 티끌만한 존재도 안 된다.따라서 이 작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위대한 현인이라도 우리가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발 밑 개미떼 속 골목대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의 세계에서, 한 분야에서 최정상에 오르거나 최고가 된 사람은 존경할만하다.
그리고 한 분야에서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은 내공과 품격이 수준에 이르러 자연스레 인품에 스며들어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게 된다.
우리는 1850년 너새니얼 호손이 지은 단편소설 ‘큰바위 얼굴’을 기억한다.
주인공 어니스트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동경하는 이야기인데, 그의 작품에서 많이 보여지는 분위기답게 교훈적인 내용을 띤 소설이며, 막대한 부나 사회적 지위보다 지속적인 자기 성찰이 인간의 위대한 가치를 드높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어느 한 분야의 최고 수준에 오른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성찰을 이룬 사람이며 성공한 분야가 다르더라도 나름 높은 내공과 품격을 갖고 있다.
바둑 최 고수에 오른 사람이나 한 분야의 운동으로 진정한 의미의 세계 챔피언에 올라 만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치고 자기 자신을 과신하는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따라서 찰리멍거의 이야기 ‘구두단추 콤플렉스’에 나오는 작은 성취를 이루고 스스로를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과신하는 사람은 아마도 해당 분야를 진실로 석권하지 못한 덜 익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진정으로 한 분야에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은 정상이라는 위치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진정한 챔피언은 결코 자기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다.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현인이란 그가 속한 분야의 높낮이나 시장 규모로 현인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신근영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그는 스스로 과시하는 태도를 가리켜 ‘구두단추 콤플렉스’라는 비유로 표현하는데, 어떤 사람이 구두단추 시장을 석권하자 마치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안다는 듯 떠벌렸다는 얘기다.그러면서 구두단추 시장은 구두나 자동차, 의류 등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시장인데, 마치 그 조그마한 시장을 제패했다고 제왕이 된 듯 착각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가소롭기 짝이 없고, 그런데도 본인만 그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파트너 워런 버핏은 사람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구두단추 콤플렉스에 빠지지 않도록 늘 조심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겸손하지 못하거나 권위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며, 그런 태도는 우스꽝스러울 뿐 아니라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한다.그리고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에는 마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회사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착각하고 으스대는 모습과도 동일하다고 꼬집는다.
– ‘투자는 워런버핏 처럼’ / 구와바라데루야 –좋은 이야기다.그러나 필자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따르면 우주에는 지구상의 모든 모래알을 다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행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저 넒은 수평선과 바다, 그리고 저 높은 히말라야 고봉이 인류에게는 정복하기 힘든 자연의 일부라 하지만 우주에서 바라볼 때는 그저 작디 작은 반딧불보다 더 하찮은 티끌만한 존재도 안 된다.따라서 이 작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위대한 현인이라도 우리가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발 밑 개미떼 속 골목대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의 세계에서, 한 분야에서 최정상에 오르거나 최고가 된 사람은 존경할만하다.
그리고 한 분야에서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은 내공과 품격이 수준에 이르러 자연스레 인품에 스며들어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게 된다.
우리는 1850년 너새니얼 호손이 지은 단편소설 ‘큰바위 얼굴’을 기억한다.
주인공 어니스트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동경하는 이야기인데, 그의 작품에서 많이 보여지는 분위기답게 교훈적인 내용을 띤 소설이며, 막대한 부나 사회적 지위보다 지속적인 자기 성찰이 인간의 위대한 가치를 드높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어느 한 분야의 최고 수준에 오른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성찰을 이룬 사람이며 성공한 분야가 다르더라도 나름 높은 내공과 품격을 갖고 있다.
바둑 최 고수에 오른 사람이나 한 분야의 운동으로 진정한 의미의 세계 챔피언에 올라 만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치고 자기 자신을 과신하는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따라서 찰리멍거의 이야기 ‘구두단추 콤플렉스’에 나오는 작은 성취를 이루고 스스로를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과신하는 사람은 아마도 해당 분야를 진실로 석권하지 못한 덜 익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진정으로 한 분야에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은 정상이라는 위치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진정한 챔피언은 결코 자기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다.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현인이란 그가 속한 분야의 높낮이나 시장 규모로 현인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신근영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