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은발이 흑발에게, 유안진
입력
수정
은발이 흑발에게
유안진어제는
나 그대와 같았으나
내일은
그대가 나와 같으리라.
[태헌의 한역]
銀髮向於黑髮(은발향어흑발)
昨日余如汝(작일여여여)
明日汝如余(명일여여여)[주석]
* 銀髮(은발) : 은발, 백발(白髮), 흰머리. / 向於(향어) : ~에게. / 黑髮(흑발) : 흑발, 검은 머리.
昨日(작일) : 어제. / 余如汝(여여여) : 나는 그대와 같다.
明日(명일) : 내일. / 汝如余(여여여) : 그대는 나와 같다.
[직역]
은발이 흑발에게
어제는 내가 그대와 같았으나
내일은 그대가 나와 같으리라.
[한역 노트]
이 시는 역자가 여태 한역한 시 가운데 가장 짧은 작품이다. 정확하게는 한역시 본문에 사용된 한자(漢字) 수가 가장 적은 시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오언고시(五言古詩) 2구로 재구성한 한역시에서 중복 사용된 글자를 제외하면 단 6자로 이루어진 시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에는 시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려고 하는 인간 세상의 철리(哲理) 하나가 오롯이 구현(具現)되어 있다. 그러니 어찌 시가 꼭 길어야만 하겠는가?
시인은 백발에 대한 생각이나 감회를 직접 언급하는 대신에, 색깔이 다른 머리카락끼리의 대화라는-기실은 일방적인 ‘들려줌’이지만- 색다른 설정을 통하여 백발의 비애를, 정확하게는 그런 백발을 머리에 이고 사는 이들의 비애를 에둘러 노래하였다. ‘양자강(揚子江)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는 말과 비슷하게, 어떤 흑발이든 결국 세월의 물결에 밀려 백발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불가역(不可逆)의 섭리를 담담하게 얘기한 것이다.
나이는 누구나 한 해에 한 살씩 더하는 것이지만, 백발이 성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 현상을 두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곧잘 DNA 문제나 영양 문제, 모발 관리 문제 등을 거론한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뿐만이 아니다. 역자는 오래전부터 늙음의 표징(標徵)인 이 백발을 재촉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여러 요인들 외에도 그 사람이 처한 주변의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 어떤 일로 야기된 몸 고생과 마음 고생은 그 궤적(軌跡)을 철저히 남겨, 주름살을 더하거나 머리 빛을 바꾸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풍상(風霜)이 긋는 나이테는 사람을 가려 찾아드는 불청객이지만, 적어도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신(神)의 룰(Rule)이다.
세월이 갈 때마다 백발이 더해지는 속도만큼 허전해져가는 마음의 들을 그나마 빛바래지 않게 하는 것은 옛 추억이 아닐까 싶다. 그 옛 추억 고요한 자리에서 역자가 불현듯 아득한 옛사랑을 그려보다가, 그 옛사랑 또한 신의 룰을 피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여겨보며 언젠가 지어두었던 어눌한 시 한 수를, 여기 말미에 붙여둔다. 이 또한 백발을 더하는 하나의 업(業)이 되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음에도……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지금 거울을 보고 있다.
세월이 짓고 있는 슬픈 시를
거울에 띄워두고 낭독하는 것이다.
거울의 정직이 싫어 던져버리거나
시가 되고 싶지 않다며 아무리 고함친들
펜을 멈추지 않을 비정한 시인……
그대에겐 그가 더디 찾아가길 빌어본다.
* 이 한역 노트의 일부분은 역자의 저서 ≪강서시파≫에서 인용하였다.
2020. 6. 16.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유안진어제는
나 그대와 같았으나
내일은
그대가 나와 같으리라.
[태헌의 한역]
銀髮向於黑髮(은발향어흑발)
昨日余如汝(작일여여여)
明日汝如余(명일여여여)[주석]
* 銀髮(은발) : 은발, 백발(白髮), 흰머리. / 向於(향어) : ~에게. / 黑髮(흑발) : 흑발, 검은 머리.
昨日(작일) : 어제. / 余如汝(여여여) : 나는 그대와 같다.
明日(명일) : 내일. / 汝如余(여여여) : 그대는 나와 같다.
[직역]
은발이 흑발에게
어제는 내가 그대와 같았으나
내일은 그대가 나와 같으리라.
[한역 노트]
이 시는 역자가 여태 한역한 시 가운데 가장 짧은 작품이다. 정확하게는 한역시 본문에 사용된 한자(漢字) 수가 가장 적은 시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오언고시(五言古詩) 2구로 재구성한 한역시에서 중복 사용된 글자를 제외하면 단 6자로 이루어진 시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에는 시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려고 하는 인간 세상의 철리(哲理) 하나가 오롯이 구현(具現)되어 있다. 그러니 어찌 시가 꼭 길어야만 하겠는가?
시인은 백발에 대한 생각이나 감회를 직접 언급하는 대신에, 색깔이 다른 머리카락끼리의 대화라는-기실은 일방적인 ‘들려줌’이지만- 색다른 설정을 통하여 백발의 비애를, 정확하게는 그런 백발을 머리에 이고 사는 이들의 비애를 에둘러 노래하였다. ‘양자강(揚子江)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는 말과 비슷하게, 어떤 흑발이든 결국 세월의 물결에 밀려 백발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불가역(不可逆)의 섭리를 담담하게 얘기한 것이다.
나이는 누구나 한 해에 한 살씩 더하는 것이지만, 백발이 성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 현상을 두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곧잘 DNA 문제나 영양 문제, 모발 관리 문제 등을 거론한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뿐만이 아니다. 역자는 오래전부터 늙음의 표징(標徵)인 이 백발을 재촉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여러 요인들 외에도 그 사람이 처한 주변의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 어떤 일로 야기된 몸 고생과 마음 고생은 그 궤적(軌跡)을 철저히 남겨, 주름살을 더하거나 머리 빛을 바꾸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풍상(風霜)이 긋는 나이테는 사람을 가려 찾아드는 불청객이지만, 적어도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신(神)의 룰(Rule)이다.
세월이 갈 때마다 백발이 더해지는 속도만큼 허전해져가는 마음의 들을 그나마 빛바래지 않게 하는 것은 옛 추억이 아닐까 싶다. 그 옛 추억 고요한 자리에서 역자가 불현듯 아득한 옛사랑을 그려보다가, 그 옛사랑 또한 신의 룰을 피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여겨보며 언젠가 지어두었던 어눌한 시 한 수를, 여기 말미에 붙여둔다. 이 또한 백발을 더하는 하나의 업(業)이 되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음에도……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지금 거울을 보고 있다.
세월이 짓고 있는 슬픈 시를
거울에 띄워두고 낭독하는 것이다.
거울의 정직이 싫어 던져버리거나
시가 되고 싶지 않다며 아무리 고함친들
펜을 멈추지 않을 비정한 시인……
그대에겐 그가 더디 찾아가길 빌어본다.
* 이 한역 노트의 일부분은 역자의 저서 ≪강서시파≫에서 인용하였다.
2020. 6. 16.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