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코스모스, 김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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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김진학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매
간밤의 바람에
행여 허리라도 다쳤나
네가 있는 강둑을
한걸음에 왔는데
거울 같은 하늘에
하늘 닮은 코스모스
내게 하는 인사말나 괜찮아 가을이잖아
[태헌의 한역]
秋英(추영)
吹則恐飛纖弱身(취즉공비섬약신)
昨夜有風腰或辛(작야유풍요혹신)
一路直到汝居岸(일로직도여거안)
旻如鏡子汝肖旻(민여경자여초민)
却投候語向我云(각투후어향아운)
吾人尙可今秋辰(오인상가금추신)[주석]
* 秋英(추영) : 코스모스.
吹則恐飛(취즉공비) : 불면 아마 날아갈 듯하다. / 纖弱(섬약) : 가녀리다. / 身(신) : 몸, 몸매.
昨夜(작야) : 어젯밤. / 有風(유풍) : 바람이 있다, 바람이 불다. / 腰或辛(요혹신) : 허리가 혹시 아프다, 허리를 혹시 다치다.
一路(일로) : 한길, 한달음. / 直到(직도) : 바로 ~에 이르다, 바로 ~에 오다. / 汝居岸(여거안) : 네가 사는 언덕.
旻(민) : 하늘, 가을 하늘. / 如(여) : ~과 같다. / 鏡子(경자) : 거울. / 汝肖旻(여초민) : 너는 하늘을 닮았다.
却(각) : 문득, 도리어.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投候語(투후어) : 인사말을 던지다, 인사말을 하다. / 向我云(향아운) : 나에게 말하다.
吾人(오인) : 나. / 尙可(상가) : (오히려) 괜찮다. / 今秋辰(금추신) : 지금은 가을(날)이다.
[한역의 직역]
코스모스
불면 날아갈 듯한 가녀린 몸
간밤에 바람 불어 허리 혹시 다쳤나
네가 사는 강둑을 한걸음에 왔더니
하늘은 거울 같은데 하늘 닮은 너
도리어 인사말 던져 내게 말했지
나는 괜찮아 지금 가을이잖아
[한역 노트]
역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맘때쯤이면 차가 지나갈 때마다 뽀얗게 흙먼지가 날리는 신작로 가에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었더랬다. 꽃을 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장난질할 재료쯤으로 보는 시골 아이들에게는 코스모스가 좋은 놀잇감이 되기도 하였다. 꽃이 피기 전의 어린 꽃망울은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서 손가락으로 눌러 터뜨리면 제법 많은 꽃물이 터져 나온다. 이것을 언제부턴가 알아 꽃망울 몇 개를 몰래 따서 호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어쩌다 고개 돌린 친구 녀석의 목덜미에 터뜨리면, 당한 친구 역시 뒤질세라 씩씩대며 꽃망울을 잔뜩 따다가 복수한다며 깡충대고는 했던 까마득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 새삼스럽다.
꽃을 꽃으로 보는 시인들이 코스모스를 가녀린 여성에 곧잘 비유하는 까닭은,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휘청거리는 그 가느다란 꽃 대궁 때문일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이 명시적으로 코스모스를 여성에 비유한 것은 아니지만, ‘불면 날아갈 듯’한 ‘가녀린 몸매’를 얘기하였으니 여성에 비유한 거나 진배없다. 코스모스는 보통 군락을 이루어 자라기 때문에 바람이 심하면 꺾어지기 보다는 누워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드물게 삼[麻] 대궁처럼 꺾어지기도 한다. 시적 화자가 강둑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이유는 그 ‘가녀린 여인’이 어젯밤 바람에 다치지는 않았나 하고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코스모스는 사랑하는 여인의 투영체(投影體)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럴 경우 ‘바람’은 당연히 험한 세파나 시련을 비유하는 말이 된다.
다행히 그 ‘가녀린 여인’은 다치지 않았고, 바람이 지나간 하늘은 가을이라 맑아 거울과 같다. 그 거울과 같은 하늘 아래에 바람 따라 하늘거리는 ‘가녀린 여인’, 코스모스가 있다. ‘하늘 닮은 코스모스’는 꽃의 빛깔이 아니라 그 청초함이 하늘의 이미지를 닮았다는 뜻일 게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 “나 괜찮아 가을이잖아”는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라고 한 나태주 시인의 시구에 대한 답인 듯도 하여 재미있다. 어느 시가 먼저인지 그 선후도 따져보지 않고 역자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두 시를 연결 짓는 것이, 두 시인 선생님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누를 끼치는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가을은, 시 속의 코스모스처럼 아파하지 않음직한 계절이다. 계절이 더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을을 보고도 저처럼 아름답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시늉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 그런 사람에게는 아는 척도 하지 말자. 우리가 자연에서 배울 수 없다면, 교실에서 아무리 많은 걸 머릿속에 집어넣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저 꽃이 꽃답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이 꽃다울 때 가장 아름답듯, 사람 또한 사람다울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겠는가!
4연 10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6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이 한역시는 제1구와 짝수 구 끝에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身(신)’·‘辛(신)’·‘旻(민)’·‘辰(신)’이다.
2020. 9. 22.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김진학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매
간밤의 바람에
행여 허리라도 다쳤나
네가 있는 강둑을
한걸음에 왔는데
거울 같은 하늘에
하늘 닮은 코스모스
내게 하는 인사말나 괜찮아 가을이잖아
[태헌의 한역]
秋英(추영)
吹則恐飛纖弱身(취즉공비섬약신)
昨夜有風腰或辛(작야유풍요혹신)
一路直到汝居岸(일로직도여거안)
旻如鏡子汝肖旻(민여경자여초민)
却投候語向我云(각투후어향아운)
吾人尙可今秋辰(오인상가금추신)[주석]
* 秋英(추영) : 코스모스.
吹則恐飛(취즉공비) : 불면 아마 날아갈 듯하다. / 纖弱(섬약) : 가녀리다. / 身(신) : 몸, 몸매.
昨夜(작야) : 어젯밤. / 有風(유풍) : 바람이 있다, 바람이 불다. / 腰或辛(요혹신) : 허리가 혹시 아프다, 허리를 혹시 다치다.
一路(일로) : 한길, 한달음. / 直到(직도) : 바로 ~에 이르다, 바로 ~에 오다. / 汝居岸(여거안) : 네가 사는 언덕.
旻(민) : 하늘, 가을 하늘. / 如(여) : ~과 같다. / 鏡子(경자) : 거울. / 汝肖旻(여초민) : 너는 하늘을 닮았다.
却(각) : 문득, 도리어.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投候語(투후어) : 인사말을 던지다, 인사말을 하다. / 向我云(향아운) : 나에게 말하다.
吾人(오인) : 나. / 尙可(상가) : (오히려) 괜찮다. / 今秋辰(금추신) : 지금은 가을(날)이다.
[한역의 직역]
코스모스
불면 날아갈 듯한 가녀린 몸
간밤에 바람 불어 허리 혹시 다쳤나
네가 사는 강둑을 한걸음에 왔더니
하늘은 거울 같은데 하늘 닮은 너
도리어 인사말 던져 내게 말했지
나는 괜찮아 지금 가을이잖아
[한역 노트]
역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맘때쯤이면 차가 지나갈 때마다 뽀얗게 흙먼지가 날리는 신작로 가에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었더랬다. 꽃을 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장난질할 재료쯤으로 보는 시골 아이들에게는 코스모스가 좋은 놀잇감이 되기도 하였다. 꽃이 피기 전의 어린 꽃망울은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서 손가락으로 눌러 터뜨리면 제법 많은 꽃물이 터져 나온다. 이것을 언제부턴가 알아 꽃망울 몇 개를 몰래 따서 호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어쩌다 고개 돌린 친구 녀석의 목덜미에 터뜨리면, 당한 친구 역시 뒤질세라 씩씩대며 꽃망울을 잔뜩 따다가 복수한다며 깡충대고는 했던 까마득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 새삼스럽다.
꽃을 꽃으로 보는 시인들이 코스모스를 가녀린 여성에 곧잘 비유하는 까닭은,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휘청거리는 그 가느다란 꽃 대궁 때문일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이 명시적으로 코스모스를 여성에 비유한 것은 아니지만, ‘불면 날아갈 듯’한 ‘가녀린 몸매’를 얘기하였으니 여성에 비유한 거나 진배없다. 코스모스는 보통 군락을 이루어 자라기 때문에 바람이 심하면 꺾어지기 보다는 누워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드물게 삼[麻] 대궁처럼 꺾어지기도 한다. 시적 화자가 강둑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이유는 그 ‘가녀린 여인’이 어젯밤 바람에 다치지는 않았나 하고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코스모스는 사랑하는 여인의 투영체(投影體)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럴 경우 ‘바람’은 당연히 험한 세파나 시련을 비유하는 말이 된다.
다행히 그 ‘가녀린 여인’은 다치지 않았고, 바람이 지나간 하늘은 가을이라 맑아 거울과 같다. 그 거울과 같은 하늘 아래에 바람 따라 하늘거리는 ‘가녀린 여인’, 코스모스가 있다. ‘하늘 닮은 코스모스’는 꽃의 빛깔이 아니라 그 청초함이 하늘의 이미지를 닮았다는 뜻일 게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 “나 괜찮아 가을이잖아”는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라고 한 나태주 시인의 시구에 대한 답인 듯도 하여 재미있다. 어느 시가 먼저인지 그 선후도 따져보지 않고 역자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두 시를 연결 짓는 것이, 두 시인 선생님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누를 끼치는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가을은, 시 속의 코스모스처럼 아파하지 않음직한 계절이다. 계절이 더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을을 보고도 저처럼 아름답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시늉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 그런 사람에게는 아는 척도 하지 말자. 우리가 자연에서 배울 수 없다면, 교실에서 아무리 많은 걸 머릿속에 집어넣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저 꽃이 꽃답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이 꽃다울 때 가장 아름답듯, 사람 또한 사람다울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겠는가!
4연 10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6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이 한역시는 제1구와 짝수 구 끝에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身(신)’·‘辛(신)’·‘旻(민)’·‘辰(신)’이다.
2020. 9. 22.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