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화의 걷기인문학] 걷기의 재해석(6) - 고독을 즐기는 혼자걷기

고독을 즐기는 혼자 걷기

혼자 마시는 술, 혼자 먹는 밥, 혼자 보는 영화, 혼자 사는 비혼 그리고 혼자 걷는 여행. 요즘 사람들은 본의든 아니든 간에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혼자 뭔가를 하는 게 많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 혼자 할 수 있는 ‘꺼리’가 많아져서 일하기도, 놀기로 여럿이 하기 보다는 혼자하기를 더 즐겨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단체로 할 수 있는 행위들을 할 만큼 해보았기에 이제는 단체보다는 개인이 홀로 하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기’보다는 아예 적극적으로 군중을 벗어나 ‘홀로 있음’을 찾는다. 그래서 ‘고독 즐기기’가 걷기의 한 방편이 되었다.
1. 혼자 걷기의 편리함

무언가를 혼자 하기 장점은 시간, 속도, 장소를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쁜 현대 시대에 누군가와 약속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서울에 친한 친구가 많지만 정작 만나게 되는 경우는 대구에 있는 친구가 올라올 때, 또는 캐나다에 있는 친구가 한국을 방문할 때이다. 다 가까운 서울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다른 먹고 사는 일에 치이다 보니 정작 친구들을 아무 목적 없이 그냥 만나는 일이 드물다. 둘이 만나려고 해도 적어도 1주전에는 해야 하고, 서너 명이 만나려면 한 달 전에는 서로의 일정을 맞추어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혼자 산을 가거나 둘레길 을 갈 때는 나만 시간이 되면 된다. 가고 싶을 때, 시간이 날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다. 산이 내 체력이 부담되지 않는 서울 청계산이어도 되고, 좀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으며 1박2일로 설악산을 가도 된다. 대청봉을 당일치기로 가도 되고 속리산을 2박3일로 근처에서 민박하며 천천히 즐겨도 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 일정에 맞추어 가서 빨리 걸을 수도, 길가의 들풀과 쭈그려 앉아 대화하다가 갈 수도 있다.

2. 군중사회 벗어나기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안전과 성공을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디에 속해 있는가?, 누구와 만나는가?’를 중요시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는가?’를 중요시 여긴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우리가 인식은 못하지만 우리는 세상이 설정한 틀, 자신이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의 틀에 길들여지고 있다. 집단의 도덕, 윤리, 종교교리, 인습, 개념은 우리가 늘 입는 옷처럼 편하게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 심지어는 먹고 자고 놀고 하는 행동도 그 틀 안에서 움직인다. 이 틀에서 벗어나려면 집단의 사정없는 비난과 탄압이 가해진다. 그래서 현대인은 자유인인 것 같지만,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의 창의성도 제한된다. 그런데 혼자 걷는 것은 이런 비난을 피하면서 오롯이 잠시나마 개인의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집단 속에서의 무기력한 내가 아닌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남들과 함께 하면서 안전함을 느꼈다면, 남들과 떨어져 있으면서, 길을 걸으면서 나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또한 날로 늘어나는 사회적 고통(social suffering)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홀로 걷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조용한 숲길의 새소리 들으며 걷는 것도 좋고, 복잡한 종로거리를 거닐며 마주 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어디든 걸으며 나만의 생각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것도 혼자 걷기의 즐거움이다. 혼자일 때, 내가 어디에 속해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사람들이 자유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고독을 즐기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고, 가장 나답게 행동할 수 있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한다. 다른 사람을 의식해 가식적인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3. 나를 아는 시간

산을 가거나, 커피숍에 가거나 우리는 늘 혼자 걷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렇게 혼자 걸을 때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기분에 맞추지 않아도 되고, 동행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지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되고, 동행의 말에 맞장구치지 않아도 된다. 걸으며 내 생각에 내가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렇게 걷다보면 내 속에서 들여오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게 된다. 고독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걷는 것도 좋지만, 혼자 사색을 즐기며 걷는 것도 좋다. 자신 속에 깊이 빠져들어 가며 혼자서 걷는 일이야 말로 ‘고독 즐기기’의 진수라고 하겠다. 혼자서 걷다 보다 무의식적으로 걷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되새기면서 걷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혼자 걷는 것은 걷는 환경 속에 있지만, 그 곳이 종로통이던, 수락산이던, 충주호 주변이던 간에 오로지 온전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집중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로 시작해서 나는 누군가로 귀착되는 물음 속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풀리지 않는 대답을 찾는 시간이다. 니체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사유하기 위하여 홀로 걸었던 것이 그냥 이유 없이 한 일은 아니다. 소설 ‘대지’의 작가인 펄 벅 여사는 자신을 찾기 위하여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신 속으로 자주 들어갔다.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곳은 말라붙은 당신의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다.”4. 위로받기

우에니시 아키라의 ‘혼자가 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에서 고독을 통해서 우리는 위로 받는다고 했다. “왜 우리는 안 좋은 일로 인해 기분이 가라앉으면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요? 바로 혼자일 때의 ‘위로 효과’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내면은 본능적으로 고독이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기분이 한없이 바닥을 칠 때 외부의 도움을 얻으려 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때로는 고독을 ‘마음의 위안’을 얻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요즘 ‘혼자 있기’ 또는 ‘혼자 걷기’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온다. 그 책의 저자들은 상당수가 현실에 치이고 도피성 또는 위안을 찾기 위하여 홀로 걷는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이처럼 걷기는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다. 다비드 드 브로통은 그의 책 ‘걷기예찬’에서 걷기는 ‘수많은 발걸음들에 점철되어 있는 고통은 세계와의 느린 화해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걸으면서 삶을 사는 즐거움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제자리를 찾게 함으로서 인간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는 과잉의 시대이다. 먹는 것은 지나쳐서 비만이 문제가 되고, 사회적 관계가 지나쳐서 자기 생각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런 지나침에 지쳐서 ‘슬로우푸드’, ‘제로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홀로 걷기도 ‘슬로우 라이프’의 한 방법이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