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꿈과 상처,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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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상처
김승희나대로 살고 싶다
나대로 살고 싶다
어린 시절 그것은 꿈이었는데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드니 그것은 절망이구나
[태헌의 한역]
希望與傷處(희망여상처)我願行我素(아원행아소)
我願行我素(아원행아소)
少小彼卽是希望(소소피즉시희망)
無奈行我素(무내행아소)
無奈行我素(무내행아소)
老大彼卽是絶望(노대피즉시절망)
[주석]
* 希望(희망) : 희망, 꿈. / 與(여) : 접속사. ~와, ~과. / 傷處(상처) : 상처.
我願(아원) : 나는 ~을 원한다, 나는 ~을 하고 싶다. / 行我素(행아소) : 남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평소(平素)의 자기 스타일에 따라 <내가>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성어(成語) ‘我行我素’는 만청(晩淸) 시기의 이보가(李寶嘉)가 지은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라는 소설에서 유래한 말이다.
少小(소소) : 어리다, 젊다. 나이가 어리고[少] 몸집이 작다[小]. / 彼卽(피즉) : 그것은 곧. / 是(시) : ~이다.
無奈(무내) : ~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을 할 수밖에 없다, 부득이하다.
老大(노대) : 나이가 들다, 늙다. 나이가 많고[老] 몸집이 크다[大]. / 絶望(절망) : 절망. 희망이 없음.
[한역의 직역]
꿈과 상처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어려서는 그것이 꿈이었는데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들자 그것은 절망이구나
[한역 노트]
이 시는 나대로 사는 것이 꿈이었다가 나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절망이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한 때의 꿈이 결국 절망이 되고 만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그렇지가 않다. 어린 시절에 꿈꾼 ‘나대로’가 내가 원하는 대로라는 의미였다면, 성년이 된 뒤의 ‘나대로’는 내가 사는 틀 안에서라는 뜻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시인의 관점을 따르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꿈’이 되고, 내가 사는 틀 안에서 사는 것은 ‘절망’이 된다.
꿈과 절망이 키워드인 이 시의 제목이 “꿈과 절망”이 아닌 “꿈과 상처”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자가 보기에는, 절망을 느끼는 것이 결국 상처가 되는 것으로 시인이 이해했기 때문일 듯하다. ‘지옥의 안개’에 비유되기도 하는 이 절망은, 누군가의 앞길을 암담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또 시인이 얘기한 꿈은 달리 희망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 시는 결국 꿈 혹은 희망과 절망을 담론(談論)하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나대로 살고 싶다는 것은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원하는 삶을 멋있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한 때 유행했던 말인 ‘폼생폼사’ 역시 이 테두리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이를 더해갈수록 역동(力動)보다는 안정(安定)을 희구하기 때문에, 꿈은 현실이라는 지평(地平)에 점점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은 있음으로 해서 그만큼 가치가 있다. 꿈은 삶의 탄성체이고, 꿈이 없는 삶만큼 고독한 삶은 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금 나의 길을 그대로 가는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므로, 더 이상의 변화나 도전이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시인은 이 꿈이 없는 삶을 절망이라고 하였다. 절망은 희망이 끊어진 상태이다. 그 끊어진 희망을 잇거나 새로운 희망을 심는 일이 외롭고 힘들 수는 있어도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인은 또 다른 시(詩) <희망이 외롭다>에서 “희망이란 말이 세계의 폐허가 완성되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하였다. 간단히 말해 희망이 있으면 폐허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슴속에는 절망으로 인한, 폐허와 같은 상처 하나 쯤은 묻어놓고 산다. 그러므로 그런 상처가 있다 해서 우리가 꿈마저 내려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꿈이 없다면 이제 만들어가야만 한다. 가슴에 꿈이 없다는 것보다 더 큰 상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꿈이 너무 뚱뚱한 것도 좋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꿈이 마르다 못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더더욱 좋지 않을 듯하다. 꿈이 거세된 세상 – 그 절망의 공간만큼 쓸쓸하고 추운 곳은 또 없을 테니깐…… “희망의 왕국에는 겨울이 없다.”는 러시아 속담을 떠올리며 이제 꿈을 만들어보자.
역자는 2연 6행으로 된 원시를 5언 4구와 7언 2구로 이루어진 고시로 한역하였다. 원시는 1행과 2행, 4행과 5행이 각기 동일하다. 그리하여 한역시의 1구와 2구, 4구와 5구도 각기 동일하게 처리하였다. 이 때문에 칠언(七言)으로 된 제3구와 제6구에만 압운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한역시는 동일한 시행(詩行) 하나를 뺀다면 결국 4구로 짜인 고시가 되므로 제3구와 제6구에만 압운한 것이 그리 이상할 건 없다. 이 한역시는 동자(同字) ‘望(망)’으로 압운하였다.
2020. 12. 29.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김승희나대로 살고 싶다
나대로 살고 싶다
어린 시절 그것은 꿈이었는데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드니 그것은 절망이구나
[태헌의 한역]
希望與傷處(희망여상처)我願行我素(아원행아소)
我願行我素(아원행아소)
少小彼卽是希望(소소피즉시희망)
無奈行我素(무내행아소)
無奈行我素(무내행아소)
老大彼卽是絶望(노대피즉시절망)
[주석]
* 希望(희망) : 희망, 꿈. / 與(여) : 접속사. ~와, ~과. / 傷處(상처) : 상처.
我願(아원) : 나는 ~을 원한다, 나는 ~을 하고 싶다. / 行我素(행아소) : 남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평소(平素)의 자기 스타일에 따라 <내가>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성어(成語) ‘我行我素’는 만청(晩淸) 시기의 이보가(李寶嘉)가 지은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라는 소설에서 유래한 말이다.
少小(소소) : 어리다, 젊다. 나이가 어리고[少] 몸집이 작다[小]. / 彼卽(피즉) : 그것은 곧. / 是(시) : ~이다.
無奈(무내) : ~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을 할 수밖에 없다, 부득이하다.
老大(노대) : 나이가 들다, 늙다. 나이가 많고[老] 몸집이 크다[大]. / 絶望(절망) : 절망. 희망이 없음.
[한역의 직역]
꿈과 상처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어려서는 그것이 꿈이었는데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들자 그것은 절망이구나
[한역 노트]
이 시는 나대로 사는 것이 꿈이었다가 나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절망이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한 때의 꿈이 결국 절망이 되고 만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그렇지가 않다. 어린 시절에 꿈꾼 ‘나대로’가 내가 원하는 대로라는 의미였다면, 성년이 된 뒤의 ‘나대로’는 내가 사는 틀 안에서라는 뜻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시인의 관점을 따르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꿈’이 되고, 내가 사는 틀 안에서 사는 것은 ‘절망’이 된다.
꿈과 절망이 키워드인 이 시의 제목이 “꿈과 절망”이 아닌 “꿈과 상처”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자가 보기에는, 절망을 느끼는 것이 결국 상처가 되는 것으로 시인이 이해했기 때문일 듯하다. ‘지옥의 안개’에 비유되기도 하는 이 절망은, 누군가의 앞길을 암담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또 시인이 얘기한 꿈은 달리 희망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 시는 결국 꿈 혹은 희망과 절망을 담론(談論)하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나대로 살고 싶다는 것은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원하는 삶을 멋있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한 때 유행했던 말인 ‘폼생폼사’ 역시 이 테두리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이를 더해갈수록 역동(力動)보다는 안정(安定)을 희구하기 때문에, 꿈은 현실이라는 지평(地平)에 점점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은 있음으로 해서 그만큼 가치가 있다. 꿈은 삶의 탄성체이고, 꿈이 없는 삶만큼 고독한 삶은 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금 나의 길을 그대로 가는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므로, 더 이상의 변화나 도전이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시인은 이 꿈이 없는 삶을 절망이라고 하였다. 절망은 희망이 끊어진 상태이다. 그 끊어진 희망을 잇거나 새로운 희망을 심는 일이 외롭고 힘들 수는 있어도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인은 또 다른 시(詩) <희망이 외롭다>에서 “희망이란 말이 세계의 폐허가 완성되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하였다. 간단히 말해 희망이 있으면 폐허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슴속에는 절망으로 인한, 폐허와 같은 상처 하나 쯤은 묻어놓고 산다. 그러므로 그런 상처가 있다 해서 우리가 꿈마저 내려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꿈이 없다면 이제 만들어가야만 한다. 가슴에 꿈이 없다는 것보다 더 큰 상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꿈이 너무 뚱뚱한 것도 좋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꿈이 마르다 못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더더욱 좋지 않을 듯하다. 꿈이 거세된 세상 – 그 절망의 공간만큼 쓸쓸하고 추운 곳은 또 없을 테니깐…… “희망의 왕국에는 겨울이 없다.”는 러시아 속담을 떠올리며 이제 꿈을 만들어보자.
역자는 2연 6행으로 된 원시를 5언 4구와 7언 2구로 이루어진 고시로 한역하였다. 원시는 1행과 2행, 4행과 5행이 각기 동일하다. 그리하여 한역시의 1구와 2구, 4구와 5구도 각기 동일하게 처리하였다. 이 때문에 칠언(七言)으로 된 제3구와 제6구에만 압운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한역시는 동일한 시행(詩行) 하나를 뺀다면 결국 4구로 짜인 고시가 되므로 제3구와 제6구에만 압운한 것이 그리 이상할 건 없다. 이 한역시는 동자(同字) ‘望(망)’으로 압운하였다.
2020. 12. 29.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