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테스형,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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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형나훈아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태헌의 한역]
底兄(저형)
隨時一笑當解頤(수시일소당해이)
然後埋傷笑聲中(연후매상소성중)
只謝今辰依舊到(지사금신의구도)
雖死必來明日忡(수사필래명일충)
底兄世上何故辛(저형세상하고신)
底兄愛情又何空(저형애정우하공)
認識自己兄留語(인식자기형류어)
吾何領會吾不通(오하령회오불통)先考墳邊菫花發(선고분변근화발)
野菊亦暗作黃笑(야국역암작황소)
綻花如前麗則麗(탄화여전려즉려)
髣髴皆說吾怠掃(방불개설오태소)
底兄世酷於淚吾(저형세혹어루오)
底兄歲月何似趨(저형세월하사추)
先登九原誠何若(선등구원성하약)
往觀果有天國無(왕관과유천국무)
[주석]
* 底兄(저형) :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를 한자로는 ‘蘇格拉底(소격랍저)’로 적는데 ‘테스’에 해당되는 글자는 ‘底’이므로 ‘테스형’을 ‘底兄’으로 옮긴 것이다.
隨時(수시) : 이따금, 어쩌다가. / 一笑(일소) : 한번 웃다, 한바탕 웃다. / 當解頤(당해이) : (마땅히) 턱이 빠질 정도로.
然後(연후) : 연후에, 그리고는. / 埋傷(매상) : 아픔을 묻다. / 笑聲中(소성중) : 웃음소리 속(에).
只謝(지사) : 그저 ~이 고맙다. / 今辰(금신) : 오늘. / 依舊(의구) / 여전히. / 到(도) : 오다.
雖死(수사) : 비록 <내가> 죽더라도. / 必來(필래) : 반드시 오다. / 明日(명일) : 내일. / 忡(충) : 근심하다, 근심스럽다.
世上(세상) : 세상. / 何故(하고) : 무엇 때문에, 어째서. / 辛(신) : 맵다, 괴롭다, 힘들다.
愛情(애정) : 사랑. / 又(우) : 또. / 何空(하공) : 어찌 공허한가, 얼마나 공허한가? 원문의 “사랑은 또 왜 이래”를 공허한 사랑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여 의역한 표현이다.
認識自己(인식자기) :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에 해당하는 중국어 “認識你自己”를 줄인 표현이다. / 兄留語(형류어) : 형이 남긴 말. 원문의 “툭 내뱉고 간 말을”을 의역한 것이다.
吾(오) : 나. / 何(하) : 어찌, 어떻게. / 領會(영회) : 깨달아 알다. / 不通(불통) : 통하지 않다, 잘 모르다.
先考(선고) : 돌아가신 아버지. / 墳邊(분변) : 무덤가. / 菫花(근화) : 제비꽃. / 發(발) : (꽃 따위가) 피다.
野菊(야국) : 들국화. / 亦(역) : 또한, 역시. / 暗(암) : 몰래, 가만히. ‘수줍어’를 한역한 표현이다. / 作黃笑(작황소) : 노란 웃음을 짓다. 원문의 “샛노랗게 웃는다”를 임의로 한역해본 말이다.
綻花(탄화) : 핀 꽃, 피는 꽃. / 如前(여전) : 여전히. / 麗則麗(여즉려) : 예쁘기는 예쁘다.
髣髴(방불) : 거의 ~하는 듯하다. / 皆(개) : 모두, 다. / 說(설) :~을 말하다, ~을 꾸짖다. / 吾怠掃(오태소) : 내가 성묘(省墓)를 게을리 하다. ‘掃’는 ‘소분(掃墳)’의 뜻이다.
世酷(세혹) : 세상이 혹독하다, 세상이 가혹하다. / 於(어) : ~에게. / 淚吾(누오) : ‘눈물 많은 나’라는 뜻으로 조어(造語)한 것이다. ♧ 이 구절은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를 ‘세상’을 주어로 삼아 재구성한 것이다.
歲月(세월) : 세월. / 何似趨(하사추) : 어찌 달리는 것과 같은가? 원문의 “세월은 또 왜 저래”를 덧없이 빠른 세월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여 의역한 표현이다.
先登(선등) : 먼저 오르다, 먼저 가다. / 九原(구원) : 저세상, 저승. / 誠(성) : 정말로, 진실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何若(하약) : 무엇과 같은가, 어떠한가?
往觀(왕관) : 가서 보다. / 果(과) : 과연. / 有天國無(유천국무) : 천국이 있는가? ‘無’는 문장의 말미에 쓰여 의문을 나타낸다.
[한역의 직역]
테스형이따금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곤 아픔을 웃음소리 속에 묻는다
오늘이 여전히 와준 게 그저 고맙지만
죽어도 반드시 올 내일이 걱정이다
테스형! 세상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테스형! 사랑은 또 어째서 공허해?
너 자신을 알라던 형이 남긴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나는 모르겠소
울 아버지 무덤가에 제비꽃 피었다
들국화도 가만히 노란 꽃을 피웠다
피는 꽃들이야 여전히 예쁘긴 해도
성묘 게을리 하는 나를 꾸짖는 듯하다
테스형! 세상이 가혹해, 눈물 많은 내게
테스형! 세월은 어째서 달리는 듯해?
먼저 오른 저세상 정말 어떤가요?
가서 보니 과연 천국은 있는가요?
[한역 노트]
“테스형”은 가수 나훈아씨가 직접 작사하고 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곡이다. 이 곡에서 영문도 모른 체 먼 이역(異域)의 나라로 소환된 테스형은 다름 아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이다. 소크라가 성씨가 아니고 테스가 이름이 아님에도 소크라테스를 동네 형 부르듯 친근하게 ‘테스형’으로 칭한 작사자의 재치가 무엇보다 재미있다. 여기에 더해 작사자의 답답한 속내를 ‘물음’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한 것은, 문답(問答)을 통해 진리 찾는 것을 중시했던 소크라테스의 교육방법을 염두에 둔 장치로 이해된다.
역자가 보기에 이 노랫말의 키워드는 아픔과 눈물이다. 어쩌다가 웃는 웃음 속에 아픔을 묻어도 오고야 마는 내일이 두려운 까닭은, 작사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설상가상으로 그 무게를 얼마간은 덜거나 잊게 해줌직한 사랑 또한 여의치 못하다. 이 역시 아픔이다. 노랫말 제2절의 제4행은 부친의 묘소를 자주 찾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책망한 말인데, 역자는 아래 구에서 언급되는 ‘눈물’과 연결되는 말로 본다. ‘눈물 많은 나’는, 성묘도 제대로 못하여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앞세울 때,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에게는 세상이 더 아프기 마련이고, 여기에 더해 세월까지 단촉(短促)하게 여겨지면 눈물의 샘은 더더욱 마를 겨를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노랫말은 결국 아픔과 눈물이라는 두 단어로 개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쯤에서 작사자가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이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자. 하고많은 철학자 가운데 왜 하필이면 소크라테스일까? 이에 대해서도 작사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없다. 그러나 제1절의 마지막 두 구절을 통해 작사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어낼 수는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이 말이 고대 그리스 신전(神殿)에 적혀 있었던 격언이라 하여도, 소크라테스에 의해 재해석되고 더욱 유명해졌으니 소크라테스의 말로 보아도 무방하다. 역자가 생각하기에는, 작사자는 이 말을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래야만 이 노랫말은 의미가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보통 “무지(無知) 자각(自覺)” 내지는 “자기(自己) 성찰(省察)”이라는 한자어로 개념화 되는데 이 노랫말에서 작사자가 그 말을 모르겠다고 한 것은, 정말 그 말뜻을 몰라서 모르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해서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실천해야 할 사람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모른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아는 것만 진실이고, 자기가 보는 것만 전부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옳은지 번연히 알면서도 구구한 이유 때문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하고 돌아보라는 것이 바로 “너 자신을 알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리고 세상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왜 이래”, “왜 저래”라는 탄식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역자는 “테스형”의 노랫말을 완곡하기는 해도 상당히 심각한 반성과 풍자로 본다. 무엇이든 너무 노골적인 것은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기 마련이겠지만, 이 노랫말은 노골적인 ‘쏟아냄’이 아니라 은근한 풍자이기 때문에 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미증유(未曾有)의 언택트(untact) 시대를 맞아 지칠 대로 지쳐버린 때에, 이런 노래를 들고 나와 세상을 적셔준 나훈아씨에게는 가황(歌皇)이라는 세간의 칭호가 결코 무거운 훈장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역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역자는 총 18행으로 이루어진 노랫말 가운데 후렴부에 해당하는 마지막 2행을 제외한 16행을 16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하는 과정에서 ‘아!’와 ‘테스형’과 함께 반복되는 ‘소크라테스형’ 등은 한역을 생략하였다. 이 한역시는 짝수구마다 압운하였지만, 노랫말 제1절에 해당되는 전(前) 8구는 같은 운목(韻目)으로 압운하고, 제2절에 해당되는 후(後) 8구는 중간에서 한번 운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이 시의 압운자는 ‘中(중)’·‘忡(충)’·‘空(공)’·‘通(통)’, ‘笑(소)’·‘掃(소)’, ‘趨(추)’·‘無(무)’가 된다.
2021. 2. 23.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 일신상의 사정이 있어 부득이 4주가량 칼럼 집필을 쉴 예정입니다. 여건이 허락하면 그 이전이라도 돌아오도록 해보겠습니다. 늘 감사드리며 항시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강성위 재배.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태헌의 한역]
底兄(저형)
隨時一笑當解頤(수시일소당해이)
然後埋傷笑聲中(연후매상소성중)
只謝今辰依舊到(지사금신의구도)
雖死必來明日忡(수사필래명일충)
底兄世上何故辛(저형세상하고신)
底兄愛情又何空(저형애정우하공)
認識自己兄留語(인식자기형류어)
吾何領會吾不通(오하령회오불통)先考墳邊菫花發(선고분변근화발)
野菊亦暗作黃笑(야국역암작황소)
綻花如前麗則麗(탄화여전려즉려)
髣髴皆說吾怠掃(방불개설오태소)
底兄世酷於淚吾(저형세혹어루오)
底兄歲月何似趨(저형세월하사추)
先登九原誠何若(선등구원성하약)
往觀果有天國無(왕관과유천국무)
[주석]
* 底兄(저형) :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를 한자로는 ‘蘇格拉底(소격랍저)’로 적는데 ‘테스’에 해당되는 글자는 ‘底’이므로 ‘테스형’을 ‘底兄’으로 옮긴 것이다.
隨時(수시) : 이따금, 어쩌다가. / 一笑(일소) : 한번 웃다, 한바탕 웃다. / 當解頤(당해이) : (마땅히) 턱이 빠질 정도로.
然後(연후) : 연후에, 그리고는. / 埋傷(매상) : 아픔을 묻다. / 笑聲中(소성중) : 웃음소리 속(에).
只謝(지사) : 그저 ~이 고맙다. / 今辰(금신) : 오늘. / 依舊(의구) / 여전히. / 到(도) : 오다.
雖死(수사) : 비록 <내가> 죽더라도. / 必來(필래) : 반드시 오다. / 明日(명일) : 내일. / 忡(충) : 근심하다, 근심스럽다.
世上(세상) : 세상. / 何故(하고) : 무엇 때문에, 어째서. / 辛(신) : 맵다, 괴롭다, 힘들다.
愛情(애정) : 사랑. / 又(우) : 또. / 何空(하공) : 어찌 공허한가, 얼마나 공허한가? 원문의 “사랑은 또 왜 이래”를 공허한 사랑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여 의역한 표현이다.
認識自己(인식자기) :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에 해당하는 중국어 “認識你自己”를 줄인 표현이다. / 兄留語(형류어) : 형이 남긴 말. 원문의 “툭 내뱉고 간 말을”을 의역한 것이다.
吾(오) : 나. / 何(하) : 어찌, 어떻게. / 領會(영회) : 깨달아 알다. / 不通(불통) : 통하지 않다, 잘 모르다.
先考(선고) : 돌아가신 아버지. / 墳邊(분변) : 무덤가. / 菫花(근화) : 제비꽃. / 發(발) : (꽃 따위가) 피다.
野菊(야국) : 들국화. / 亦(역) : 또한, 역시. / 暗(암) : 몰래, 가만히. ‘수줍어’를 한역한 표현이다. / 作黃笑(작황소) : 노란 웃음을 짓다. 원문의 “샛노랗게 웃는다”를 임의로 한역해본 말이다.
綻花(탄화) : 핀 꽃, 피는 꽃. / 如前(여전) : 여전히. / 麗則麗(여즉려) : 예쁘기는 예쁘다.
髣髴(방불) : 거의 ~하는 듯하다. / 皆(개) : 모두, 다. / 說(설) :~을 말하다, ~을 꾸짖다. / 吾怠掃(오태소) : 내가 성묘(省墓)를 게을리 하다. ‘掃’는 ‘소분(掃墳)’의 뜻이다.
世酷(세혹) : 세상이 혹독하다, 세상이 가혹하다. / 於(어) : ~에게. / 淚吾(누오) : ‘눈물 많은 나’라는 뜻으로 조어(造語)한 것이다. ♧ 이 구절은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를 ‘세상’을 주어로 삼아 재구성한 것이다.
歲月(세월) : 세월. / 何似趨(하사추) : 어찌 달리는 것과 같은가? 원문의 “세월은 또 왜 저래”를 덧없이 빠른 세월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여 의역한 표현이다.
先登(선등) : 먼저 오르다, 먼저 가다. / 九原(구원) : 저세상, 저승. / 誠(성) : 정말로, 진실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何若(하약) : 무엇과 같은가, 어떠한가?
往觀(왕관) : 가서 보다. / 果(과) : 과연. / 有天國無(유천국무) : 천국이 있는가? ‘無’는 문장의 말미에 쓰여 의문을 나타낸다.
[한역의 직역]
테스형이따금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곤 아픔을 웃음소리 속에 묻는다
오늘이 여전히 와준 게 그저 고맙지만
죽어도 반드시 올 내일이 걱정이다
테스형! 세상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테스형! 사랑은 또 어째서 공허해?
너 자신을 알라던 형이 남긴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나는 모르겠소
울 아버지 무덤가에 제비꽃 피었다
들국화도 가만히 노란 꽃을 피웠다
피는 꽃들이야 여전히 예쁘긴 해도
성묘 게을리 하는 나를 꾸짖는 듯하다
테스형! 세상이 가혹해, 눈물 많은 내게
테스형! 세월은 어째서 달리는 듯해?
먼저 오른 저세상 정말 어떤가요?
가서 보니 과연 천국은 있는가요?
[한역 노트]
“테스형”은 가수 나훈아씨가 직접 작사하고 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곡이다. 이 곡에서 영문도 모른 체 먼 이역(異域)의 나라로 소환된 테스형은 다름 아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이다. 소크라가 성씨가 아니고 테스가 이름이 아님에도 소크라테스를 동네 형 부르듯 친근하게 ‘테스형’으로 칭한 작사자의 재치가 무엇보다 재미있다. 여기에 더해 작사자의 답답한 속내를 ‘물음’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한 것은, 문답(問答)을 통해 진리 찾는 것을 중시했던 소크라테스의 교육방법을 염두에 둔 장치로 이해된다.
역자가 보기에 이 노랫말의 키워드는 아픔과 눈물이다. 어쩌다가 웃는 웃음 속에 아픔을 묻어도 오고야 마는 내일이 두려운 까닭은, 작사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설상가상으로 그 무게를 얼마간은 덜거나 잊게 해줌직한 사랑 또한 여의치 못하다. 이 역시 아픔이다. 노랫말 제2절의 제4행은 부친의 묘소를 자주 찾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책망한 말인데, 역자는 아래 구에서 언급되는 ‘눈물’과 연결되는 말로 본다. ‘눈물 많은 나’는, 성묘도 제대로 못하여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앞세울 때,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에게는 세상이 더 아프기 마련이고, 여기에 더해 세월까지 단촉(短促)하게 여겨지면 눈물의 샘은 더더욱 마를 겨를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노랫말은 결국 아픔과 눈물이라는 두 단어로 개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쯤에서 작사자가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이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자. 하고많은 철학자 가운데 왜 하필이면 소크라테스일까? 이에 대해서도 작사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없다. 그러나 제1절의 마지막 두 구절을 통해 작사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어낼 수는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이 말이 고대 그리스 신전(神殿)에 적혀 있었던 격언이라 하여도, 소크라테스에 의해 재해석되고 더욱 유명해졌으니 소크라테스의 말로 보아도 무방하다. 역자가 생각하기에는, 작사자는 이 말을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래야만 이 노랫말은 의미가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보통 “무지(無知) 자각(自覺)” 내지는 “자기(自己) 성찰(省察)”이라는 한자어로 개념화 되는데 이 노랫말에서 작사자가 그 말을 모르겠다고 한 것은, 정말 그 말뜻을 몰라서 모르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해서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실천해야 할 사람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모른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아는 것만 진실이고, 자기가 보는 것만 전부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옳은지 번연히 알면서도 구구한 이유 때문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하고 돌아보라는 것이 바로 “너 자신을 알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리고 세상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왜 이래”, “왜 저래”라는 탄식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역자는 “테스형”의 노랫말을 완곡하기는 해도 상당히 심각한 반성과 풍자로 본다. 무엇이든 너무 노골적인 것은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기 마련이겠지만, 이 노랫말은 노골적인 ‘쏟아냄’이 아니라 은근한 풍자이기 때문에 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미증유(未曾有)의 언택트(untact) 시대를 맞아 지칠 대로 지쳐버린 때에, 이런 노래를 들고 나와 세상을 적셔준 나훈아씨에게는 가황(歌皇)이라는 세간의 칭호가 결코 무거운 훈장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역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역자는 총 18행으로 이루어진 노랫말 가운데 후렴부에 해당하는 마지막 2행을 제외한 16행을 16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하는 과정에서 ‘아!’와 ‘테스형’과 함께 반복되는 ‘소크라테스형’ 등은 한역을 생략하였다. 이 한역시는 짝수구마다 압운하였지만, 노랫말 제1절에 해당되는 전(前) 8구는 같은 운목(韻目)으로 압운하고, 제2절에 해당되는 후(後) 8구는 중간에서 한번 운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이 시의 압운자는 ‘中(중)’·‘忡(충)’·‘空(공)’·‘通(통)’, ‘笑(소)’·‘掃(소)’, ‘趨(추)’·‘無(무)’가 된다.
2021. 2. 23.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 일신상의 사정이 있어 부득이 4주가량 칼럼 집필을 쉴 예정입니다. 여건이 허락하면 그 이전이라도 돌아오도록 해보겠습니다. 늘 감사드리며 항시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강성위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