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샀더니 나간다던 세입자 변심…법원도 "못 내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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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갱신청구권 관련 첫 판결지난해 7월 31일부터 시행된 임대차보호법 중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한 소송에서 법원이 세입자의 갱신청구권이 집주인의 거주권보다 우선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새 집주인(매수자)이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샀더라도 기존 세입자가 이전 집주인(매도인)에게 갱신청구권을 행사했다면 전세 계약을 연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실거주 위해 전세 낀 집 샀는데
세입자 "계속 살겠다" 입장번복
법원 "등기 전에 갱신청구권 행사
새 집주인이 거절할 권리 없어"
작년 洪부총리도 비슷하게 곤욕
법조계에선 “국토교통부의 유권해석이 그대로 법원에서 인정된 셈”이라면서도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시점과 매수자의 소유권 이전 등기 시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소유권 등기 전 갱신청구권 행사, 유효”
23일 부동산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민사2단독 유현정 판사는 지난 11일 임대인 김모씨 등이 임차인 박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 인도 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원고 김씨는 지난해 8월 실거주 목적으로 경기 용인 수지구의 한 주택을 샀다. 이 집의 세입자 박씨는 기존 집주인 최모씨와 2019년 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전세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매매계약 당시 최씨는 박씨에게 “집을 팔려고 한다”며 “새 집주인이 직접 살려고 매수하는 만큼 전세계약을 연장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통보했다. 박씨도 “새 집을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매수자 김씨는 실거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그러나 계약 체결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박씨는 기존 집주인에게 “(새 임대차보호법을) 알아보니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며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에 김씨는 “실거주할 것이기 때문에 갱신청구를 거절한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내고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세입자의 손을 들어줬다. 김씨는 매매계약 체결 뒤 3개월이 지나서야 잔금을 치르고 11월에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피고는 새 집주인인 원고가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치기 전 종전 집주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를 마쳤다”며 “이를 승계한 임대인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할 권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건물 인도, 손해배상, 계약무효 소송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그간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매수한 집주인의 거주권과 기존 임차인 간 계약갱신청구권 중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느냐는 줄곧 논란이 돼 왔다.새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세입자는 임대차 계약 종료 1~6개월 전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토부는 새 집주인이 실거주를 목적으로 계약 갱신을 거절하려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이전, 즉 전세계약 만료 최소 6개월 전에 잔금을 치른 뒤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해 8월 경기 의왕 집을 매도할 당시 매매계약이 체결된 이후에야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행사해 결국 소정의 보상금을 주고 내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이어지자 국토부는 지난 2월 주택매매 계약 시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명시하도록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하지만 법 공백 기간 체결된 계약이나 세입자 변심 등에 대해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법조계에선 관련 소송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엄정숙 법도 대표변호사는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관련 상담 건수가 30~40% 이상 늘었다”며 “임대인과 임차인 간 건물 인도 소송은 물론이고 실거주하지 못하게 된 새 집주인과 이전 집주인 간 손해배상 및 계약무효 소송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신태호 한틀 대표변호사도 “새 임대차보호법이 급조되면서 법의 구멍이 많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며 “대법원의 교통정리가 있기까지 소송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