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알아야 할 "화폐에 대한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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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었던 “화폐, 마법의 사중주”라는 책은 고병권 선생님의 많은 생각이 녹아있는 책이었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었다.화폐는 우리와 같은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개념이라는 생각에 고병권 선생님의 책 중에서 동료 직장인에게 전해주고 싶은 구절을 몇 개 뽑아 보았다
<1> 화폐는 사물이 아니라 사회적 배치,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로 이해됩니다. 화폐성은 특정한 사회적 배치 속에서 그것에 부여된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근대의 화폐는 권력과 명령의 작동하는 ‘화폐주권(국가)’, 상품 교환의 매개체 ‘화폐 거래 네트워크(시장과 금융)’, , 화폐적 유대와 이해관계인 ‘화폐 공동체(사회)’, 부와 가치를 창출한다는 ‘화폐론(경제학)’, 이 네 가지 요소가 배치되어 관계를 맺으며 빚어낸 ‘마법의 사중주’입니다. 이 뒤엉킴은 마법처럼 우리를 잠식하고 지금의 우리 사회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앞으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화폐는 그 산출 작용 속에서 이해할 때 그 대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2> 화폐는 그것의 산출 작용 속에서 이해 될 필요가 있다. 화폐를 산출하는 어떤 작용에서만 한 사물은 화폐가 되고 그 작용이 계속되는 한에서만 화폐는 화폐로 남을 수 있다. 어떤 점에서 화폐는 화폐로서 계속 재 생산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작용이 멈추면 아마도 화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옛 시절로, 즉 단순한 금속이나 무가치한 종이 조각으로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화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에 “어떻게 산출되느냐”고 물어야 한다
<3> 사회주의자들은 노동 시간 전표가 화폐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동시간 전표는 화폐의 출현을 막는 부적이기는커녕 그 자체로 화폐였다. 금의 중량 대신 노동 시간이 쓰여 있다면 화폐가 아니라는 생각, 그것이 바로 화폐에 대한 그들의 몰이해를 보여준다. 그들이 꿈꾸던 “상품만 있고 화폐는 없는 사회”는 “신앙이 있는데 신이 없는 종교”처럼 공상적이다. 그들은 단지 어떤 신 만을 부인했으면서도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믿었다.
글을 읽다 보니 고병권 선생님도 “동의보감”을 쓴 고미숙선생님과 같이 “수유+너머”에서 활동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지금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에 이런 모임이 있고 거기에서 이렇게 좋은 책 들이 쓰여지고 출판되는 것이 고맙다.
<1> 화폐는 사물이 아니라 사회적 배치,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로 이해됩니다. 화폐성은 특정한 사회적 배치 속에서 그것에 부여된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근대의 화폐는 권력과 명령의 작동하는 ‘화폐주권(국가)’, 상품 교환의 매개체 ‘화폐 거래 네트워크(시장과 금융)’, , 화폐적 유대와 이해관계인 ‘화폐 공동체(사회)’, 부와 가치를 창출한다는 ‘화폐론(경제학)’, 이 네 가지 요소가 배치되어 관계를 맺으며 빚어낸 ‘마법의 사중주’입니다. 이 뒤엉킴은 마법처럼 우리를 잠식하고 지금의 우리 사회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앞으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화폐는 그 산출 작용 속에서 이해할 때 그 대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2> 화폐는 그것의 산출 작용 속에서 이해 될 필요가 있다. 화폐를 산출하는 어떤 작용에서만 한 사물은 화폐가 되고 그 작용이 계속되는 한에서만 화폐는 화폐로 남을 수 있다. 어떤 점에서 화폐는 화폐로서 계속 재 생산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작용이 멈추면 아마도 화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옛 시절로, 즉 단순한 금속이나 무가치한 종이 조각으로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화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에 “어떻게 산출되느냐”고 물어야 한다
<3> 사회주의자들은 노동 시간 전표가 화폐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동시간 전표는 화폐의 출현을 막는 부적이기는커녕 그 자체로 화폐였다. 금의 중량 대신 노동 시간이 쓰여 있다면 화폐가 아니라는 생각, 그것이 바로 화폐에 대한 그들의 몰이해를 보여준다. 그들이 꿈꾸던 “상품만 있고 화폐는 없는 사회”는 “신앙이 있는데 신이 없는 종교”처럼 공상적이다. 그들은 단지 어떤 신 만을 부인했으면서도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믿었다.
글을 읽다 보니 고병권 선생님도 “동의보감”을 쓴 고미숙선생님과 같이 “수유+너머”에서 활동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지금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에 이런 모임이 있고 거기에서 이렇게 좋은 책 들이 쓰여지고 출판되는 것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