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트레킹 제1신, '울란바토르'에 입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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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독하게 더우리라곤 넉달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7말 8초의 한반도는 용광로가 무색했다. 8월초로 몽골트레킹 일정을 잡은 건 넉달 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최강 폭염 피해 선선한 몽골로 탈출하게 되는 선견지명을 발하게 될 줄이야…

극성수기의 비싼 항공료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아직은 매인 몸이라 주어진 여름휴가에 맞춰 트레킹 상품을 고를 수밖에 없다.
트레커들이 선호한다는 ‘혜초트레킹’의 상품을 검색했다. 시기와 기간 그리고 난이도까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그렇게 낙점한 것이 ‘몽골 체체궁산+테를지 트레킹’ 코스다. 실은 이 모든 준비는 동행키로 한 친구 K가 도맡았다. 검색하고, 상담하고, 예약하고, 송금하고, 비자발급 받고… 난 배낭 꾸려 여행 당일 짜안~ 하고 공항에 나타난 게 다다. 영판 염치없는 짓이다.

8월 3일 14시 20분발 몽골항공 OM 302편에 올랐다. 출발시간이 지났는데도 비행기 동체는 꼼짝도 않는다. 20분이 흘렀다. 쓰다달다 안내멘트도 없다. 30분이 지났다. 점검 중인가? 수하물에 문제가 생겼나? 땅콩 몇알씩 나눠준다. 그렇게 꼬박 한시간이 지난 15시 20분에 이르러 “오래 기다렸다. 곧 이륙하겠다”며 전후 설명은 없이 짤막한 멘트를 날린 후 15시 28분에 이륙했다.애꿎은 K에게 투덜댔다. “이거 시작부터 삐걱거리는데 어째 조짐이…” K가 말했다. “나랑 동행하면 ‘천우신재’가 있는 거 몰라? 좋은 일만 가득할 것이야” 친구의 이름이 ‘강신재’다. 그래서 그는 ‘천우신조’를 늘 ‘천우신재’로 고쳐 말한다. 몇년 전 K와 일본 쵸카이산 트레킹을 이틀 앞두고 일본 센다이 일대에 태풍이 휩쓸고 지났다. 걱정하며 센다이공항에 도착했다. 군데군데 물난리 흔적을 보며 K가 말했다. “태풍 끝이라 내일 쵸카이산에 오르면 시야가 더없이 좋을 것이야. 내가 가는 곳엔 늘 ‘천우신재’가 따라붙는다는 걸 명심해.” 그랬다. 정말 하늘빛이 곱고 쾌청했다. 현지인 산 가이드 조차 초카이산에서 이런 날씨를 만난다는 건 행운이라고 했다.

각설하고, ‘몽골에서도 ‘천우신재’를 믿어 보기로 했다.
18시 13분, 드디어 창밖으로 몽골산야가 눈에 들어왔다. 구름 그림자가 점점이 내려앉은 광활한 초지와 민둥산이 가슴을 뛰게 했다. 입국장을 빠져나와 ‘혜초’ 팻말을 든 현지가이드와 이번 트레킹에 함께할 세 부부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남편들은 공히 전남 광주에서 중고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라 했다. 합이 여덟이다. 단출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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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청사를 빠져나와 대기 중인 버스로 이동하면서 접한 몽골의 날씨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Land of Blue Sky’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섭씨 23도에 바람도 선선했다. 연일 펄펄 끓는 한반도를 생각하니 괜스레 송구한 마음이 든다. 인지상정인가.
마이크로버스에 올랐다. 차문에 쓰여진 ‘JEJU’ 로고가 생뚱맞다. 그러고보니 오가는 차량에서 심심찮게 한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ㅊㄷ어학원’ 버스도, ‘ㅈㅇ대학교’ 버스도 울란바토르 시내를 달린다. 우리나라 중고차 수입이 많다는 반증이다.
퇴근 러시아워에 딱 걸렸다. 숙소인 라마다호텔로 향하는 버스가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동안 일행들의 몽골에 대한 관심사에 현지인 가이드 ‘아쨔’가 어눌한 한국말로 주섬주섬 몽골 라이프를 안내했다. 기골이 장대한 그를 우리는 여행 내내 흥 넘치게 ‘앗싸’로 불렀다.
몽골의 주요 산업은 광업과 농·목축업, 관광업, 캐시미어와 섬유가공 제조업 등을 들수 있다. 몽골 사람들은 주로 육식을 한다. 따라서 오축(낙타, 말, 소, 양, 염소)은 주 식량원이다. 농경지의 대부분은 목초지다. 경작이 가능한 토지는 전체 농경면적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몽골은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다. 항공수송이 그만큼 중요하다. 한국과 몽골 간 항공노선은 운항횟수가 적고 가격이 높다. 대한항공과 몽골항공의 독점권을 폐지하고 경쟁 노선으로 전환해 거리에 비례한 합리적 요금이 책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라마교를 믿는 몽골인은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워메~ 그새 다 와부렀어야, 앗싸! 설명하느라 수고했어라” 걸진 광주 사투리에 가이드 ‘앗싸’는 고향 형님들 만난 기분이라며 반색했다.
앗싸는 몇년 전 한국에 들어 와 전라도 광주에서 공장과 이삿짐센터 일을 하면서 틈틈이 한국말과 글을 익혔다. 트레킹 시즌인 5월부터 10월까지는 몽골에서 가이드로 일한다. 비시즌엔 돈 벌러 한국 광주로, 어떤 해엔 일본 도쿄까지도 날아 간다고 했다.
19:20에 호텔 체크인을 한 후 짐만 룸에 던져 놓고 곧바로 석식 장소인 ‘한강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상추쌈에 불고기와 보쌈을 놓고 일행들과 마주 앉았다. K가 챙겨온 위스키를 한 순배 돌리니 부족한 듯 하여 8천원짜리 소주를 더했다. 그렇게 울란바토르에서의 첫 만찬은 걸진 광주사투리를 안주삼아 각자를 소개하는 자리가 되었다.

호텔로 돌아와 와이파이를 연결해 내일 울란바토르의 날씨를 확인했다. 낮 최고 기온 26도에 쾌청할 것이란다. 서울은 어떨까? 서울발 뉴스를 살폈다.

“기상청에 따르면 4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지며 낮 최고 기온은 34~40도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말이지 송구한 마음이다. 이곳의 선선함을 서울로 전파한다는 건 가뜩이나 활활 타는데 부채질하는 꼴일 것 같아 페이스북 놀이를 자제키로 했다. 내일 야마츠산 트레킹을 위해 챙겨온 배낭을 꾸려 두고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