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근영의 블록체인 알쓸신잡] 누가 만든 "규제괴물"인가?

이건 실화입니다.

한 달 전쯤 평소 인사를 하고 지내던 A씨와 차를 한잔할 기회가 생겼습니다.차를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대화의 중심은 제가 회장을 맡고 있는 블록체인 산업계에 대한 이야기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분은 우리나라 최고의 금융 관련 정부 조직에서 오랜 시간 근무를 하다가 해외 유학을 다녀오시고 금융감독원의 자문위원을 거쳐 지금은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시는 분입니다.

저는 대화를 나누며 열심히 블록체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급기야 제가 추진중인 블록체인 기반의 신용투자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설명까지 이어져, 제가 준비하고 진행중인 비즈니스 모델을 열심히 소개했습니다.그리고 금융 전문가이신 A씨에게 사업 모델에 대한 검토와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의 비즈니스 모델에 꽤나 흥미를 보이시던 이분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나가시더니 갑자기 이야기의 중심이 점점 저희 모델에 대한 규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연실색, 이 무슨 해괴한 이야기인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만, 이 분은 아랑곳 없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신용투자 시장이 확대되면 이로 인해 신용이 과다 활용될 것이고, 이는 필히 가계부채의 급증으로 이어져 결국 금융권의 피해가 확대되고, 급기야 국가 금융위기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A씨는 이렇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가며 ‘이런 경우에는 이런 부작용’이 있고 ‘저런 경우에는 저런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이 비즈니스 모델은 결국에 생겨날 규제로 인해 안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아예 이 사업을 시작하지 않는게 어떠냐는 이야기로 귀결될 때에는 황당함을 넘어 기가 막혔습니다.

시작도 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을 그것도 성공 실패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또 실제로 시장에 론칭 되고 순작용이 있는지?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은 커녕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부터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으며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넘어 경악할 일이었습니다.갑자기 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인간이 아닌 무슨 괴물이거나, 자동으로 규제를 생산해내는 규제 양산 기계가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어떻게 새로운 산업,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놓고 한쪽은 비즈니스 활성화를 통해  세계 시장 진출을 꿈꾸며 고용을 창출하고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동시에 다른 한쪽은 이런 모델이 나타날 경우 어떤 방법으로 규제를 해야 좋을까? 하는 생각부터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서둘러 이야기를 마치고 이분과 헤어지고 시간이 한참 흘렀습니다만, 그날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괴물 같은 사람들이 국가 정책의 주요 보직에 자리를 하고 있었기에 우리나라에 그렇게도 규제가 많이 생겨났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러한 규제 위에서 보직을 유지하고 생계를 이어가는 일반인들과 뇌구조가 다른 특수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더구나 이런 괴물들이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핵심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우리나라 금융 경쟁력이 왜 세계 80위권을 맴도는지 그 실질적인 배경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대화는 솔직히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과 대화를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법무법인 Y의 한 고문님은 미국 금융 기관의 수장은 물론 서구의 금융기관 수장들이 금융 시장에서 수십 년간 잔뼈가 굵은 금융회사 CEO 출신으로 꽉 채워져 누구보다 실물 금융시장의 경쟁 논리에 이해가 깊고 금융 산업의 발전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금융 수장들은 예외 없이 관료 출신들이나 정치권 출신들 그리고 교수 출신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하여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기에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이 모양 이 꼴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규제하는 일이 자신들의 본업이며, 규제 위에서 기득권자들과 담합하고 법에도 없어 무소불위라고 볼 수 있는 행정지도라는 편법까지 휘두르며 헌법의 기본 정신을 뛰어넘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국가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

퇴직 후 금융 기관의 고문이나 주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막후 공작도 마다하면서, 감독기관과 피 감독기관의 고위직이 서로 한 솥밥을 먹던 사람들로 채워져,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끼리끼리 문화까지 조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규제에 익숙한 사람들이 우리나라 금융 시장을 관치 체제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틀어 쥐고 있는 한,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미래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누가 이런 규제 괴물들을 키워 냈을까요?

(신근영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