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고사성어] 모순(矛盾)-차고 넘치는 세상의 이중잣대들

인간의 눈은 시력만큼 밝지 않다. 아득한 지평선은 내다보면서도 정작 한 치 앞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남의 눈 티끌은 바위만하게 부풀려보면서도 정작 자기 눈의 들보는 의식조차 못한다. 인간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는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자신의 시선에 맞춰 세상을 해석한다. 만물의 어긋남은 거기서 생겨난다.

전국시대 초나라에 무기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시장에서 방패를 흔들며 외쳤다. “이 방패를 보십시오. 이 방패는 아주 단단해 어떤 창이라도 막아냅니다.” 이번에는 창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여기 이 창을 보십시오. 이 창은 아주 예리해 어떤 방패도 단번에 뚫어버립니다.” 그러자 상인을 지켜보던 한 구경꾼이 물었다. “그럼 그 예리한 창으로 그 단단한 방패를 찌르면 어찌 되는 거요?” 말문이 막힌 상인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어긋남을 비유하는 모순(矛盾)은 《한비자》에 나오는 창(矛)과 방패(盾) 파는 상인 얘기가 유래다.‘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에 관한 일화 하나. 어느 날 한 청년이 돈이 없어도 논법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논리에 관한 한 자신감이 충만했던 프로타고라스가 말했다. “좋네, 공부가 끝난 뒤 치른 첫 재판에서 이기면 그 돈으로 수업료를 내게.” 한데 외상(?)으로 논리 공부를 마친 청년은 수업료를 낼 마음이 전혀 없는 듯했다. 재판에는 관심이 없고 놀기만 했다.

참다 못한 프로타고라스가 청년을 고소했다. 재판정에서 마주친 청년에게 그가 넌지시 말했다. “어차피 자네는 수업료를 내야 할 걸세. 자네가 재판에서 이기면 나와의 계약대로, 지면 재판장의 판결대로 수업료를 내야 하지 않겠나.” 청년이 바로 응수했다. “어차피 스승님은 수업료를 받지 못합니다. 스승님 말씀처럼 재판장이 수업료를 내라 하면 제가 재판에 진 것이니 안 내도 되고, 내지 마라 하면 재판장의 판결이니 그 또한 낼 이유가 없습니다.” 얘기가 거기까지니 프로타고라스가 수업료를 받았는지 여부는 알길이 없다.

모순이나 이율배반(二律背反)은 논리적·사실적으로는 근거가 대등하면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명제다. 모순과 이율배반이 생기는 건 내 기준으로, 내 이익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탓이다. 내게 이익이 되는 잣대만 쓰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나의 이익과 상대의 이익은 곳곳에서 부딪힌다는 사실이다. 나의 이익만 쳐다보면 수시로 자가당착에 빠진다. 넓은 세상에서 한 곳만을 응시하기 때문이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