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실칼럼] 100세 시대, 싱글족과 노인에 대한 호칭

자신의 아내를 제대로 소개하는 매너

호칭이나 지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정겹기도 하고 분위기가 서먹해지기도 한다. 그만큼 호칭매너의 중요성이 사회적인 관계에서 크다고 할 수 있다. 매너 에티켓에서 호칭만큼 까다롭고 어려운 것도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 말만큼 호칭이 다양한 말은 흔하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만큼 호칭에 대해 신경 쓰고 예를 갖추는 국민도 드물 것이다.
얼마 전 모임에서 한 임원이 자신의 아내를 ‘제 부인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잘못된 지칭이다. 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제 아내입니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매너 에티켓의 본질은 상대를 존중함으로써 편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호칭에도 이런 에티켓의 본질을 염두에 두고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올바로 가려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싱글족 고객들의 마음을 닫는 잘못된 호칭매너

고객을 친밀하게 대하려고 직원이 고객을 ‘언니’나 ‘어머님, 아버님’으로 호칭하는 경우가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나이 많은 싱글족들에게는 특히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호칭은 특히 불편하다. 요즘에는 삶의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혼자 삶을 영위하는 1인 가구의 비율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싱글족은 전체 인구의 23.9%나 된다. 전체인구의 45%가 싱글족인 미국과 32.4%의 일본에 비하면 아직 덜하지만 점점 가파른 속도록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싱글족 증가와 함께 이들이 소비 주력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싱글 경제’중심으로 싱글족 관련한 신조어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 예가 바로 ‘혼밥(혼자 먹는 밥)’,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행(혼자 하는 여행)’ 등이다. 이처럼 싱글족 시장에 대응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매혹적인 마케팅과 신제품을 선보여도 그 제품을 전달하는 직원이 ‘아버님, 어머님’으로 잘못된 호칭을 하는 순간 싱글족 고객의 마음과 지갑은 닫혀버린다.

잘못된 편견과 사회적인 잣대로 부르는 잘못된 호칭이런 가족호칭이 표준 언어 예절로 봐도 올바른 것은 아닌데 우리문화가 관계를 중시하다보니 그런 경향이 강해졌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서로의 형편과 상황을 잘 아는 지역사회에서는 이런 호칭이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상대를 따뜻하게 대하는 표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현재 상황이나 위치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사회적인 잣대로 미루어 짐작해서 부르는 호칭은 상대의 감성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저 정도 나이면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겠구나 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가족 호칭을 너무 남용하는 것은 공사 구분 없이 ‘혈연주의’에 기댄 구시대 사고의 반영이라는 시각도 크다.


지나친 혈연주의 호칭은 근대적 사회형성에 장애일수도

신세대일수록 이런 가족호칭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강하다는 조사결과를 본 적이 있다. 개인주의와 합리주의가 강하고 해외문화를 경험한 신세대일수록 이러한 가족중심 호칭이나 문화를 불합리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족 호칭을 남용하다 보면 공적인 일 처리도 너무 혈연주의 온정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 관계를 중시해 친족어가 발달했다. 그리고 특히 지역사회 같은 경우는 한 다리만 건너면 다 통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친 가족호칭은 근대적 인간관계나 사회구조 형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감성에 생채기를 낼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국립국어원이 2011년 발간한 ‘표준 언어 예절’만 보아도 알 수 가 있다.수평문화를 조성하는 호칭파괴문화

그렇다면 표준 언어 예절에 맞는 호칭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손님 성별이나 나이에 관계 없이 ‘손님’이나 ‘고객님’으로 부르는 것이 좋다. 흔히 손님이 직원을 부를 때
‘여기요’ ‘아주머니’ ‘아저씨’라 부르는 게 정 없고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국립국어연구원에 의하면 이런 호칭이 오히려 ‘언니’나 ‘이모’ 등으로 부르는 것보다는 우리말 예절에 부합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이름과 직함을 붙여 부르는 것이 적절한 언어 예절이다. 물론 요즘에는 여러 직장에서 아예 직함을 생략한 경우도 많다. 평등한 사내 분위기를 조성해 부서간 원활한 소통과 창조적 아이디어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팀장이나 매니저 같은 직급을 생략하고 이름 뒤에 ‘님’을 붙인 호칭제를 시행한다.
다른 조직의 직원 이름을 모를 경우에는 기존처럼 직책이나 역할에 님을 붙여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조직별로 필요한 경우에는 영어 이름이나 닉네임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다. 이런 호칭파괴 제도는 수시로 급변하는 업계 환경에도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계급장을 떼는 이러한 수평적 호칭 분위기는 인터넷, 포털, 게임 업계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호칭파괴문화의 장점은 나이나 직급으로 인해 제대로 할 말을 못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닉네임 호칭한편으로는 이러한 닉네임 호칭을 불편해 하는 경우도 생길 수 도 있다. 이러한 수평적인 호칭에 대해 직원들의 의견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그러하듯이 이런 호칭변경에 대해서 불편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닉네임 호칭을 쓰고 있는 회사에서는
정작 직원의 실제 이름을 모르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닉네임 호칭은 권위적인 문화를 없애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단순히 호칭만 바꾼다고 해서 수평적인 문화로 금방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나이와 지위가 다르더라도 상급자로부터
어떻게 불러달라는 말이 있게 되면 큰 문제가 없는 한도 내에서 그에 따라 호칭하도록 한다.

100세 시대! 고민되는 노인에 대한 호칭

100세 시대가 되면서 노인에 대한 호칭도 고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거나 ‘할아버지, 할머니’ 호칭을 불편해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기대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살면서 반세기 전 기준 그대로 ‘노인’이라는 호칭 기준을 정하니 불쾌한 경우가 많아진다. 한국에서 법으로 정한 노인은 1964년 이후로 만 65세 이상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요즘 65세 이상 되시는 분들은 ‘노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이런 경우는‘어르신’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을 듣는 것을 불편해 한다.
60세만 넘겨도 장수했다고 여긴 조선시대에나 65세 이상이 노인이지 지금은 노인의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노인 연령 기준이 70세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78.3%였다. 65세 이상 노인 대상으로 한 조사다. 이처럼 노인들의 인식은 빠르게 변하는데
사회적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니 당장 호칭부터 문제가 생긴다.

선생님이나 고객님으로 호칭하면 해결되는 것들특히 노인들을 자주 접하는 공무원이나 서비스직 직원들은 호칭에 대한 고민이 더욱 크다.
국립국어원은 젊은 노인을 호칭하는 말로 ‘선생님’을 제안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중국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에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생이란 표현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민원인 호칭 개선안을 발표했다.
연령과 상관없이 모두 ‘고객님’이라고 부를 것을 권장했다. 호칭으로 인한 복잡한 판단을 미루고 민원인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에서다.
지역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고객님보다는 ‘어르신’이나 ‘00할아버지, 00할머니’라는 호칭이 더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호칭을 듣는 당사자가 더 좋아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호칭은 사회적 약속의 하나다. 일대 일 관계에서는 암묵적으로라도 상대방의 합의가 있다면 상대가 선호하는 것으로 불러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사회조직에서 구성원들의 합의가 없는 상황이라면 정해진 원칙을 가급적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칭은 우리의 생각을 담는 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관습이 있다면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