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과 페미니즘은 틀렸다

코르셋(Corset)과 페미니스트(Feminist, 여성주의)는 틀렸다.

2018년 12월 10일 자 영국 BBC에는 한국의 유명한 유투버 여성, 리나 배의 코르셋 탈의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Why women in South Korea are cutting ‘the corset’, By Laura Bicker BBC News, Seoul, 10 December 2018)뚱뚱한 몸매를 억지로 날씬하게 만들고 싶지 않고, 그럴 의사도 없기에, 여성의 몸을 날씬하게 만들어 주는 코르셋을 입지 말자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런 주장을 했기 때문에 악플이 달리고, 갑자기 유명해지는 게 이상한 현상으로 비쳐져 외국 언론의 뉴스거리가 된 것이다. 아울러, 한국에서는 “항공기 승무원이 안경을 쓴 게 뉴스가 된다.”는 비아냥까지 함께 쓴 기사였다.

여성평등주의(Feminism)가 여성 우월주의로 흐르거나, 성차별로 인한 여성의 피해를 부르짖으며, 거리에서 남성들을 혐오하는 군중 데모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반대의 데모도 또 생겨나고 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고 평등하게 보라며, 여성전용 주차공간을 없애라는 주장도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가족부는 왜 있는가?
이런 현상을 올바른 문화의 흐름으로 보아야 하는가?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에 대한 찬반 논란도 있으나, 그건 신의 영역이다. “좋다 나쁘다”의 개념이 아니라, 본성이 원래 그래서, 그리 태어날 수도 있고, 살다가 바꿀 수 있는 자유도 있는 것이다.

찬성하지 않아도, 동의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굳이 반대하고 나설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넓은 자연 세계에 무엇이 있을 수 있고, 무엇이 없어야 하는가? 여성이라면 꼭 허리가 잘록해야 하고, 화장을 해서 예쁘게 보여야 할 필요는 없으며, 화장이나 성형이나 그건 각 개인의 “선택의 자유”이며, “예쁘다 밉다”의 기준 또한 정해 놓은 바는 없다.눈이 나빠서 안경을 썼는데 더욱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고, 쓰던 안경을 벗으니 얼굴이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항공기 승무원의 자질이나 역량이 증감되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것은 본인의 문제이지, 보는 사람의 관점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특정 지역에 성형수술 병원이 가득히 널려 있고, 면접을 보기 위해 졸업 전에는 반드시 성형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그럴 시간과 돈이 있으면 공부를 더 하든지, 능력을 키우는 게 옳은 일이다. 사원을 뽑고 면접을 보는 사람 역시 바뀌어야 한다. 깔끔하고 예쁘다고 여긴 사람을 채용해서 일을 시키다가, “무능하고 어리석은 자신의 판단”에 후회를 한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

좀 더 큰 시각으로 보자.아직도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종차별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커피숍에서 흑인을 무시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흑인 경찰이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새로운 나치즘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하고, 유대인을 경계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무슬림(Muslim)을 혐오하는 지도자도 있다.

테러의 대표 집단으로 ISIS(Islamic state of in Iraq and Syria)를 꼽고 있지만, 무슬림이 모두 테러집단은 아니다. 미국 내에도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많고, 중동지역이나 동남아 지역에도 이슬람을 믿는 인구가 대부분이다. 착하고 순수한 시민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을 모두 미워하거나 중국인들을 모두 더럽다고 보는 것은 인종우월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편견이며, “평균의 오류”를 범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행동과 태도, 또는 그런 의식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여성 우월 주의에 빠진 여성이나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사람들도 옳은 건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개개인의 편견이나 오해 또는 잘못된 사고방식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생각이나 의견으로 머물지 않고, 굳이 사회적인 문제로 표면화 되고 사건으로 표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이 지구 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다양한 유형으로 인정하고 이해하며, 서로 다름을 존중해 줄 때 비로소 사회는 성숙해지는 것이다.

홍석기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