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 총무와 이타심의 이기심 효과

(101-17) 동호회 총무와 이타심의 이기심 효과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누군가 주변 사람을 돕고 산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들리면 괜스레 즐겁다. 개인과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도움을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일까? 도움을 주는 사람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두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일까?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일까? 우리는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들에게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선행을 베푼다. 우리는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우선, 곤경에 빠진 사람에게 측은한 마음이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감상적인 마음이 발동해 도와주는 경우가 있다. TV에서 최근에 발생한 자연 이변으로 이재민이 많이 발생했다는 내용을 방영할 때 그들의 어려운 마음을 헤아려 전화로 기부하는 행위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과거에 자신이 그런 곤경에 빠졌던 사람은 더욱 공감하여 베푸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감상적 베풂이다.

둘째, 현재 자신의 상태는 괜찮지만 나중에 자신 역시 곤경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마치 보험을 드는 차원에서 상대편을 도와주기도 한다. 가족, 친구와 같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런 생각은 더 많이 든다. 이러한 행위는 나중에 자신이 도움을 받기보다는 나중에 자신의 후대가 도움을 받게 되리라는 장기적인 고려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아는 분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 가서 부조금을 내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이른바 이성적인 베풂이다.

셋째, 어떤 사람은 자신이 상대편보다 여유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도덕적 의무 때문에 도와주기도 한다. 이것은 윤리적 베풂이다.



마지막으로, 자기만족을 위해 상대편을 도와주는 경우가 있다. 가수 김장훈 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기부도 많이 하고 독도 문제에 대해 자비로 외국 신문에 독도 광고를 내는 등 다양한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이러한 기부 행위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자기만족이라고 해도 좋지만 자아실현적 베풂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겠다.

어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에는 각자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기적으로 행동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기적인 행동은 상호 불신을 낳게 되고 협동을 어렵게 한다. 그러면 두 사람이 협동해 더 큰 일을 도모할 수 없게 되므로 좋은 기회를 놓쳐 결국 두 사람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만을 챙기는 것보다 상대편을 배려하고 베풀 때 신뢰가 쌓이고 장기적인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알고 행동한다. 그래서 이타심은 다른 이름의 이기심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협동하는 것이 자신에게 결국 이롭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김민주의 시장의 흐름이 보이는 경제 법칙 중에서)



총무를 하다 보면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남들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런저런 참견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실수도 남들보다 많이 한다. 그럴 때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데 괜히 했나 싶기도 하다. 산악회 총무를 보면 그렇다. 내가 졸업한 경동고 총동창회에서는 분기에 한 번씩 전체 동문들과 산에 간다. 그럼 버스는 5-6대 빌려서 나이 8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나이 불문하고 200 – 300여 명이 같이 간다. 그럼 준비가 장난이 아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안전하게 등산오르는데 문제가 없는지, 수 백 명이 불편함없이 맛있게 식사할 만한 곳은 있는지를 미리 답사해야 한다. 날씨 좋을 때야 재미 삼아라도 하겠지만, 눈바람 쌩쌩부는 한겨울은 보통 성의를 가지고는 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 일을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무슨 돈이 현실적인 이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늘 한다. 때로는 왜 저러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총무를 하고 나서 돌이켜 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이익을 보자고 한 것도 아니지만, 도움을 받은 경우가 많다. 모임에 나오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나마 이런저런 동호회라도 가입하여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낫고, 그냥 다니는 것보다 총무라도 하면서 더 깊이 더 많은 사람을 사귀어 보는 것이 더 좋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인간관계라고 하는데, 인간관계를 넓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총무를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원들은 사심 있는 총무는 싫어한다. 현대인들이 물건을 사는 과정에서 마케팅의 영향을 받지만, 정작 마케팅처럼 보이는 기업의 활동을 싫어한다. 총무를 하는 것도 그렇다. 총무도 나를 위하여 하기보다는 모임 그 자체를 위하여 진심으로 하다보면, 회원들은 나를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기적인 사람들이 못받는 도움도 많이 받는다. 그리고 그런 이타심이 많은 회원들이 늘어나고, 조건없이 총무를 도와주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모임은 발전한다. 그러다 보면 서로에 대한 배려심과 신뢰가 쌓인고, 장기적인 관계가 성립한다. 그래서 이타심은 다른 이름의 이기심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협동하는 것이 자신에게 결국 이롭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회장은 모임의 이기심을 위하여 노력한다면, 총무는 회원들의 상호 간의 이타심 향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