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실칼럼] 2019 새해에는 다이어트, 굿바이 핑계

2019년 새해 첫날 다짐했던 계획들과 핑계

옛말에 도둑질을 하다 걸려도 변명거리가 있다고 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빠져나갈 이유가 있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우리 주변에 핑곗거리는 홍수처럼 넘쳐난다.
새해가 오면 늘 계획했던 다이어트만 해도 그렇다.
오늘은 비가 오니까 운동하지 말아야지,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니까 운동하지 말아야지,
오늘만 먹모 하자 하는 것들도 모두
알고 보면 다 같은 맥락, 즉 핑계다.
우리는 왜 이렇게 허구한 날 핑계를 대고 있을까?
핑계는 사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장치란 연구결과가 있다.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 핑계

심리학 용어로 셀프핸디캐핑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리한 결과가 나올 걸 대비해 미리 자신의 핸디캡을 정해놓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버글래스 존스가 했던 실험을 살펴보자.
버글래스 존스는 실험 참가자들을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눈 뒤,
각각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를 풀게 했다.
시험이 끝나고 두 그룹 모두에게 실제 결과는 숨긴 채 ‘모두 좋은 결과가 나왔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실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은 이제 다음 단계의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전에 두 가지 약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약은 집중력과 두뇌회전 속도를 향상시켜주는 효능이 있고,
두 번째 약은 반대로 집중력을 저하시키고 머리를 멍한 상태로 만들어
문제 푸는데 어려움이 생길 겁니다. ”


나라면 어떤 약을 선택할까? 상식적으로 당연히 문제를 더 잘 풀기 위해
모두가 첫 번째 약을 복용했을 것 같지만 웬걸, 결과는 달랐다.
쉬운 문제를 푼 A그룹은 다음 시험도 쉬운 문제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다시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 첫 번째 약을 골랐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었던 B그룹은 두 번째 약을 선택한 거다.
왜 그랬을까?
두 번째도 분명 어려운 문제가 나올 것이니,
결과가 나쁘면 약 핑계를 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다.
결국 일부러 자신을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해 놓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셈인 것.
‘약을 먹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그렇다면 시험 결과가 나쁠 경우,
약 핑계를 대면되겠네’
만일 결과가 좋으면, ‘약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잘 봤다는 이유로
더 주목을 받게 되니 금상첨화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결국 핑계란 만일의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심리기제인 셈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핑계

실제로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 “공부 많이 했어?”라고 물으면,
곧이곧대로 “응 밤을 꼴딱 새웠어” 라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공부는 무슨. 어제 드라마를 몇 편이나 봤는지 몰라. 왜 시험기간만 되면 드라마가 땡기니?” 등등의 핑계를 대면서 한숨을 푹푹 내쉰다.
시험을 못 볼 걸 대비해 일부러 핑계를 늘어놓는 거다.
공부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못 보면, 우스운 꼴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시험을 못 본 게 아니라 ‘순전히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야’란 그럴듯한 핑계를 대기 위해서.
노래방에 갈 때도 “나한테 마이크 주지 마. 한 오백 년 만에 노래방 온 것 같아.”라고 상대의 기대치를 확 낮춰버린다. 하지만 그런 말 하는 친구가 반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소파 위로 올라가 펄쩍 뛰면서 마이크를 공중부양하는 묘기를 부린다. 친구는 그저 혹시나 자신의 노래실력에 다른 이들이 감탄하지 않을까 봐 미리 방어막을 쳐두는 것뿐이다.
이처럼 셀프핸디캐핑은 우리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해준다.연애에서도 셀프핸디캐핑

나이가 꽉 차도록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하는 경우
셀프핸디캐핑에 갇혀있어 그럴 때가 많다.
“연애를 하고 싶어도 맘에 드는 남자가 있어야지”
“이상형이 뭔데?”
“남자가 키는 좀 커야지. 180cm정도? 학벌도 딸리면 싫어. 스카이는 되어야 기가 안 죽지. 당연히 직업도 좋고 연봉도 높아야 결혼을 생각해보지 않겠어? 좋은 성격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이쯤이면 눈이 하늘 꼭대기에 닿아있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높은 것 역시 셀프핸디캐핑이다.
이상형을 못 만나서 연애를 못 하는 거란 핑계 속에 스스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완벽한 남자는 세상에 있지도 않거니와,
그런 남자를 만나려면 스스로도 완벽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현재 상황은 직시하지 않고, 턱없이 높은 이상형 핑계만 대고 있다.
결국 이런 기준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으면,
정작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짚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지 않을까?

셀프핸디캐핑의 부작용핑계를 잘 대는 사람들이 잘 쓰는 말이 있다. 바로, ‘~했더라면‘
우리 집이 조금만 부자였더라면, 내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학벌이 좋았더라면,
내 얼굴이 연예인처럼 예뻤더라면 등등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고
환경 탓으로 돌리는 거다.
하지만 환경 탓을 해보았자 기분만 우울해질 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어학연수만 갔더라면, 지금쯤 원어민만큼 영어를 잘할텐데‘
전형적인 ~했더라면의 가정법 핑계다.
하지만 외국 땅 한 번 안 밟은 사람들 중에서도
원어민 뺨치게 영어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미드를 보면서 공부할 수도 있고,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오히려 그렇게 노력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게 되면,
“외국도 안 나갔는데, 그렇게 영어를 잘하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라는
사람들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을 수 있다.

새해맞이 핑계 극복

핑계 속에 갇힌 우울한 새가 되지 않으려면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
‘승자는 일곱 번 쓰러져도 여덟 번 일어서고,
패자는 쓰러진 일곱 번을 후회한다’는 탈무드의 말이 있다.
쓰러진 걸 핑계로 누워버리는 게 아니라,
쓰러진 반동으로 다시 일어난 승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60년 9월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투혼한 선수가 있었다.
출발선에 선 69명 중 이 흑인 선수를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는 선수라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그는 맨발로 2시간 15분 16초란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결승점을 통과했다. 아프리카 흑인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바로 아베베다.
아베베는 그로부터 4년 뒤 도쿄에서 올림픽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하면서,
흑인은 장거리를 달릴 수 없다란 전문가들의 편견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당시 전문가들은 흑인은 다른 종에 비해 엉덩이 근육의 파워존과 속근 섬유질이 발달해 단거리에는 유리하지만 지구력을 요하는 장거리에는 불리하다는 거였다.

자신의 단점과 싸우자

아베베 선수의 승리를 예상치 못했던 시상식장에서는
미처 에티오피아 국가를 준비하지 못해,
일본 가요가 울려 퍼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달렸을 때 승리가 찾아왔다”
그렇게 아베베는 위대한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맨발의 영웅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빗길에 자동차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거다. 그럼에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노르웨이에서 열린 장애인 올림픽 대회에 출전해 양궁과 탁구,
눈썰매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자신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다면

희망올림픽이 있었더라도 아베베 선수는 금메달감이다.
“내 다리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지만 내게는 두 팔이 있다”
시상대에 서서 외치는 그의 모습에 전 세계의 팬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상황과 환경 핑계 대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아베베야말로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
“신세한탄하는 시간에 포기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의지를 불태운다면 얼마든지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긴 말이다.
수많은 핑계 속에 갇혀 행복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우리가 곱씹어야 할 명언이다.
‘내가 ~했더라면’ 이라며 신세 한탄할 시간에
원하는 자기 모습을 향해 용기 있게 한걸음 내디뎌본다면
핑계 때문에 하지 못했던 새해 계획을 조금은 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영실 한경닷컴 칼럼니스트